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술을 앞두고 가장 두려웠던 건 암이라는 존재보다는 수술 후의 통증이었다. 몸이 아플까 봐 두려웠다. 몸이 느껴야 하는 고통은 정신 승리로 이겨낼 수 있는 종류의 것이 아니니까. 폐 수술을 한 열에 아홉은 수술 후의 통증은 전에는 느껴보지 못한 극강의 고통이라고 했다. 누구는 무통 주사 없이 출산하는 통증과 맞먹는다고 하니 머릿속에서 별의별 통증을 상상하기 시작했다. 내장이 뒤집어지는 느낌. 폐가 뚫리는 통증. 내장 어디에도 힘을 주거나 풀 수 없는 괴로움. 상상만으로도 아이처럼 엉엉 소리 내어 울고 싶었다.
두려움 속에서 나를 지켜준 건 단 하나의 주문이었다. 결국 시간은 지나갈 것이다. 시간은 계속 흘러가고 있다. 일주일 뒤 모든 고통의 시간이 지나고 편안하게 회복하고 있는 모습을 떠올렸다. 시간은 나를 곧 폭풍우가 지나간 시간으로 데려가 줄 것이다. 이미 잘 이겨낸 내가 있다고 생각하니 왠지 용기가 생겼다.
오후 2시에 수술실로 들어갔고 회복실에서 눈을 뜨니 벽에 걸린 시계가 어렴풋하게 보였다. 오후 4시 반 정도 된 것 같았다. 점점 정신이 돌아오면서 곧바로 수술한 부위의 통증을 찾아내려고 했다. 아.. 얼마나 아플까. 드디어 고통의 시간이 오는구나. 얼마 전 담석 수술을 마치고 회복실에서 마취가 깰 때의 고통이 생생히 떠올랐기에 더 두려웠다. 하지만 마취가 덜 깬 건지 밀려오는 통증이 별로 없었다. 어? 이게 무슨 일이지? 이럴 리가 없을 텐데... 이러다 갑자기 돌격해 오겠지. 크게 느껴지지 않는 통증 앞에서도 한치도 마음을 놓을 수 없었다. 언제든 제 모습을 드러내고 달려들지도 모르기에 잔뜩 움츠린 채 바라보고 있었다. 하지만 다음날이 되어도 상상하던 통증은 내 앞에 나타나지 않았다. 믿을 수 없고 놀라운 일이었다.
물론 통증 완화를 위해 무통 주사를 맞고 있긴 했지만 나에게는 약간의 뻐근함과 근육통 정도가 느껴질 뿐이었다. 대박이다. 감사하다. 신의 보살핌이었다. 제발 아프지 않게 해 달라는 기도를 들어주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를 위해 기도해 준 많은 이들의 마음이 모아진 결과였다. 나는 신의 손길로 보호되고 그의 품 안에서 회복되고 있다는 확신이 생겼다. 어떤 두려움 앞에서도 신을 믿고 담대히 나가면 신은 나를 결코 수렁에 빠지게 하지 않는다. 두 손으로 나를 꽉 붙들어 나를 구하고 보호한다. 그것이 신의 사랑이다.
폐암이 애초에 운명에 정해진 일이었다면, 신은 내가 그것을 가장 힘들지 않게 겪을 수 있는 수많은 이야기들도 함께 만들어 낸 것 같다. 그리고 그 안에 가장 귀한 선물도 함께 넣는 것도 잊지 않았다.
폐암중에서도 착한 암으로 알려진 간유리음영인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초기발견이니 또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폐에 결절이 있다는 걸 처음 알았던 2018년부터 폐암의 씨앗이라는 사실을 알고 지냈다면 어땠을까. 죽음의 두려움과 불안함을 느끼며 고통스러워했을 것이다. 하지만 폐결절에 대해 무지했고, 그동안 신경 안 쓰고 즐겁게 살았으니 감사한 일. 어차피 그때 알았다 하더라도 크기의 변화가 없었으니 추적 관찰이었을 거다.
그리고 올해, 고민할 것 없이 수술을 해야 하는 시기에 내 상태에 대해 알게 됐다. 그것뿐인가. 나는 몇 년 사이 삶과 죽음에 대해 끝없이 고민하고 다가가면서 마음의 힘을 기를 수 있었다. 비로소 내가 폐암이라는 존재 앞에서 무너지지 않을 수 있는 시기가 되었을 때 병이 알려진 게 우연일까? 아무래도 내가 준비될 때까지 기다려 준 것만 같다. 날 기다려준 건 암일까? 신일까?
병을 바라보는 마음을 들여다보며몸에 대한 사랑을 완전히 이해하게 됐다. 모든 걸 허용하는 내 몸이 사랑이었다. 내가 못났다고 비난하고 혐오스러워할 때도 몸은 그대로를 받았다. 몸은 나의 모든 것을 허용한다. 허용은 사랑이다. 사랑은 신이다. 병을 통해서 비로소 내 몸의 온전한 허용과 사랑을 알게 됐다. 내 몸이 나타내는 현실은 신의 사랑 안에서 이미 허용된 것임을 깨달았다. 내게 나타난 암도 다른 것이 아니다. 이미 온전히 허용되어 내게 나타난 것. 이것을 내가 받아들이느냐 거부하는지는 나의 선택이리라.
난 사랑으로 허용된 아이를 안아보기로 했다. 아픈 손가락이어도 사랑에는 차이가 없다. 슬프면서도 기뻤다. 암이라는 존재를 내 아이로 온전히 받아들이는 순간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감사와 충만함을 느꼈다. 가장 비통하고 낮은 마음속에서 빛나고 값진 축복이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감동과 감사가 가득했다.
사진: 언스플래쉬
수술 후 일주일이 지났다. 내 자리가 창가라서 새벽이 밝아오는 걸 오롯이 지켜볼 수 있으니 참 좋다. 식사가 오기 전까지 10분 정도 유튜브 명상 가이드를 따라 짧은 명상을 한다. 평온하고 감사한 새벽. 숨을 들이쉰다. 폐로 부드럽게 숨을 마시고 내뱉는다. 편안하다. 얼마나 아름다운 시간인지. 폐가 일주일 만에 거의 다 회복된 것 같은 느낌이다. 숨 쉴 때힘듦이 거의 안 느껴진다. 폐가 편안해졌고, 주변의 움직임이 수월해졌다. 놀랍고 감사하다. 내가 하는 게 없다.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곤 이 놀라운 기적을 바라보고 감탄하고 감사하는 것뿐이다.
조심스럽게 두 손을 들어 기지개를 켰다. 하늘로 쭉쭉 뻗은 두 팔 아래로 어깨, 가슴, 갈비뼈 마디마디가 시원하다. 근육 하나하나를 확인할 때마다 신난다. 내 몸을 처음 만난 사람처럼 몸에 대한 호기심이 가득하다. 이것도 되나? 이렇게 하면 느낌이 어떻지? 이렇게 하니 재밌네? 몸을 탐색하며 새롭게 만나는 시간이 즐겁다.
수술 전 통증으로 두려움에 떨던 나는 정말로 수술 후 일주일 뒤의 나를 느끼고 있던 게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