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내가 쓴 글을 읽으면 묘한 감정이 든다. 지극히 나인 그대로이면서도 내가 완전히 감춰져 있다고나 할까? 혼자 딴 세상에 살고 있는 사람 같다. 완벽히 무언가에 보호받는 온실 속 세상에서 살고 있는 순진무구한 공주님? 공주님은 좀 지나친가? 아무튼. 온라인 속 아솔이라는 인물의 일상은 이래도 감사하고 저래도 감사하고 아름답기만 하다니 늘 평온하고 고요할 것만 같은 느낌. 이리저리 좌충우돌하는 삶이라야 옆에서 들여다보는 맛이라도 있을 텐데 재미라고는 일도 찾아볼 수 없는 싱거운 맛. 내가 좀 그랬나? 너무 했네.
혹시라도 더 오해가 쌓이기 전에 분명히 밝혀둬야겠다. 나는 매사 진중할 것 같지만 전혀 그렇지 않고, 재밌고 가볍게 사는 걸 추구하는 편이라는 걸. 일상생활에서 만나는 나는 엉뚱하고 말하기를 좋아하고 엉성하기 그지없는 사람이다. 코미디 프로에서 보면 한 글자 차이로 전혀 다른 의미를 말해서 사람들을 배꼽 잡게 할 때가 있는데, 나는 늘 그랬다. 아직도 기억에 남는 건 중학교 때인가 '사랑을 그대 품 안에'라는 드라마가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시절. 남자 주인공을 떠올리면 어찌나 가슴이 콩닥콩닥 뛰던지. 학원에서 연습장을 펼치고 소중하고 소중한 그이의 이름을 한 자 한 자 써 내려갔다. 차. 인. 태. (이 글을 보고 알아차리는 당신은 후훗. 그대는 중년이어라 ㅎㅎㅎㅎ) 옆에 있던 친구가 박장대소하며 날 비웃던 그날을 잊을 수가 없다.
나는 엉뚱함의 짜릿함을 즐기기도 한다. 엉뚱하지만 재밌잖아. 부끄러운데 한 번쯤 질러보면 신나니까. 회사를 재미있게 다니고 싶었다. 남들은 회사가 족쇄 같고 괴롭다지만, 고정관념을 깨고 회사에서의 시간도 내 삶에 빛나는 시간으로 채우고 싶었다. 연구소 책상에 너무 앉아만 있으니, 같은 실험실을 쓰는 선배들에게 두 시간에 한 번씩 모든 걸 멈추고 동시에 줄넘기를 하자고 했다. 아니면 둘씩 편을 먹고 1층부터 9층 실험실까지 계단 이어 달리기 간식 내기를 하지고 제안을 해보기도 했을 때, 사람들은 내 말을 우스갯소리로 들었지만 난 진심이었다. 엉뚱한 시도이지만 즐거운 일이잖아. 상상만으로도 웃긴 일들을 내 삶에 가득 채우고 싶었다. 웃긴 상상들이 내 삶을 통해 드러났을 때 해방감을 느꼈다. 내 몸엔 희극인의 피가 흐르고 있는 건가?
신나고 즐거워서 하는 일 중 하나가 바로 뮤지컬 극단이다. 일상에서 꺼내보지 못하는 과감한 표현들을 시도해 볼 수 있다는 것이 짜릿하고 즐겁다. 순간순간의 감정을 감추지 말고 더 느끼고 더 드러내야 한다는 것에 매력을 느낀다. 얼굴에 철판을 깔고 능청스럽게 연기를 해 나가는 나를 마주하는 게 얼마나 재밌는지. 그로 인해 사람들이 즐겁다면 나 또한 덩달아 즐겁다.
반면에 혼자 있으면 끝도 없이 진지함 속으로 빠져든다. 나를 찾고야 말겠다고 나에게 뛰어들었기 때문이리라. 한참 내려가다 이쯤이면 끝인가 했더니 이건 끝이 안 보여. 근데 이게 포기가 안 되고, 나를 더 끌어당긴다. 그러다 보니 점점 혼자만의 시간을 즐기게 됐다. 나에게 질문을 던지며 끝없이 생각의 꼬리를 물고 따라가는 과정이 재밌어졌다. 그 시간들의 흔적이 바로 나의 글이다. 글로 쓰지 않으면 드러나지 않을 나이기에 더 집중해서 신중하게 글로 옮긴다. 나도 귀를 기울여야만 들을 수 있는 것들이니. 내 안에 투명한 것들이 반짝인다는 것을 알았다. 그것을 기쁜 마음으로 쓰다 보니 글이 온통 한 방향으로 흘러버려 요즘과 같은 글이 나왔다.
글에 담고 싶은 마음이 소중해서 그렇다. 소중해서 공을 들이고 싶어서. 사랑하는 사람을 떠올리 듯 애틋한 마음으로 글을 쓰려는 마음. 아하. 그럴 수밖에 없음을 깨닫는다. 내가 나를 사랑하는 마음 그대로를 글로 옮기는 게 대부분이니까. 이래서야 어디 유쾌한 글을 쓸 수가 있겠나. 언젠가 그런 때도 오겠지. 지금은 한결같이 나를 사랑한다며 나를 돌보는 마음을 받아줘야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