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이제야 나는 존엄한 죽음의 진정한 의미를 깨달았다
나는 지금 한국에 있다. 한국에서 9월부터 10월 초까지 한달을 휴가를 겸해 가족들과 시간을 보낸 뒤 런던으로 돌아간지 두 주도 채 되지 않은 시점에 다시 한국에 왔다. 아빠에게 심정지가 왔다는 비보를 동생에게 전해듣고 난 뒤 허둥지둥 날아왔다.
내가 도착한 날은 10월 23일, 22일 소식을 듣고 바로 비행기를 탄 덕분에 돌아가시기 전 아빠를 볼 수 있게 되었다는 안도감은 잠시였고, 지금까지도 난 아빠의 갑작스러운 사고에 어찌할바를 모르고 있다.
존엄한 죽음을 우리 모두는 원한다고 생각한다. 나 또한 온 몸에 링거를 주렁주렁 단 채 의식불명인 상태에서 살고 싶은 생각도 없고, 뇌사일 경우 장기를 기증하겠다는 서약을 하긴 했지만, 왜 그렇게 존엄한 죽음이 중요한 것인지 닥치고 나서야 진정한 의미를 알 수 있었다.
심정지가 온 아빠를 엄마는 심폐소생술로 겨우 살렸고, 병원에서 약 한 시간 가량의 씨름끝에 숨은 쉴 수 있게 되었다. 그 사이 서울에 사는 동생이 구미 병원으로 내려왔고, 연명치료는 하지 않겠다는 서류에 사인을 했다고 한다. 그리고 나도 남편과 함께 23일 밤에 병원에 도착했다.
내가 도착하던 날 의사는 우리가 연명치료를 하지 않겠다는 사인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수혈여부를 우리에게 물었다. 그가 보기엔 미약하지만 희망이 있을 것 같기도 하다는 것이었다. 그런 그의 설득에 우리는 수혈에 동의했다.
다음날 담당 의사를 만나러 갔다. 이제는 신장이 기능을 하지 않기 때문에 투석을 해야한단다.
하루 이틀이 지나도 차도는 보이지 않는다. 눈을 떳다 감았다, 팔을 한번씩 떠는 모습에 우리는 갸날프게나마 희망을 가져보기도 했다. 하지만 그건 그저 불수의적 운동과 같다는 의사에 말에 우리는 다시 한번 희망을 꺾어야 했다.
시간이 가면서 우리는 점점 희망을 잃어간다. 의식이 돌아오려면 이미 벌써 돌아왔어야 하기 때문이다. 병원 중환자실에 의식없이 누워있는 아빠를 보는 것이 그나마 아직 살아계시다는 위안이 되면서도 한편으로는 아빠가 저렇게 살아있기를 원하는 것일까하는 의구심이 날이 지날수록 늘어갔다. 말하지도, 움직이지도, 씻지도, 먹지도 못하는 상태에서 살아있다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일까? 가족들에게 보살핌을 받는 것도 아니고 생판 모르는 남들에게 기대어 삶을 연장하는 걸 아빠는 바랬을까? 정말 오만가지의 의문과 생각들이 하루에도 몇 번씩 나와 우리 가족을 괴롭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