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덧 수술 한 지 2주가 흘렀다. 외관상으로 얼굴이 살짝 홀쭉해진 것 말고는(이것도 거의 돌아왔음^^) 수술받은 흔적을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몸은 빠른 회복을 하고 있는 중이다. 수술 후 잔기침이나 숨참의 증상으로 한참 고생한다고 한다던 말도 나에게는 (아직까지) 해당 사항이 없으니 얼마나 다행이고 감사한지.
수술을 받았으면 이제 어떻게 살면 되는 거지? 암환자라는 꼬리표가 아직 내 것인가? 재발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암환자라는 타이틀을 품고 있어야 하는 건지 잘 모르겠다. 담석수술은 담낭을 제거하고 회복하면서 담석과 관련된 잠재적인 위험성에서 완전히 벗어났지만 내가 마음대로 암이라는 질병을 수술로써 마침표를 찍어도 될지 주변의 눈치를 살피게 된다.
솔직히 말하자면 난 내 몸에서 암이라는 단어가 더 이상 떠오르지 않는다. 전이라는 두려움도 없고, 병 앞에서 스스로 물러서고 싶은 마음도 없다. 나에게 절대 전이란 없다는 마음이 아니라 나중에라도 일어난다면 그건 그때 일이라는 심정. 그때를 미리 두려워하면서 나를 병 안에 가두고 싶은 생각이 없다. 내 삶에 일어나는 일은 기꺼이 받아들이고 그것의 의미를 내 것으로 만들어가고 싶다는 소망이 생겼다. 나에게는 여전히 제거하지 않은 폐결절이 남아있다. 나는 이들의 존재를 인정했고, 함께 살아가기로 결심했고, 기왕이면 함께 잘 살아보려고 한다. 이런 마음을 내니 별로 걱정이 안 될 뿐만 아니라, 인생을 더 즐겁고 재밌게 살아보고 싶은 기운이 난다. 이게 지금 나의 솔직한 심정이다.
하지만 나를 자꾸 흔들어 놓은 말이 있다. 마음엔 이미 다른 주인이 차지하고 앉아있는데, 슬쩍 빈틈으로 들어와 속삭인다. 너 아직 환자잖아. 그냥 좀 쉬어. 아무것도 하지 말고 그냥 쉬어도 괜찮아. 넌 괜찮다고 하지만 사람들은 걱정하니 좀 맞춰 줘. 추우면 어디 나가지도 말고, 몸 건강만 신경 쓰고, 사람 많은 데는 나가지도 마. 주변에서 해주는 말이기도 하고 스스로 나에게 던지는 말이기도 하다. 물론 틀린 말이 아니고, 필요한 말이기도 할 텐데 어딘가 모르게 느껴지는 족쇄 같은 답답함. 내가 뭐라도 하려고 하면 암환자라는 푯말을 들어 확인시켜주는 것만 같다. 병이 알려지기 이전으로 돌아가긴 어려워진 건가.
글을 쓰는데 병을 앞세워 걱정하며 물러서는 마음이 진실하지 않다는 게 느껴진다. 나는 글 앞에서 나를 감출 수가 없다. 거짓을 드러낼 수 없다.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게 사실이구나. 두렵지 않다고 말하는 것이 거짓이고 오만일까 봐 이 마음을 믿고 싶지 않았는데, 오히려 물러서니 그 모습이 진실하지 않기에 몹시 불편함을 느끼고 있었다.
나는 변하지 않음을 알고 있다. 변하지 않는 내가 있음을. 모든 조건이 바뀌어도 변하지 않는 나인 존재. 암환자라는 타이틀을 계속 끌어와 나에게 상기시키려고 노력하는 마음 하나가 나인 것처럼 보이려고 애쓰고 있었다. 그 마음이 진실로 내가 아님을 바라볼 수 있게 되니 모든 걱정이 스스로 풀어진다. 나는 암환자가 아니다. 아니 암환자여도 상관없다. 그것이 나의 존재함에 영향을 줄 수 없으니. 조건을 붙들려고 할 때 그리고 그 조건을 나와 동일시할 때 고통이 시작된다. 두 조건을 모두 내려놓으니 그에 따른 고통이 사라지는 경험을 하게 된다. 이 글을 쓰면서 알려진 것이다. 글은 나에게 치유 그 자체이다. 그래서 내가 글쓰기 앞에서 그토록 처절하게 진실하기를 노력하나 보다. 나에게 온 축복이고 선물이다.
암 수술을 받고 난 이후의 나는 뭐냐고? 어떻게 살아가면 되냐고? 나는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다. 이전의 나와 이후의 나. 무엇이 변했는가? 매 순간 찾아오는 온갖 감정들 슬픔, 기쁨, 고통, 즐거움을 충만히 느끼며 감사하는 나는 여전하다. 그 과정을 하나하나 알아차리며 느끼고 있는 모든 순간이 즐거운 나이다. 지금처럼 그냥 잘 살면 되는 거였다. 늘어놓은 거실을 그대로 두고 식탁앞에 앉아 식빵 한쪽을 먹으며 이 글을 쓰는 지금처럼 말이다. 행복한 아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