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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여해 Apr 26. 2021

「가난의 문법」

개인이 열심히 살지 않아서가난한 거야?!

# 한 줄 추천평 : ★★★☆☆ 사회학 도서로 재활용품 수집 노인에 관한 첫 책일 것이다. 도시에 분명히 살고 있지만, 어디 있는지 보이지 않는 노인들에 대해 배울 수 있다. 


# 읽기 쉬는 정도 : ★★★★★ 매우 읽기 쉽다. 지하철에서 쉽게 읽을 수 있다. 













 시사인 북클럽 1기에서 진행하는 두 번째 함께 읽을 도서로 선정된 책이다. 북클럽에 가입하지 않았으면 서점에서 내 손으로 집어 들어서 사보진 않았을 책이기에 북클럽 활동의 새로운 의의를 발견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 책은 주택가에서 폐지를 주워다 고물상에 팔아 생계를 유지하는 노인들을 관찰한 사회학 서적이다. 이런 노인들을 가리켜 '재활용품 수집 노인'이라고 일컬으며 '몸과 마음이 불안정한 처지의 사람들 중 골목에서 재활용품을 주워 파는 노인'이라고 저자는 정의한다. 1945년 생의 가상의 여성 '윤영자'를 창조하고, 윤영자의 하루를 따라가며 재활용품 수집 노인들에 대해 관찰과 해석을 덧붙이고 개인의 가난에서 사회 구조의 문제점을 드러낸다


 이 책을 읽으면서 2020년 가을 즈음 읽었던 「임계장 이야기」가 많이 생각났다. 제도 바깥의 노동으로 밀려난 노인들의 생계유지 방식의 측면에서 비슷하게 떠올릴 수 있었다. 도서 선정 때 「가난의 문법」 대신 「임계장 이야기」가 후보로 올랐으나 저자 조정진 씨가 술집에서 성추행하여 고소당했기에 도서 선정에 껄끄러움이 있었다고 한다. 갑질 논란에 대해 세상에 가슴을 울리는 글을 쓴 사람이 남성이라는 위치에서 성추행 '갑질'을 했다는 점이 아이러니하다. 어쨌든, 「임계장 이야기」가 도시에서 분명히 존재하지만, '보이지 않는 일'을 담당하는 노인들의 일에 대해 노인 당사자가 수려한 필체로 울림을 주는 글이라면 이 책은 사회과학 연구자가 관찰한 결과를 바탕으로 쓴 건조한 글이다. 


 함께 떠오른 또 다른 책은 바로 조정래 작가의 「한강」이었다. 주인공 유일표가 최종적으로 하게 된 직업이 바로 '넝마주이' 였기 때문인 것 같다. 더불어 과거와는 변한 가난의 모습을 비교할 수 있었다. 유일표가 살던 서울에서의 가난의 모습은 너도 가난하고, 나도 가난했다. 비슷비슷하게 생긴 판잣집을 맞대고 '층간소음'을 공유하던 가난의 연대였다. 똥 푸러 다니는 천두만 아저씨의 가난도 유일민 형제의 가난과 비슷했고, 서로 걱정하고 도우며 함께 가난을 공유했다. 하지만 2020년 변화된 가난의 모습에는 나 홀로 가난을 견뎌내는 외로움과 고립감이 있다. 시사인 2021년 5월 4일 711호에서 설문조사한 결과 1990년대 가난은 환경이 원인이었으나 2020년 조사에서 가난은 개인의 문제라고 답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만큼 가난은 눈에 보이는 곳에서 눈에 보이지 않는 곳으로 밀려났음을 깨닫게 되었다. 


 저자가 노인들을 만난 북아현동은 내가 대학 시절 학교에서 아현역까지 걸어 다니던 길이었기에 익숙했다. 높은 지대에 자리한 주택들 그리고 가파른 언덕길을 알기 때문에 교통사고와 어두운 골목길에서의 노인 폭행에 훨씬 생생하게 읽혔다. 책에서는 노인들 중에서도 더 약자에 속하는 여성 노인 '윤영자'씨를 추적한다. 그래서 가난에 더불어 '약함'도 함께 얘기할락 말락 하는 느낌이 있었다. 아마 좀 더 포괄적인 얘기를 담고 싶어서 깊게 들어가지 않으려고 한 작가의 노력 같았다. '여성' 노인이 주제가 되어 버리면 여남 대결구도의 프레임에 갇혀 '가난한 노인'이라는 주제가 묻힐까 봐 내용들을 많이 도려낸 느낌도 들었다.

 

 예전에는 가난한 선비, 가난한 학자 하며 청렴결백함의 상징으로 가난이 존재했다면 이제는 혐오의 대상이 되어 버린 듯하다. 임대 아파트냐 자가냐에 따라 출입구를 달리 하고, 아파트 겉 페인트칠을 달리 하는 모습을 보면 가난 혐오는 이제 공공연한 표출이 되어 버렸다. '공부하지 않으면 저렇게 폐지 주우면서 살게 돼'라고 불행과 가난을 개인의 책임으로 환원시키는 사회는 그냥 눈 감아 버리는 것이다. 내 눈을 감고 보지 않으면 해결한 것 같은 느낌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눈 뜨고 보려고 하면 너무나 복잡하고 어렵다. 해결이 불가능할 것 같다. 내가 어떤 걸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한다고 해도 그게 과연 해결의 방안이 될지 자신도 없고 모르겠다. 일단, 나는 정부의 기초노령연금 제도, 노인일자리 사업 등 사회복지정책과 사회보험제도에 무지하기에 좀 더 알아봐야 하겠다. 


책 관련 기사 : 시사인 <가난한 노인에게 야광조끼만 주는 사회>

https://www.sisain.co.kr/news/articleView.html?idxno=435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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