쉬러 갑니다
약을 끊은 지 적어도 한 달은 넘은 것 같다. 정확히 언제부터 끊었는지 적어두었더라면 좋았을 것을, 자꾸 깜빡한다. 위가 약한 편이라 무엇보다 기쁜 것은 이제 약을 먹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었고, 다른 병원에 갈 때 장기 복용하는 약에 대해 언급할 필요가 없다는 점이었다. 그리고 누군가가 요즘 행복하냐고 물을 때 그렇다고 답한다는 점도. 1년 전의 나와 비교했을 때 느낄 수 있는 큰 차이 중 하나다. 조금 신경 쓰이는 점이라면 내가 감정을 느끼는 방식이, 기억해낼 수 있는 과거의 방식과는 좀 다르다는 것인데, 이것은 내가 나이를 먹었기 때문일 수도 있으므로 꼭 우울증 때문이라고 잘라 말하기는 어렵다. 기억할 수 있는 과거 속의 나는 좀 더 생생한 감정들을 느껴 왔기 때문에. 대단히 슬픈 것을 보고도 어딘가 마비된 것처럼, 가볍게 수긍하고 마는 내 모습은 아직 우울증 심의 위원회의 주목을 끌고 있다. 그렇게 많던 눈물이 다 어디 갔담. 다들 나이가 들면 피부가 건조해진다며 불평을 늘어놓던데 나이가 눈물도 앗아간단 말인가. 아직 뭐가 뭔지 잘 모르겠다. 내가 1년 정도 깁스를 한 후 풀었을 때, 앙상해진 다리에 다시 살이 붙고 전처럼 움직이기까지 꽤 긴 시간이 걸렸었다. 아마 지금의 단계도 그런 게 아닐까. 생각하니 별로 불안하지 않았다.
깁스를 풀었을 때 통나무처럼 뻣뻣해진 다리가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아 불편했다. 순간순간 느껴지는 마음의 불편함도 그때의 뻣뻣함과 어딘가 닮았다. 치료 중에는 어떤 작은 변화도 우울증과 관련지어 생각했다. 소화가 안되거나, 머리가 아프거나. 전에 없던 변화가 일어나면 가장 먼저 우울증이나 약 때문일 거라는 생각을 했다. 그러고 난 후에는 으레 평소보다 불안해졌다. 스스로에게 일어나는 변화를 감지하여 판단하는 것 자체는 치료에 있어 필요한 일이었지만 나 자신은 피곤했다.
요즘 내 생활에는 작은 행복들이 꽤 많이 자리하고 있다. 하늘이 평소보다 깨끗하거나, 평소엔 무척 오래 걸리던 서류 절차가 내 일정에 맞춰 착착 진행되거나, 속는 셈 치고 산 과일이 무척 맛있거나, 내 앞을 걷는 여자의 등에 업힌 아기의 반짝이는 신발이 귀여워서 웃음이 터지는 일들 말이다. 어딘지는 모르겠지만 뭔가가 마비되었다고 느끼다가도, 이런 행복이 머릿속을 한번 씻어내면 조금 더 생생한 내 삶을 느낄 수 있다. 생각보다 더 기쁜 일이었다. 앞으로 어떤 일이 생겨도 '그때 우울증이 생겨서 다행이었다' 같은 말도 안 되는 생각은 안 하겠지만. 적어도 몇 가지는 배웠다. 나를 돌보는 방법. 정신도 몸과 다를 바가 없어 옳은 방법으로 돌볼 줄 알아야 한다는 것. 지난 1년 동안 뭘 배웠는지 돌이켜본 순간 나는 픽 웃으면서 '그나마 뭐라도 배우긴 했네'라고 생각했다.
얼마 전 친구와 이런 이야기를 했다. 의외로 사람은 60살이 되어서도 스스로가 어른이라 확신하지 못한다고, 그저 어릴 때의 마음과 기질 그대로 나이 든 몸에 담긴 사람이 될 뿐이라고. 나와 그녀는 마침 100층 건물의 전망 좋은 창가에 앉아있었다. 아래에는 손가락 크기의 자동차들이 달리고 있었을 뿐이기에 절로 삶에 대한 미련이 지면을 떠나 우리가 앉은 창가로 떠오르는 것을 느꼈다. 우리는 장난스럽게 나이 든 후의 삶에 대해 이야기하곤 했다. 하지만 지금의 마음 그대로 나이 든 몸속에서 매일을 산다는 건 끔찍하게만 느껴졌다. 우울증이 나았다고 해서 내 삶의 각오가 굳게 서는 것은 아니었던 것이다. 눈을 감고 쓱 한번 살펴보았지만 각오라 부를 만한 물건은 내 안에 없었다. 이 마음에 앞으로도 큰 변화는 없지 않을까. 그래도 살-짝 마비된 내 삶에 찾아오는 여러 즐거움이 눈 깜짝할 사이 나를 나이 든 몸속으로 인도할 것이다. 그런 관점에서 생각하니 하고 싶은 일을 다 하려면 앞으로의 시간도 충분치 않은지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다. 내가 죽은 후에도 알아서 잘 살아갈 이야기를 하나 만드는 것. 둘이면 더 좋고. 그러니 쓰는 것이 좋겠다.
이 시리즈를 시작할 때 저는 완전히 비어있었습니다. 당시 일을 그만두었기 때문에 재취업에 관한 이야기를 들으면 어차피 그전에 죽을 텐데 재취업이 무슨 의미가 있겠느냐고 진심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런 건 내년에도 살아있을 게 분명한 사람이나 하는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어떻게든 해를 넘겼네요. 지금 와서 생각하면 어릴 적 듣던 무서운 얘기 속 '해가 뜨기 전까지 그들은 창살을 흔드는 귀신의 위협에 벌벌 떨었다' 같은 대목이 생각납니다. 속된 말로 존버는 승리한다고 하는데, 이기고 지는 문제가 아닌 터라 승리까지는 잘 모르겠지만 살았습니다. 기쁘다기보다는 다행이라는 생각을 더 많이 합니다. 정말 다행입니다. 이제 다시는 어떤 것도 느끼지 못할 거라 생각한 제가 틀려서, 차라리 지금 끝내는 게 최선이라고 생각한 제가 틀려서 무엇보다 다행입니다. 쪽 빠졌던 살도 다시 돌아왔습니다. 이제 찌는 것도 빼는 것도 저 하기에 달렸다는 것이, 제 몸 대부분의 것은 제가 주도할 수 있다는 것이 무척 기분 좋습니다. 저는 자신에게 살짝 박한 편이지만, 저 자신이 우울증으로 아픈 내내 글만은 놓지 않아 줘서 정말 고맙습니다.
이제 우울증 치료가 끝난 만큼, <해를 기다리는 아이> 매거진은 이번 글을 마지막으로 끝맺으려 합니다. 글감은 달라지겠지만 3개월 후에, 일에 관한 이야기를 들고 돌아올 예정입니다. 인생의 가장 아픈 길에서, 가장 추운 시간을 살아가는 분들의 해가 한시라도 빨리 떠오르기를, 언제나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