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요하고 아름다운 평화의 길 올레
# 17.6 km
# 제주올레여행자센터 ~ 월평 아왜낭목 쉼터
# 상징 : 강정천
# 제주올레 여행자센터 ~ 법환 해녀학교 21년 6월 25일 12시 30분 ~ 18시 10분 (5시간 40분)
# 법환 해녀학교 ~ 월평 아왜낭목 쉼터 21년 6월 27일 9시 50분 ~ 16시 45분 (6시간 55분)
나의 올레길 바이블인 「 제주올레 가이드북 」에 따르면 소요시간은 4~5시간이며 난이도는 중에 속한다.
https://www.jejuolle.org/trail/kor/olle_trail/default.asp?search_idx=9
올레길에는 총 26 코스가 있다. 제주를 해안가로 크게 한 바퀴 도는 코스가 1~21 코스까지 21개. 그리고 우도, 추자도, 가파도 섬 올레가 3개. 그리고 해안에서 좀 더 한라산 쪽으로 들어가는 코스가 7-1, 14-1로 2개가 있어서 총 26 코스이다.
올레길을 완주하면 설문지가 있는데, 가장 좋았던 코스는 무엇이냐, 올레길에 보완해야 하는 점은 무엇이냐 등의 질문이 있다. 그 설문에서 꼽힌 가장 아름다운 코스가 바로 올레 7코스이다. 나 역시 완주자 설문을 할 때 체크를 했다. 너무 아름다운 7코스 이기 때문에 사진을 고르는데 애먹었다.
https://www.yna.co.kr/view/AKR20210329065000056
점심을 먹고 출발하기 위해 서귀포 매일올레시장에 갔다. 그곳에 제주올레 안내센터라고 되어 있으면서 <서명숙 상회>라고 적힌 가게를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간세 열쇠고리를 선물로 준비하고 싶어서 쇼핑도 할 겸 들어갔다. 그곳에 한 할머니가 앉아 계셨다. 연세도 그렇고 무엇보다 너무 닮으셔서
"서명숙 이사님 어머님 되세요?"
라고 여쭤보았다.
그렇단다. 웃으시면서
"닮았어?"
올레길을 걷고 있다고 하자
"괜히 고생시키네."
이어서
"돈 벌라고 고대까지 보냈다니 돈은 안 벌고 이상한 짓을 했어. 명예만 있고 돈은 못 벌어~ 건물 빚도 갚아야 되고 직원들 월급도 줘야 되고!"
내가 좀 더 말주변이 있었으면 올레길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거기서 얼마나 행복하고 좋은지 마구 늘어놓았을 텐데. "대단하신 분이다! 어머님도 대단하다!"라고 왜 말을 못 했는지 뒤돌아서서 아쉽다. 따님 칭찬을 들으시면 기분도 좋아지실 것을! 책으로 많이 봐서 잘 아는 친구 같은 서명숙 이사님이다. 그리고 역시 책에 많이 언급되었던 딸의 제주 귀향과 올레길 만드는 것 등에 대해 반대를 하였다는 현영자 할머니의 말씀도 육성으로 들었다. 좀 더 살갑지 못한 나를 자책하며 올레길을 걸으러 갔다.
차를 제주 올레 여행자 센터 지하주차장에 주차하고 걷기 시작한다. 길가엔 꽃이 그득하다. 절이 있길래 한 번 들어가 본다. 보통 이 정도 느낌의 제주 절이다. 제주의 절은 육지의 역사와 전통을 가진 절들과 비교할 수 없다. 건물이 고즈넉하진 않아도 주위를 둘러싼 난대림이 느낌을 더해준다.
조선시대 제주는 현재 제주시에 해당하는 제주목과 현재 서귀포시에 해당하는 남쪽을 동과 서로 나누어 정의현과 대정현으로 구분되었다. 동쪽 정의현의 현청은 현재 표선면 성읍마을에 있었다. 시청 소재지였다고 보면 된다. 그곳에서 서귀포 포구가 서쪽으로 70리에 위치하고 있었기에 이곳이 "칠십리"라는 거리적 지명이 들어갔다.
솜반천 위를 지나는 서귀교 다리를 건너 칠십리 시 공원으로 들어간다.
게이트볼을 치시는 어르신들이 많다. 옷도 제대로 차려입고, 목소리도 높이시며 열정적으로 게이트볼을 치신다. 이렇게 본격적인 게이트볼 현장은 처음 보았다.
분홍색 하영 올레 표시를 처음 보았는데 너무 귀엽다.
너무나 예쁜 도심공원 칠십리 시 공원이다. 서귀포에 있는 이런 공원들은 사실 '도심'공원이라고 부르기엔 너무 '자연'스럽다. 그래도 걸매 생태공원보다는 조금 더 공원적인 느낌이 난다. 돈 내고 들어가는 수목원 같은 느낌도 난다.
이곳 칠십리 시 공원에선 천지연 폭포를 원거리에서 볼 수 있다. 떨어지는 물을 멍 때리고 보다 보면 슬로모션처럼 보인다. 물을 따라 시선을 이동하면. 사진 같은 것도 아니고 영상 같은 것도 아니고 이런 느낌을 무슨 단어로 표현해야 할까. 내가 마치 저 떨어지는 물이 되어 나를 바라보고 있는 느낌이다. 물아일체의 경험이다.
천지연 폭포를 구경하는데 갑자기 동영상을 찍겠다고 어떤 할아버지가 말을 거신다. '아 내가 지금 방해되니 비키란 말씀이신가?'이랬는데 그게 아니라 동영상.... 하시며 핸드폰을 들이미신다. 얘기인즉슨 자기가 카톡 배경 동영상을 여기서 찍었는데 15초밖에 안 되지만 아주 멋있다는 자랑이었다.
"한라산이 오늘도 안 보이네"
하시며 새로운 카톡 배경 동영상을 찍다 훅 떠나셨다. 제주도분이신 것 같은데 예쁜 카톡 배경 영상을 자랑하고 싶으셨나 보다.
천지연 폭포의 지질과 물에 대해서는 따로 글을 써두었다.
https://brunch.co.kr/@yeohae/129
시작한 지 한 시간도 안 돼서 카페에 들어갔다. 그냥은 삼매봉에 오를 자신이 없달까. 그런 느낌이었는데, 그렇게 긴장할 필요가 없는 귀여운 삼매봉이었다.
삼매봉을 오르기 시작한다. 나중에 바로 이곳에 8월 한 달 동안 숙소를 잡았기 때문에 매일매일 보던 범섬과 황우지 그리고 삼매봉이었지만, 이 때는 처음 맞이하는 풍경에 감탄에 감탄을 거듭했다.
삼매봉은 표고 153.6m의 높지 않은 오름으로 정상에 위치한 팔각정까지 넉넉잡아 15분이면 올라간다. 그냥 올라가면 10분이면 충분할 정도이다. 올랐다 하면 북쪽으로 고근산과 서귀포 일대가 내려다보이고, 바다 쪽으로 문섬과 범섬이 보인다. 정상의 남성대라는 이름의 정자는 수평선 멀리 남극노인성이 보이기 때문에 붙은 이름이다. 겨울이 되면 노인성을 보러 와야지.
나지막한 삼매봉은 금방 오르고 금방 내려올 수 있다.
'황고지'는 '무지개'를 뜻하는 제주고어이다. 황우지는 바로 이 '황고지'가 변한 것으로 추정한다. 무지개 모양의 둥근 해안 절벽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황우지 선녀탕은 올레길에서 내려가게끔 되어 있지는 않았지만 궁금증을 참을 수 없어 내려갔다. 많은 피서객들이 올라오고 내려가는 계단이었다. 새연교와 새섬, 문섬 그리고 새섬에 살짝 가려진 섶섬까지 한눈에 들어오는 풍경이다.
스노클링과 여름 바다 물놀이 명소인 외돌개 황우지 해안. 이곳에도 일제 강점기의 상처가 있다. '12밧디 고망난 동굴' 역시 일제강점기 때 만들어진 동굴 진지이다. 강제노동을 당해야만 했던 제주인의 피눈물이 서린 곳이다. 신나는 물놀이를 하기 전에 다시금 역사를 마음이 새겨보는 것은 어떨까.
http://www.seogwipo.co.kr/news/articleView.html?idxno=111537
황우지 선녀탕 안의 풍경은 이렇다. 선녀탕은 바다와 뚫려 있어서 물이 고여있는 것이 아니라 흐르기 때문에 맑고, 성게와 물고기들도 있다.
9월이 되어 다시 찾은 황우지는 여름과 달리 피서객들이 적었다. 프리다이버들이 좋아하는 황우지 그리고 외돌개 바다이다.
'돔베'는 제주어로 '도마'를, '낭'은 '나무'를 뜻한다. 예전에 도마처럼 잎이 넓은 나무가 많았다고 한다.
처음 올레길을 걸었던 게 20코스. 그리고 다음 날 바로 후원을 신청했다. 20코스의 아름다움이 좋아서 이런 길을 소개해준 것에 대한 감사와 함께 세심하게 걸려있던 올레길 표식에 감동받았기 때문이다. 분명 바람이 세게 불 텐데 자주 날아갈 것 같은 표식들은 분명 손이 가는 일일 것이다. 그러자 올레에서 전화가 왔다. 064- 어쩌구. 지금은 064 지역번호가 익숙하지만 제주에 온 지 1주일도 안 됐을 때 처음 제주 지역번호로 걸려온 전화라서 굉장히 낯설었다. 받았더니 제주 올레. 그리고 생각보다 갈게 통화했다! 그냥 후원해주셔서 감사합니다로 끝나지 않고 어디 걸어보셨어요? 어떠셨어요? 어떻게 알게 되셨어요? 등등. 그때
"저희 7코스도 정말 아름다워요~"
하고 자부심에 가득 찬 말투로 말하셔서 7코스를 걸을 때 자꾸 그 말씀이 생각났다. '아 그럴 만하셨네' 하며.
올레길 3.3km 지점인 폭풍의 언덕에서 한참을 앉아서 제주 바다를 감상했다. 울퉁불퉁 다양한 해안의 모양을 만들어낸 제주 바다. 정말 대단하다.
외돌개를 폭풍의 언덕 쪽에서 보면 따로 서 있는 돌인지 그냥 붙어있는 절벽인지 구분이 잘 가지 않지만 조금만 각도를 달리 보면 외딴 바위이다. 홀로 서 있는 돌기둥이라서 붙은 이름이 외돌개이다. 높이 약 20m, 폭은 7~10m이다. 조면 안산암으로 되어 있으며 구멍이 작고 조밀하며 회색 빛을 띤다. 이 외돌개의 다른 이름은 '장군바위'이다. 장군은 바로 황금 보기를 돌 같이 한 최영 장군이다. 고려 말 최영 장군이 원나라 묵호를 물리칠 때 범섬으로 달아난 이들을 토벌하기 위해서 외돌개를 장군 모습으로 변장시켰다고 한다.
외돌개를 지나 뒤를 돌아 앉아서 한참을 쉬던 곳을 다시 바라보았다.
앞으로 봐도 뒤로 봐도 너무나 멋진 조면 안산암 해안 절벽이다. 가히 올레길 최고의 코스라고 불릴 만하다. 돔베낭길에는 외국인들도 많이 마주쳤는데, 한국인이든 외국인이든 모두를 매료시킬 만한 풍경임에 틀림없다.
원래 있던 올레길이 사유지 소유자의 거부로 인해 400m 우회로가 형성되었다. 이 역시 사유지를 지나는 길인데, 카페 60 빈스와 펜션 바닷가 하얀 집이 길을 내어주었기 때문이다. 아주 파란 수국을 가진 사유지이다.
바닷가하얀집펜션에 머물러보고 싶어 진다. 걷기 쉽게 돌로 된 돔베낭길이 이어진다. 지귀도, 섶섬, 새섬, 문섬을 뒤로하고 이제 앞에 남은 것은 범섬 하나뿐이다.
돔베낭길이 끝나고 살짝 들어갔다가 다시 바닷가로 나오는데, 그 길에 서귀포여자고등학교가 나왔다. 나도 지역명이 붙은 여자고등학교를 다녔는데, 그게 '서귀포'였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부러움이 올라왔다. 그럼 매일매일 바다를 보고 바다에 나가서 놀텐데. 이렇게 아름다운 바다를 바로 지척에 끼고 있는 학교에 다니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혈기왕성한 고딩들은 아마도 지긋지긋한 시골을 벗어나고 싶어 할 것이다. 이곳이 얼마나 아름답고 귀한 지는 시간이 지나야 알게 되겠지.
7km 지점 속골을 지난다. '속골'은 골이 깊다는 뜻이다. 수량이 풍부하고 골짜기가 깊은 계곡이 바다까지 이어진다. 속골은 1990년대까지 계단식 논이 있던 곳이다. 이곳은 물이 고였기 때문에 농사가 가능한 지역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논은 보이지 않는다.
속골을 지나서 걸으면 야자수와 선인장이 잔뜩 있는 지점을 지나는데, 범섬을 마주 보는 곳이다. 야자수 동산이라는 이름을 가진 곳이고 캠핑의자를 펴놓고 서귀포 바다를 바라보며 여유를 즐기는 사람들이 몇 있었다. 아마도 매우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을 것이다. 나처럼.
이윽고 이름도 유명한 수봉로가 나온다. 2007년 올레지기 '김수봉'님이 염소가 지나가는 것을 보고 삽과 곡괭이만으로 일군 길이다. 제주 올레길을 만든 서명숙 이사님의「꼬닥꼬닥 걸어가는 이 길처럼」과 「놀멍 쉬멍 걸으명 제주 올레 여행」 책을 보면 훨씬 더 재미있는 올레길이 된다.
수봉로에서 나오면 자그마한 해안이 나온다. 몽글몽글한 돌들로 이루어져 있다. 뒤로는 돌 사이로 용천수가 흘러내리고 있다.
'일냉이'는 이렛날 일곱째 날을 뜻하고 '일냉이당'이 있어서 '일냉이'라고 불리는 곳이다. 올레길을 걸으면서는 당의 모습은 볼 수 없었다. 조금 더 가면 공물깍이 나온다. 공물은 법환 마을에 솟아다는 용천수 중 하나를 부르는 이름으로, 평소에는 솟지 않다가 천둥과 벼락이 칠 때 물이 솟아난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17.6km 중 8.5km 지점인 법환포구에 닿았다. 범섬을 지척이 두고 있는 아름다운 포구이다.
올레길을 걷고 있는 올레꾼 고양이가 있었다.
법환포구 앞의 용천수 물통에서 아이들이 시끌벅적 놀고 있었다. 나도 용천수에서 놀아봤는데, 정말 너무너무 차갑던데. 한여름에도 뼛속까지 스며드는 차가운 지하수 물이다. 아이들은 역시 차가운 데서도 잘 논다.
법환 마을은 서귀포 법환 해녀학교가 있는 곳으로 해녀학교를 공부할 때 많이 듣던 이름이었으나 와보기는 이번이 처음이었다. 해녀의 마을답게 포구에 자리한 기세 좋은 해녀상이 마음에 들었다.
제주에는 해녀학교가 두 군데 있는데 제주시에 하나, 서귀포시에 하나 있다. 서귀포 시에 하나 있는 해녀학교가 바로 이 법환 해녀학교이다. 2021년 여름, 코로나로 인해 서로 교류할 순 없었지만 이렇게나마 만나서 반가웠다.
법환 마을에서 18시 10분 올레 7코스의 반을 마무리 지었다. 너무나 아름다운 7코스. 볼 것이 많아 꼬닥꼬닥 걷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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