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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딱 일 인분 Dec 08. 2016

무장해제 될 수 밖에 없었다고.

할머니의 목소리

지난 달 엄마 생신 날, 엄마는 아침에 할머니와 통화하다 돌연 눈물을 쏟았다. 엄마의 울음은 그칠 줄 몰랐고, 옆에 있던 동생과 나는 당황하였다. 수화기 너머 할머니는 걱정하였고, 엄마는 다시 연락드리겠다며 전화를 서둘러 끊은 후 한참을 그렇게 울었다. 나중에 물어보니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는 엄마의 대답, 할머니의 밝은 목소리에 울컥하였다는 엄마의 대답을 듣고 그냥 엄마가 요즘 많이 힘들구나 그정도- 생각하였다.

어젯밤 나는 이젠 정말 자야한다-고 한참을 되뇌인 끝에 겨우 잠이 들었고, 얼마지 않아 다시 눈을 떴다. 일어남과 동시에 또다시 이 작은 핸드폰 액정을 통해 괴로운 현실을 바라보다 문득 할머니와 통화를 하고 싶어졌다. 신호음 멈추고 들려오는 '여보세요?' 한 마디에 눈시울이 뜨거워졌고 '너의 목소리가 그리웠단다'는 그녀의 두 번째 문장에 고개를 떨군다. 그 어떤 일도 의미가 없이 느껴지는 이 무기력증 속에서, 괴로워도 계속하여 지켜봐야하는 이 상황들 속에서, 오늘 하루를 살아갈 힘을 찾지 못하고 있었는데 할머니의 낭랑한 목소리에서 적어도 일주일은 버틸수 있는 힘을 찾는다.

오늘 왜 울고말았냐고 묻는다면 나 역시도 모르겠다며, 그냥 여성으로 89년을 살아온 그녀의 그 힘찬 목소리에 무장해제 될 수 밖에 없었다고 답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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