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아솔 Dec 13. 2022

나를 잘 부탁해

폐결절과 함께 살아가기

폐암 소견서를 받고 가장 먼저 한 일은 폐암 환우 온라인 카페에 가입한 일이었다. 뭐든 정보가 필요하니까. 평생 가입할 일 없을 것 같던 암환우 카페에 새싹 회원이 되었고, 자유게시판에는 나처럼 처음이라 경황이 없는 신입 회원들의 질문글이 종종 눈에 띄었다. 그곳에는 1기부터 4기 말기 암인 분들까지의 이야기로 가득했다. 부고를 알리는 글들이 이곳이 죽음과 멀리 있지 않은 곳임을 알려주는 것 같았다. 처음 암센터를 방문했을 때는 평범한 많은 사람들이 나와 같은 길을 걷고 있음에 위로를 느꼈다면, 온라인 세상에서는 그렇지 않았다. 병에 대한 마음들이 드러났다. 두려움, 고통, 슬픔이 그것이었다.



마음을 다 잡았다고 생각해도 카페에 들어와 글을 읽다 보면 어느새 마음 한구석에 두려움이 밀고 들어왔다. 정말 모르는 게 약인가. 하지만 병에 대해 알게 된 이상 온라인 카페를 떠날 수가 없었다. 내가 궁금한 것 A부터 Z까지 답해줄 수 있는 누군가가 여기에 있기 때문에. 모임의 성격 때문인지 서로가 서로를 도와주려고 하는 느낌이 들었다. 매번 똑같이 올라오는 새싹 회원의 질문에도 친절하게 여러 댓글이 달렸다.



며칠을 카페 글을 찾고 읽으며 병에 대한 정보를 파악하기 시작했다. 나처럼 건강검진을 통해 우연히 폐결절을 확인한 젊은 사람들이 꽤 있었는데 대부분 간유리음영이라고 했다. 간유리음영이 대체 뭐지? 좋은 건가? 나쁜 건가? 나에겐 폐결절이 있다는 것 말고는 간유리네 고형 결절이네 이런 얘기를 해준 병원이 한 곳도 없었기 때문에 생소한 단어였다. 고형 결절이면 양성일 확률이 90% 이상이지만, 악성일 경우 예후가 좋지 않고, 간유리음영이면 악성종양으로 가는 수순이라고 볼 수 있지만, 착한 암이라 초기에 잡으면 예후가 좋다고 했다.


둘 중 뭐가 더 좋은 걸까? 내 경우 이미 고형이 진행되고 있었기에 후자이길 바랐다. 어차피 악성이라면 간유리음영이기를. 카페에서 얻은 정보를 통해 메이저 세 군데 병원에서 수술 상담을 받았다. CT 분석 결과 다행히 간유리음영이라고 했다. 하지만 한 개가 아닌 다발성이었다. 우상엽, 우하엽, 좌상엽 등에 퍼져있는 결절들. 어느 하나 마음을 놓을 수가 없구나. 하나가 좋아도 그게 끝이 아니니 말이다.



간유리음영은 바로 수술을 하지 않는다. 안에 고형물질이 없고 사이즈가 커지지 않는 순수간유리음영 같은 경우 20년을 추적하고서야 수술하기도 하고, 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커지는 속도가 빠르지 않기 때문에 일찍 수술을 했을 때 얻는 것보다 잃는 게 더 많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 경우에는 사이즈가 크지는 않지만 2년 전 5mm에서 두 배가 자라 11mm가 됐고, 간유리 안에 고형화가 진행되기 시작했기에 수술을 미룰 수 없었다.   



처음엔 이분야의 명의라고 알려진 교수님을 찾아갔다. 그 교수님은 우하엽절제술로 오른쪽 폐 30프로를 잘라내겠다며 별일 아닌 듯이 말했다. 30프로라니... 아찔하다. 1센티의 암세포를 제거하기 위해 이렇게나 많이 잘라내야 하는 거였다니. 폐의 1/3을 잘라내는 건 여기에선 아무것도 아닌 일이구나. 하지만 내겐 너무나 가혹한 선고였다.


"선생님, 혹시 폐를 잘라내면 폐가 다시 자라나요? 그만큼 잘라내고도 수술 후 일상생활을 유지할 수 있는 건가요?"


떨리는 마음으로 조심스럽게 물었다.


"아니요. 폐는 간처럼 다시 자라지 않아요. 하지만 자른 자리를 다른 폐포들이 커져서 자리를 채웁니다."  


코로 길게 숨을 들이켰다. 가슴이 위로 부풀었다 다시 꺼졌다. 평생을 이렇게 숨쉬었는데, 이젠 이만큼의 호흡이 나에게 허락되지 않는다는 의미인가. 이렇게 당연한 것이 정녕 이제 내 것이 아니란 말일까.


세 곳의 병원 상담을 마치고 나는 그중에 가장 믿음이 가는 선생님께 수술을 받기로 결정했다. 믿음도 믿음이지만, 폐를 최소로 잘라내겠다고 하신 분을 선택했다. 선생님은 20프로 구역 절제를 제시했다. 30프로와 20프로의 차이는 무시할 수 없는 수치였다. 암세포를 깨끗이 제거하는 게 우선이지만 그럼에도 폐를 조금이라도 더 남기고 싶다는 마음이 우세했다.


떨지 말자. 할 수 있어.


수술을 준비하기 위해 나는 또 다른 수술을 먼저 받아야 했다. 담석 제거 수술. 작년부터 통증이 시작된 담석이 언제든 문제를 일으킬 수 있었기에 비교적 간단한 담석수술을 먼저 받고 몸을 회복시키는데 전념했다. 그래야 본 수술을 문제없이 받을 수 있으니까. 담석수술 후 몸이 놀라울 만큼 빠른 회복을 보였다. 마치 신생아급 회복력이라고 할 수 있을 만큼.



수술 전까지 무엇보다도 체력 보강에 힘썼다. 걷기를 하고, 달리기를 하고 산에 올랐다. 생각은 하나였다. 폐의 20프로를 떼어내야 한다면 미리 120프로의 폐활량을 가진 폐를 만들자. 그럼 수술 후 회복만 제대로 한다면 거의 100프로에 가까운 수준을 유지할 수 있으니까. 몸과 마음이 하나가 되어 달렸다. 숨이 헉헉 차도록 달릴 수 있어서 기뻤다. 다리가 멈추지 않아서 감사했다. 몸이 나를 응원하는 것 같았다.





담석수술을 받고 한 달 후 수술 날짜를 잡으러 다시 병원을 찾았다.


"선생님 저 담석수술받고 회복 잘하고 왔어요. 수술 날짜 잡으려고요."


"아, 수술은 잘 받으셨어요? 제가 그동안 검사 결과를 다시 좀 봤는데 수술 방법을 좀 바꿀까 해요."


"네? 수술 방법을 바꾼다고요?"


"구역 절제로 20프로를 제거하려고 생각했었는데, 가만 보니 환자분이 다발성이라 구역 절제를 한다 해도 한 번에 모든 결절을 제거할 수가 없어요. 오히려 잘라내는 건강한 폐가 아깝네요. 그래서 이번에 문제 되는 결절만 제거하는 것으로 하려고 해요. 그것은 쐐기절제술로 가능합니다. 그럼 폐의 2프로만 제거해도 됩니다. 다른 결절들은 아직까지 문제가 되는 것들이 아니니 계속 추적해보기로 합시다."


"세상에... 그게 가능한 거예요? 2프로만 떼어낸다고요? 너무 반가운 소식인데요. 와, 정말 감사해요. 선생님."


와, 이게 말이 되는 소린가? 폐가 다시 살아났다. 새 생명을 얻은 것만 같은 얼떨떨한 기분이었다. 몸의 상태가 달라진 건 아무것도 없는데, 죽음의 선고를 받았던 폐가 내게 다시 허락되다니. 행복해서 눈물이 났다. 120프로의 폐를 만들겠다 노력한 내게 나를 돌보시는 분은 온전한 폐를 지켜주는 것으로 답을 해주시는 것 같았다.

기쁜 소식에 행복했던 그날의 나.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요?


인생은 아이러니한 일의 연속이 아닌가. 폐결절로 폐를 떼어내지만, 폐결절이 폐를 살리기도 했다. 이러니 나에게 찾아온 요 아이를 미워할 수도 사랑할 수도 없다. 이번 수술로 두 개의 결절을 제거했고, 매년 추적관찰을 해야 하는 결절이 아직 더 남아있는 상태다. 나는 두려움 속에 지내지 않을 것이다. 나에게 찾아온 것들을 기꺼이 끌어안고 더 충만하게 삶 속으로 다가가리라.



아직도 내 안에 남아있는 결절들아 우리 평화롭게 잘 지내보지 않으련? 앞으로도 나를 잘 부탁해.


    


      

이전 09화 내가 가진 비밀병기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