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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느님 Jul 14. 2022

강릉 일기 #2

강문해변과 카페 춘식이

낯선 곳이라 그런지 아침 일찍 눈을 떴다. 클로이와 함께 마당에 나가 아침을 즐겼다. 비가 쏟아지지는 않고 부슬부슬 내리는지라 마당에 서서 커피를 마실 만했다. 썬룸(sunroom)의 폴딩도어를 전체 개방하고 방충망을 설치하니 운치도 있고, 그동안 쌓였던 집안의 열기도 빠진다. 무작정 달려오기는 했는데, 오늘은 뭘 하면서 시간을 보낸담? 일단 네이버에서 강릉 여행 블로그들을 찾아봤다. 요즘은 경포대보다 강문해변이 핫플인가 보다.  어제저녁에 먹고 남은 된장찌개로 아침 식사를 하고 여유 있게 강문으로 향했다.


강문해변은 여기저기 감각적인 포토존과 아기자기한 가게들이 많아 인스타를 하는 젊은 여행객들에게 특히 사랑을 많이 받는 듯하다. 공영주차장에 기가 막히게(!) 주차를 하고, 해변을 걷다 보니 나도 사진이 찍고 싶어진다. 큰 맘 먹고 장만한 셀카봉은 왜 안 챙겨 온 걸까. 나의 팔이 허락하는 딱 그만큼의 거리를 두고 찍는 셀카는 어떻게 찍어도 내 얼굴만 크고 바다는 조금만 보인다. 수차례 시도한 끝에 그나마 제일 낫게 나온 사진을 가족과 친구들에게 보냈다.

처음 만난 강문해변. 구름 사이로 쏟아져 내리는 햇살이 드라마틱하다.

모래사장은 걷기만 해도 체력이 너무 소진되므로 살짝 밖으로 나와 보행로를 걷는데, 어떤 젊은이가 나에게 사진 촬영을 부탁했다. 키가 크고 건장한, 마스크를 반쯤 걸친 청년이었는데 스마트폰이 너무 구형이라 깜짝 놀랐다. 요즘은 중고등학생도 최신폰을 쓰는 게 일반적인 줄 알았는데, 이런 폰을 쓴다니 괜히 호감이 간다. 그런데 이 오래된 폰의 화면이 어찌나 어두운지 뭐가 뭔지 잘 보이질 않는다. 어렴풋하게 피사체가 화면 중앙에 있다는 것만 확인하고 찍었다. 혹시 쭈그리고 앉아서 찍으면 조금 더 나은 앵글이 될까 싶어 시도해 보았지만, 피사체가 워낙 멀어서 효과가 있을 것 같지는 않았다. 이 소박하고 순수한 젊은이에게 멋진 기념사진을 남겨주고 싶었는데 아쉽다. 내가 기다리는 게 미안한지 청년은 걷기만 해도 힘든 모래사장을 뛰어서 돌아와 예의 바르게 인사를 한다. 잘 자란 남의 아들에 흐뭇하게 바라보며 떠나 보내고 나니 그제야 정신이 든다. 아, 그 청년에게 나도 사진 한장 부탁을 했으면 내 짧은 팔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었을텐데!


점심을 먹으러 바닷가 바로 뒤에 있는 초당두부마을을 찾았다. 초당은 강문해변 옆 동네의 이름이다. 허균과 허난설헌 남매가 나고 자란 동네이다. 두부를 만들려면 콩 단백질을 간수로 응고시켜야 하는데, 동해 바닷물로 응고시킨 것이 초당두부의 비결이라고 한다. 초당두부가 워낙 유명하다 보니 두부 전문점들이 많이 모여있는데, 그 구역에 초당두부마을 간판을 달았다. 인스타 성지다운 매력적인 가게들을 다 지나고, 제일 안쪽에 원조임을 자부하는 식당에 주차를 하고 들어갔다. 메뉴는 순두부백반과 순두부전골 두 가지. 혼자 먹기에는 백반이 나을 듯하여 그걸로 주문하였다. 이 식당은 들어오자마자 살짝 후회가 들었는데, 일단 안에서 보나 밖에서 보나 요즘 젊은 소비자들의 취향과는 거리가 멀었기 때문이다. 나도 젊은 사람은 아니니 그건 문제가 되지 않는데, 오로지 이 식당이 원조라는 것, 고인이 되신 어머니의 기술과 정성을 물려받아 아들 며느리 손주가 운영하고 있다는 점, 인근 식당보다 가격이 저렴하다는 점만을 강조하는 인테리어가 너무 상업적인 느낌을 주었다. 마음 편히 음식을 즐기기보다 계산기 두드려가며 여기에 오길 잘 했다고 생각하도록 유도하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순두부 백반에는 순두부 뚝배기 외에도 뜨끈한 모두부 한 장과 콩비지 약간, 깍두기를 넣어 끓인 된장찌개까지 같이 나와 양이 무척 많았다. 맛은 괜찮았지만 도저히 다 먹을 수는 없는 많은 양이고, 포장해서 들고 올 수 있는 성격의 음식도 아닌지라, 죄스럽게도 잔반을 잔뜩 남기고 일어서야 했다.


다음으로 간 곳은 카페 춘식이. 강릉에 시댁을 둔 친구가 지역 주민만 아는 보석 같은 집이라며 오늘 아침에 소개해 주었다. 단층 건물인 데다 대형 트럭에 가려 코앞에 두고도 한참을 헤맨 끝에 간신히 찾았다. 춘식이에 카페라니... 뭔가 어울리지 않는 조합의 이름이라 호기심을 자극한다. 카페의 규모는 아담하지만 넉넉하게 여백을 많이 둔 인테리어에 세련미가 있다. 사장님은 친근하고 동글동글한 얼굴에 강릉 억양을 가진 아주머니인데, 노란색의 상큼한 니트탑을 입고 카페 인테리어에 포인트가 되어 주셨다. 가장 큰 6인용 테이블에는 카카오 프렌즈의 춘식이 캐릭터 인형이 한 자리를 당당히 차지하고 있었다. 그래서 이름이 춘식이 카페인가? 하고 사장님께 여쭤보니, 카페의 이름은 이 캐릭터가 아니라 사장님의 어머니 함자에서 따온 것이란다. 어머님의 함자가 춘식인데 한번 들으면 잊히지 않을 이름이라 카페 춘식이로 지었다고 한다. 뜻밖의 이야기에 웃음이 절로 난다.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한잔 주문하여 마시다 보니 베이커리 테이블에 물질하는 춘식이 인형도 있다. 나름 해녀 복장을 제대로 갖추었고, 테왁 위에는 문어까지 한 마리 앉아있다. 


카페 위치가 강릉여고 바로 앞이라, 강릉여고 출신인 선배 언니에게 카톡을 보냈다. 잠시 후 언니에게 전화가 와서 잠시 안부를 나누고, 언니 대신 강릉 공기를 마음껏 마시기로 약속하였다. 누가 어느 학교를 나왔다는 사실을 기억해 두니 이런 식으로 쓸모가 있다. 카페에서 나와 강릉여고 사진을 한 장 찍어 언니에게 보내 주었다. 별것도 아닌데 사진 고맙다는 이모티콘이 날아왔다.     

강릉여고 근처 카페 춘식이. 춘식이 캐릭터와 주인장 모두 매력있는 동네 카페다.


춘식이에게 작별을 고하고 집으로 가는 길에 다시 한번 강릉의 아름다운 길들에 감탄했다. 강릉에는 남대천이라는 꽤 큰 하천이 흐르고, 그 강을 가로지르는 다리들에는 다양한 그라데이션의 페투니아들이 만발한 채 교각을 장식하고 있다. 관동카톨릭대학교를 지나 삼교리 방향으로는 은행나무 밑동을 능소화 덩굴이 감싸고 있는 가로수가 한참을 이어진다. 마침 능소화가 만발하여 더없이 아름다운 모습으로 운전자의 눈을 사로잡는다.


슈퍼에 들러 쓰레기봉투와 슬리퍼, 약간의 물품을 장만하여 집으로 돌아왔다. 반갑게 맞아주는 클로이를 마당에 풀어주고, 짐을 정리해 넣었다. 강릉에서의 이틀째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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