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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느님 Jul 14. 2022

강릉 일기 #3

허남매 공원과 바닷가 1열

아침부터 비가 많이 왔다. 이 비를 뚫고 나가야 하나 망설이며 어제 사온 계란을 풀어 라면을 하나 끓여 먹었다. 썬룸의 폴딩도어를 모두 열어 놓고 빗소리와 비 냄새 속에 라면을 먹었다. 분위기 탓인지 배가 고팠는지 라면은 어느 때보다 맛있었다. 클로이에겐 어젯밤에 구운 고구마를 두 개 먹였다. 


생각보다 클로이는 비를 마다하지 않는다. 입은 옷이 다 젖고 눈도 뜨기 힘들 정도로 비가 쏟아지는데도 마당에서 집으로 들어올 생각이 없다. 잠깐 한눈을 파는 사이 마당에 있던 클로이가 보이지 않는다. 목놓아 이름을 불러봐도 대답이 없다. 마당을 벗어났다면 사방이 산인데, 어디로 갔는지 찾을 방도가 없다. 등에 식은땀이 한 줄기 흐른다. 급하게 현관문을 열고 뛰쳐나가는데, 클로이가 현관 앞에서 문을 열어주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런 구조의 집에 살아보질 않아서 어찌할 바를 몰랐나 보다. 클로이는 종일 혼자 집에 있어도 될 만큼 지쳤고 비도 좀 그쳤으므로, 간단히 소지품을 챙겨 오늘도 강릉 구경을 나갔다. 




오늘의 목적지는 허균 허난설헌 공원과 카페거리다. 우선 허균 허난설헌 공원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조금씩 내리는 빗속에서 깨끗하게 정리된 공원을 구경했다. 요즘은 어딜 가나 조경이 잘 되어 있지만, 강릉에 와보니 조경에도 나름의 지역색이 있다. 대전에서는 튤립나무 명찰을 달고 있던 나무인데, 여기서는 백합나무라는 이름표가 붙어 있다. 사람도 이름 외에 별명, 호와 자까지 갖춘 사람이 있듯이 나무들도 이름이 여럿인 경우가 있다. 강릉에는 가로수에도 능소화가 피어 있더니 허균 허난설헌 생가에서도 그 아름다운 빛깔을 뽐내고 있다. 능소화는 내가 어린 시절 상당히 귀한 꽃이었는데, 미국 생활을 마치고 돌아온 2012년엔 한국에서 흔히 보는 꽃이 되어 있었다. 대전에서 딸아이가 다녔던 초등학교 교문에도 능소화가 있었다. 그런데 여기 초당 고택에서 발견한 안내 표지판에 따르면 능소화는 양반꽃이라 하여 조선시대에는 오직 양반집에만 심을 수 있었다 한다. 중국을 통해 들어온 이국적인 귀한 꽃이 아니었을까 상상해 본다.

허균 허난설헌 생가와 안뜰에서 만난 꽃들 (파란 꽃은 산수국, 오렌지색 꽃은 능소화)


잘 알려진 것처럼 허균은 홍길동전을 쓴 작가다. 최초의 한글 소설로 알려져 있다. 재주가 뛰어나고 여러 차례 벼슬을 했던 양반이 한글로 소설을 쓰고, 더구나 그 내용이 적서차별을 비판하고 율도국이라는 이상국을 세우는 이야기라니 놀랍다. 광해: 왕이 된 남자라는 영화에서 류승룡이 맡은 역할이 허균을 모델로 했다고 한다.  허균은 몇 번이나 관직에 올랐다가 파직을 당하기를 반복했는데, 재주가 뛰어남에도 불구하고 너무나 개혁적인 성향이 강했던 탓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능지처참형으로 생을 마감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마지막으로 남긴 말이 “잠깐, 아뢰올 말씀이 있소이다!”라고 한다. 현대어로 옮기자면 “잠깐만! 할 말이 있습니다”가 되겠다. 늘 하고 싶은 말이 많고, 들어주는 귀를 아쉬워 하는 나에게 참으로 인상적인 마지막 한 마디가 아닐 수 없다.


허난설헌은 허균의 누나이다. 양천 허씨 집안이 배출했다는 당대의 조선 5대 문장가 중 유일한 여성이기도 하다. 본명은 초희이지만 난처럼 청초하고 눈처럼 순수하다는 뜻의 호로 더 널리 알려졌다. 개혁적인 집안 분위기 덕에 여성임에도 불구하고 시문을 배우도록 지원을 받았다. 그녀가 쓴 광한전 백옥루 상량문이라는 글이 너무나 매력적이라 중국에서도 그 필사본을 구하려는 사람이 많았다고 한다. 허난설헌은 평범한 양반가의 며느리로 출가하였으나 남편이 힘들게 관직에 오른 후 외도를 일삼고, 고부 갈등이 심한 중에 어린 두 자식을 잃었을 뿐 아니라 태중에 셋째 아기마저 유산을 하고 스물일곱의 나이에 요절했다. 조선 시대에 여성이라는 굴레는 허난설헌 같은 천재에게도 벗어날 길 없는 무겁고 무거운 것이었다.

자식을 둘이나 먼저 보내고 임신한 상태에서 지은 허난설헌의 시. 안타깝게도 셋째 아이마저 유산하였다 하니 어미로서 그 고통이 얼마나 컸을지 상상하기 어렵다.


허균 허난설헌 생가에 맞닿은 울창한 소나무 숲이 있다. 하늘까지 뻗은 소나무들 사이로 오솔길을 걷다 보면 바우길 14코스라는 둘레길이 나온다. 이 둘레길의 별명은 초희길이라고 한다. 이 공원의 이름에 허균과 나란히 그녀의 이름을 넣은 것이며 공원 한가운데 그녀의 동상을 배치한 것만 해도 놀라웠는데, 그녀의 이름을 붙인 둘레길까지 있다니 허난설헌에 대한 강릉 사람들의 마음이 무척 애틋함을 느낄 수 있다. 강릉터미널에서 시작하여 초당마을을 지나 경포바다에 이르는 무척 아름다운 길이라고 하니, 시간이 된다면 한번 걸어보고 싶다.  




허난설헌에게 작별을 고한 뒤 안목해변-강릉 카페거리로 향했다. 세찬 비가 한차례 쓸고 지나간 뒤 잠시 하늘이 개면서 남쪽으로 한 번도 본 적 없는 은은한 핑크빛이 떠올랐다. 그 하늘빛을 카메라에 담고 싶어서 무작정 걷다 보니 강릉항(안목항)과 솔바람다리가 나왔다. 바람이 많이 탓에 내가 좇고 있는 그 빛깔도 빠르게 이동을 하고, 나는 홀린 듯이 하늘만 보며 걸었다. 


그런데, 이게 무슨 일인가. 길을 건너느라 내려다본 바닥에 두 번 접힌 오만 원권 지폐가 떨어져 있다. 그냥 가져가면 <점유물 이탈 횡령죄>라는 얘기도 있고 해서 망설여지기는 했지만, 주변에 사람은 없고 바람은 세차게 부는데 그냥 두고 가면 바다로 날아가 버리겠고, 만약 그렇게 되면 조폐공사에서 세금으로 찍어낸 돈이 사라지는 것이니 국가적 낭비일 뿐 아니라, 바다 생물들에게는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쓰레기가 하나 추가될 뿐이지 않겠는가. 빠르게 자기 합리화의 회로를 돌려 국가와 지구 환경을 위한다는 명분으로 오만 원권을 주워 주머니에 넣고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솔바람다리 위로 올라갔다. 


다리 위에 올라가면 멋진 하늘빛을 한참 지켜볼 계획이었는데, 갑자기 바람이 거세지고 폭우가 쏟아졌다. 바람과 함께 쏟아지는 비를 맞으니 우산을 써도 바지가 다 젖었다. 할 수 없이 방향을 바꿔 카페거리에서 돌아왔다. 강릉을 대표한다는 카페커리인 만큼 카페가 너무 많아서 어느 하나를 고르기가 어렵다. 여기까지 와서 스타벅스를 들어가고 싶지는 않은데, 미리 검색을 해 보고 온 것도 아니고 들어본 이름도 없어서 빗속에 한참을 헤맸다. 앞으로 강릉에서 지낼 날이 많은데, 마치 이 곳에 평생 한번밖에 못 올 사람처럼 너무 신중하게 고르느라 이 고생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퍼뜩 들었다.


그렇게 생각하니 마음이 한결 가벼워지며, 무조건 전망이 좋은 카페에 들어가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러고 보니 너른 통창이 3층까지 연결되는 AM이라는 카페가 보였다. 좌석부터 확보할 심산에 엘리베이터를 타고 3층으로 직행했다. 바다를 향한 좌석들이 계단식으로 층층이 배치되어 많은 사람이 바다 뷰를 즐길 수 있도록 되어 있다. 이렇게 배치된 좌석 중에는 맨 앞줄만 테이블이 있는데, 다행히 한 자리가 비어 있었다. 옆자리를 차지한 두 소녀에게 음료를 주문하고 올 테니 자리를 맡아달라 부탁하고 우산과 소지품을 자리에 두고 주문을 하러 갔다. 


아이스 아메리카노와 캐러멜 스콘을 사서 돌아오니 소녀들이 내 자리를 잘 지키고 있었노라 눈짓으로 알려준다. 자리를 잡고 앉아 몸을 말리며 한참 바다 멍을 했다. 맛과 향보다는 볼거리를 즐기는 사람이라 커피와 스콘의 맛이 어땠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그저 앉은자리에서 보던 바다의 이미지만 강렬하게 남아있다. 지중해의 산뜻한 파랑색도 아니고, 도버 해협의 우중충한 바닷색도 하니고, 오랜 시간이 흘러 빛바랜 사진 속의 바다 같은 그런 모습이었다. 오래 전 영국의 본머스(Bournemouth) 해변에 앉아서 한참을 바라보았던 바다와 비슷한 것도 같은데, 다시 생각해 보면 바다의 모습이 비슷한 게 아니라 혼자 바다를 향해 앉아있다는 상황이 비슷할 뿐이다. 어쨌든 그 자리에서 찍은 바다 사진이 마치 수채화처럼 아름답다. 


친구들에게 안목해변의 사진을 첨부해 안부를 전했다. 한때는 여행지에서 짧은 엽서를 적어 친구들에게 보내곤 하였는데, 이제는 세상이 변하여 사진과 함께 카톡을 보낸다. 낯선 곳에서 새로운 것들을 보고 겪으면 생각나는 친구들이 있다. 딱히 함께 하지 못하는 아쉬움도 아니고, 그렇다고 해서 주목 받고 싶거나 자랑하고 싶은 마음도 아니다. 누군가 함께 하는 여행이라면 순간순간 "와! 저것 좀 봐!"하였을 것을 혼자 하는 여행이라 멀리 있는 친구에게 대신 하는 것이라고나 할까? 어쨌든 누군가와 함께 하는 여행에서는 좀처럼 하지 않는 행동이니 말이다.


안목항의 솔바람 다리(왼쪽)과 카페 3층에서 즐기는 안목해변


바다를 바라보고 멍하니 앉아 있자니 문득 나는 강릉에 하루 이틀 지내러 온 관광객이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나는 분명 "강릉에 살아보기"를 하러 온 사람인 것이다. 그렇다면 이렇게 관광객 모드로 지낼 것이 아니라 우선은 이 지역 시장을 가봐야 한다. 강릉의 전통시장을 검색하니 제일 먼저 강릉중앙시장이 뜨고, 이곳은 이미 관광명소이기도 했다. 더구나 월화거리라는 문화거리가 바로 연결되어 살아보러 온 사람은 말할 것도 없고 관광객이라 해도 반드시 가봐야 하는 곳이라고 했다. 주운 돈은 먹어서 없애야 한다는 소신도 실천할 겸 신발에 묻은 모래를 탈탈 털고 강릉중앙시장으로 향했다.




중앙시장은 어제 드라이브하면서 반해 버린 강릉 남대천에 접해 있었다. 아름다운 페투니아 화분으로 장식된 바로 그 다리가 월화거리의 일부였고, 강릉 남대천을 가로지르는 다리였다. 주차를 하고 나니 소나기가 지나간 것처럼 하늘이 파랗고 땅은 흠뻑 젖어있는 풍경이 펼쳐졌다. 월화거리에는 빈티지 감성의 독특한 가게들도 많았고, 인스타와 블로그에서 반드시 먹어봐야 한다는 것들과 반드시 가봐야 한다는 곳들로 가득했다. 


딱히 배가 고프지도 않았고 아직 식사시간도 아니어서 마땅히 먹을 것을 찾지 못하다가 중앙시장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배니닭강정을 반마리 샀다. 시장에는 닭강정 집이 많았지만, 방송에 소개되어 유명세를 탄 이 집이 사업을 확장하여 시장을 반쯤 먹어버린 형국이었다. 안타까운 마음이 들어 다른 이름없는 가게에서 살까 하다가, 이번 여행에서는 이렇게 생각이 많은 내 모습을 좀 고쳐보기로 했기에 그냥 눈 질끈 감고 배니닭강정으로 샀다. 


민트색 포장박스가 인스타에 최적화된 강릉 명물이라는 커피콩빵도 한 상자 샀다. 마지막으로 강릉 수제 맥주를 사겠다고 월화상점을 찾아다녔는데, 그야말로 등잔 밑이 어두운 꼴이었다. 월화상점은 내가 주차를 할 때 등을 진 바로 그 가게이며, 닭강정을 산 배니닭강정에서도 180도 돌아서면 바로 거기에 있었다. 코앞에 있는 월화상점을 찾느라 땀에 흠뻑 젖은 나는 선물가게에 들러 오션홀릭(oceanholic)이라는 버블 입욕제 볼 하나와 수달 모양의 작은 배지를 강릉 여행 기념품까지 샀다. 닭강정, 커피콩빵, 수제 맥주에 선물까지 샀는데도 주운 돈 오만원은 다 쓰지 못했다. 


흠뻑 비에 젖은 바닥과 흐린 하늘 사이에서 눈 부시게 빛나는 가게가 변화무쌍한 강릉의 날씨를 보여준다.


강릉 남대천으로 이어지는 월화거리. 다양한 그라데이션의 페투니아가 교량 양쪽을 화려하게 장식한다.
월화거리에서는 누구나 포토그래퍼. 나도 모르게 카메라를 들게 된다.


열렬하게 나를 반겨주는 클로이를 마당에 풀어놓고 황급히 샤워를 한 후, 닭강정과 강릉 수제 맥주로 저녁식사를 대신했다. 필요한 건 다~ 있는 줄 알았던 이 별장에 없는 것이 딱 한 가지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병따개였다. 그 사실을 하필이면 맥주를 마시려는 바로 그 순간에 알게 되었다. 병따개가 없으면 숟가락으로 따는 모습을 많이 보았기에 까짓거! 하면서 시도해 보았지만, 손만 무척 아프도 뚜껑은 열리지 않았다. 이럴 땐 무엇이든 물어볼 수 있는 유튜브가 있다. 금방 요령을 터득하여 맥주가 식기 전에 문제를 해결했다. 닭강정은 생각보다 매웠고, 맥주는 생각보다 썼지만 아주 행복한 저녁식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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