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식년 또는 연구년
교수라는 직업의 가장 큰 장점은 안식년 혹은 연구년 제도이다. 여름방학과 겨울방학은 모든 초중고 교사들이 다 누리는 휴식의 시간이지만, 연구년 제도는 아주 일부의 교사들만 누릴 수 있는 특혜에 가깝다. 교수들도 누구나 조건 없이 연구년을 가질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정년 트랙의 교수라면 대체로 7년~10년에 1년 정도 기회를 얻을 수 있다. 요즘은 나처럼 6개월씩 연구년을 신청하는 교수들도 꽤 늘고 있다. 6개월 연구년을 쓰게 되면 7년 대신 3년 6개월 만에 다시 연구년을 신청할 수 있다. 연구년과 안식년이라는 두 용어는 자주 혼용되어 쓰이는데, 강의를 하지 않고 쉬는 시기임을 강조하면 안식년, 연구에 집중하는 시기임을 강조하면 연구년이라고 한다. 요즘 교수들은 연구 성과에 대한 압박이 크기 때문에 안식년이라고 맘 편히 쉬는 경우는 별로 없다. 대부분의 대학이 연구년이 끝남과 동시에 그간의 연구 성과 제출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나는 2009년 미국에서 교수 생활을 시작하여 지금까지 한 번도 안식년을 갖지 못하고 학생들을 가르쳤다. 어떤 학기에는 15시간 수업을 한 적도 있으니, 이제는 한 번쯤 쉬어갈 때도 되었다. 요즘 교수들은 급변하는 환경 속에서 각자 자신이 속한 대학이 살아남을 방도를 강구하느라 교내 봉사에도 상당한 시간을 할애해야 하는데, 나도 예외는 아니어서 학생들의 취업과 대학 생활 적응 등을 돕는 업무에 적잖은 에너지를 써야 했다. 쉬어간다고 말하긴 했지만, 한 학기라도 수업과 교내 봉사로부터 해방되어 연구에 매진할 기회가 꼭 필요한 상황인 것이다.
연구년 기간 동안 월급은 어떻게 되나 궁금한 사람이 많을 것 같다. 원론적으로 말해 연구년 기간에도 월급은 나온다. 우리 대학의 교수 월급은 기본급, 연구지원비, 강의 수당, 보직 수당 등으로 구성되는데 연구년 동안 강의와 보직은 맡지 않으므로 기본급과 연구지원비를 받게 된다. 따라서, 연구년 기간 동안 월급을 받기는 하지만 평소보다는 적게 나온다는 얘기다. 강의 수당이 없는 방학 동안을 '보릿고개', '춘궁기'라고 부르는 동료들도 있는데, 연구년은 말하자면 좀 긴 보릿고개가 되겠다. 물론 연구년 기간 동안 외부에서 펀딩을 따 프로젝트를 진행하여 평소보다 돈을 더 버는 교수들도 많이 있다.
나는 원래 작년 가을 연구년 대상자였는데, 학교 사정으로 1년이 미뤄졌다. 그만큼 연구년에 대한 나의 갈망은 더 커질 수 밖에 없었다. 동시에 나의 피로도는 더 누적되어 앞뒤 잴 것 없이 일단 푹 쉬고 뒷일을 생각하겠다고 결심하기에 이르렀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연구년이 끝나는 순간 학교에서는 숙제 검사를 할 것이기 때문에 영영 놀기만 할 수는 없지만, 일단 한 달은 쉬면서 정신을 차려보고 싶다.
때마침 친구가 강릉에 사놓은 집이 비어 있고, 언제든지 가서 마음껏 즐기라는 초대를 받았으므로 나는 염치 불구하고 강릉행을 택했다. 주인 없는 집을 차지하고 지내자면 소심해지는 순간도 있겠지만, 최대한 밥값 아니 방값 하는 투숙객이 되어 마당과 텃밭을 관리하고, 살림을 쓸고 닦고 하면서 미안한 마음을 달래기로 한다. 살다 보면 언젠가 나도 그 친구에게 호의에 보답할 날이 오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