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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해녀의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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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여해 Jul 07. 2021

사람들이 사랑하는 이야기 : 영화 <빛나는 순간>

나는 이토록 편견에 사로잡힌 사람이다


예고편도 안 봤다. 볼 필요가 없었다. 왜냐하면 무조건 볼 거였으니까. "제주해녀"라는 포스터의 단어면, 아니 왕눈이를 이마에 얹고 있는 고두심 배우의 사진으로 충분했다. 해녀에 꽂혀서 사는 이때에 해녀 영화라니. 신나서 영화관에 갔다. 













왜 로맨스 영화일 거라고 일말의 의심도 하지 않았을까?


왜 제목이 빛나는 순간일까? 어떤 순간이 빛난다는 걸까? 를 고민하면서 시작했다. 제주 해녀의 이야기에서 어떤 부분이 빛나게 되는 걸까? 


나이 든 여성과 젊은 남성이 주인공이라는 점에서 <아이 캔 스피크>가 떠올랐다. 자연스럽게 두 사람의 공통된 무엇을 향한 우정, 그리고 갈등, 이를 극복하는 과정을 통해 위로받는 내용 일거라고 지레짐작하면서. 


남녀가 주인공이면 스토리에 없어도 되는 로맨스가 끼어든다. 그런데 이 영화는 여남이 주인공이었다. 그런데 난 왜 단 한 번도 로맨스 영화일 거라고 일말의 의심도 하지 않았을까? 마치 나이 든 여성과 젊은 남성은 절대 사랑할 수 없는 존재라는 듯이. 



보면서 

'어? 왜 여기서 여남의 느낌이 나지? 음.'

이라고 첫 신호가 왔다. 그러다 말겠지(?) 싶었는데, 둘이 숲에 가는 것은 확연한 '데이트'의 느낌이 났다.

'음? 뭐지?'

그러다 진옥이 경훈의 벗은 몸을 보고 부끄러움과 욕망을 느끼는 부분에서부터 

'아, 이 영화는 그런 거구나' 

를 깨달았다. 그리고 이어지는 불편함에 대해, 그 불편함을 느끼는 내가 불편했다. 자꾸 생각했다. 늙은 남자와 젊은 여자의 사랑 이야기는 이 정도로 불편했니?라고. 왜 두 사람의 스킨십이 진해지는 장면에서 진옥의 얼굴이 젊었을 때로 바뀌었으면 하는 생각을 하는 거지? 왜 젊은 배우가 나왔으면 하는 거지? 근데 왜 나는 이런 생각을 하는 거지? 



'그냥' '사람의' '사랑'을 그리는 영화


2021년 나의 삶에서 해녀는 아주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해녀에 대해 공부하고, 직접 해녀를 만나며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과정에 있기 때문이다. 해녀라는 단어에선 그 자체가 주는 무언가가 있다. 나는 이 영화에서 그 무언가 즉, '해녀'에 대한 '일반적인' 이야기를 보려고 했다. 예를 들면, 집안 경제를 책임져야 했어, 남동생들을 공부시켜야만 했어, 자식들을 먹여 살려야만 했어 등등. 영상에서 그려지는 해녀를 보며 내가 알고 있는 해녀상을 복습하고 싶었던 걸까. 


하지만 <빛나는 순간> 은 그런 영화가 아니었다. 주인공은 제주해녀가 아니어도 되는 영화다. 이 영화는 제주 해녀의 입을 빌러 4.3의 폭력성을 드러내기 위함도 아니고, 살암시민 살아진다는 제주해녀의 강한 인내심을 보여주는 영화도 아니다. 그냥 칠십 대 여성과 삼십 대 남성의 사랑 이야기이다. 



칠십 대 여성과 삼십 대 남성의 멜로가 불편해? 왜?


그런데 칠십 대 여성과 삼십 대 남성의 사랑 이야기에 거부감이 드는 나한테 거부감이 들었다. 의식적으로, 그리고 본능적으로 젠더 감수성을 첨예하게 갈고닦는다고 생각했는데. 남자와 남자의 사랑 이야기, 여자와 여자의 사랑이야기에서 한 번도 이상함을 느낀 적이 없었는데. 왜? 왜 불편하니? 


젊은 남성이 나이 든 여성에게 사랑의 감정을 느끼면 안 되나? 그래서 승훈이 진옥에게 '제가 뭘 좀 봤거든요'에서 봤다는 건 뭘까? 그게 그 사람의 내적인 면뿐만 아니라 외적인 '고움'이면 이상한가? 파킨슨 병에 걸려 몸져누운 노인을 간호하는 여성 노인이 성적인 매력을 가지면 안 되나? 그 사람에게 이성적 매력을 느끼는 사람은 비정상인가? 내가 너무 우리 해녀 삼촌들을 많이 봐서 그런가? 그렇다고 쳐도. 그분들이 설렘과 사랑과는 어울리지 않는 사람들이라고 상정해버린 거 아닌가. 그렇다면 여성의 설렘, 성적인 욕망은 언제부터 없어져야 하는가? 결혼하면서부터? '젊고 아름다운'이라는 수식어가 더 이상 따라붙지 않을 때부터? 사회적으로 설렘을 느끼면 안 된다는 분위기가 형성되는 나이대부터? 즉, 소위 '아줌마'가 되서부터? 


아니잖아.   

 


두 사람의 짧았던 사랑이 바로 찰나의 순간에 반짝거리는 빛이었다. 영화의 중반부턴 사랑에 빠진 여성과 사랑에 빠진 남성의 눈이었다. 아니, 사랑에 빠진 사람들의 눈빛이었다. 그것을 애써 아닐거라고 외면하던 나의 편견이 부끄럽다. 아직도 갈 길이 멀다. 



그 외에 영화에서 : 두 사람 다 가장 소중한 사람을 바다에 빠져 죽었다는 설정은 조금 억지 같았고, 왜 고진옥이 '영등할망'인지에 대한 설명이 부족한 것 같아 아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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