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행기 모는 장부 : 권기옥 비행사

일본 천황 머리 꼭대기에 폭탄을 떨어트리고 싶었던

by 정여해

1901년 평양 출생. 1919년 3·1운동 만세 시위에 여러 차례 참여하고, 임시정부와 연계해 독립운동 자금을 모으는 과정에서 옥고를 치르기도 했다. 이후 상하이로 망명하였고, 어릴 적 평양에서 본 곡예 비행에서 비행사의 꿈이 있었음을 일깨워 독립전쟁을 위해 무관 양성을 추진하던 임시정부 이시영의 추천을 받아 1923년 중국 윈난육군항공학교 1기로 입학했다. 1925년 졸업하여 아시아 최초의 여자 비행사가 된다. 임시정부에게 조선총독부에 폭탄을 떨어트릴 테니 항공기를 제공해달라 라고 했지만 임정엔 돈이 없었기에... 중국 공군에 들어간다.


11 권기옥_페미위키.jpg 사진 출처 : 페미위키


1928년 난징에서 의열단으로서 활동하다가 일본경찰에 붙잡혀 옥고를 치루기도 했다. 1932년 상해사변 에서 권기옥은 비행기를 몰고 가 일본군에게 기총소사를 한다. 이 업적으로 중국 정부로부터 무공훈장을 받는다. 1937년 중일 전쟁이 발발하자 충칭에 있는 국민 정부 육군 참모 학교 교관으로 임명되고, 1940년 중령으로 진급한다. 1943년 김순애, 방순이, 최선협, 최애림, 최형록 등과 함께 충징 대한민국 임시 전부 산하 대한 애국 부인회를 조직하고, 사교부장을 역임했다.


11 권기옥_.jpg


1943년 권기옥은 중국 공군에서 활동하던 최용덕, 손기종 비행사 등과 함께 한국 비행대 편성 과 작전계획을 구상하는데, 미국과 중국에서 비행기를 지원받아서 한국인 비행사들이 직접 전투 한다는 계획이었다. 그러나 일본이 예상보다 일찍 패망하여 실행되지 못했다.


광복후 1947년 귀국하였고, 1977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수여 받았다. 1988년 국립묘지 애국지사묘역에 안장되었다. 국립항공박물관에 권기옥 동상이 있고, 공적을 기리는 전시 내용도 있다하니 찾아가봐야겠다.


언제나 자신을 따라다닌 ‘한국 최초 여자비행사’라는 꼬리표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비행기를 탄 것은 오직 조국 해방을 위해서였기 때문이다. 그런 수식어나 타이틀 따위는 중요하지 않다는 뜻이리라. 독립운동가들 중에 남성이 많은 것은 그 시대 여성은 '집안일' 을 해야 한다는 가부작정 가치의 전통을 지켰기 때문이다. 많은 독립 지사들이 북경이서 상하이에서 난징, 충칭에서 죽지 않고 살아 있었다는 것은 누군가가 만든 밥이 그들의 입으로 들어갔다는 것이다. 단순히 밥 짓는 일을 했기 때문에 독립 유공자로 서훈 받지 못한다는 것은 여전히 '주부의 일' 이 여성이 담당하는 노동으로서 천시 받는다는 뜻이다.


"일본으로 폭탄을 몰고 가 천황이 사는 황거를 폭파하겠다"


비록 이루지 못하였지만 참 장부의 꿈이로다!


IMG_0862.JPG 초상화 by 윤석남



관련 기사로 <청연> 의 박경원 얘기도 함께 나오는 경향신문 기사가 있어 첨부한다.

https://h2.khan.co.kr/2016020313355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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