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성공회 서울주교좌성당을 가다
오늘은 일정이 예사롭지 않았다. 오전 10시에 광화문에서 회의가 하나 있었는데, 오후 4시에 같은 장소에서 회의가 하나 더 잡혔다. 오전 회의가 정오쯤 끝난다 치면, 어딜 다녀오기에는 좀 빠듯하다. 그렇다고 그저 밥 먹고 차 마시며 보내기엔 너무 긴 시간이다. 그런데 알고 보니, 내가 이달부터 멤버십에 가입한 공유 오피스의 본점이 시청역 1번 출구에 있었다. 천천히 식사를 하고도 세 시간쯤 집무실에 들어가 일을 할 수 있으니 이보다 맞춤할 수가 없다. (참고: 집무실 첫출근: https://brunch.co.kr/@yeojungi/51)
그런데 이 계획은 완전히 틀어져 버렸다. 집무실 정동 본점의 위치가 좋아도 너무 좋았던 것이다. 식사를 하기 전에 일단 위치부터 확인해 놓으려고 들른 집무실 정동 본점은 성공회빌딩 1층에 위치해 있다. 정문은 덕수궁 돌담길을 향해 있고, 오른쪽엔 영국대사관, 후문은 성공회 성당으로 통한다. 덕수궁 돌담길을 끼고 걸어서 집무실 입구에 도착한 나는 무엇에 홀리기라도 한 듯 지체 없이 후문을 밀고 나갔다. 지난 7월에는 "종교시설이라 조심스럽다"면서 밖에서 사진만 몇 장 찍고 돌아섰었던 바로 그 성당이 운명처럼 나를 불러들인 것이다.
성공회 서울주교좌성당은 1926년에 건축된 석조건물이다. 화강석과 붉은 벽돌로 지어진 이 건물은 로마네스크 양식에 한국 전통기법을 조화시킨 것이라고 하는데, 건축양식에 대해 까막눈이라 어떤 면이 로마네스크 양식인지는 공부를 좀 해봐야 알 것이다. 성당 전체의 외형은 위에서 내려다보았을 때 십자가 모양이라고 한다. 건물의 상층부는 각각 서로 다른 높이와 모양, 크기, 색깔의 지붕으로 구성되어 있어 율동감이 느껴진다. 아이가 어렸을 때 나무 블록으로 성을 지으면 이렇게 지붕과 테라스의 모양을 다양하게 만들곤 했던 기억이 난다.
성당의 본채는 유럽식 석조건물이지만, 사제관과 수녀원은 매우 한국적이다. 특히 사제관은 소박한 단층 건물인데, 길게 이어진 유리창과 문들이 익숙한 시골 학교의 분위기를 닮았다. 고즈넉한 건물에 문 하나를 살짝 열어놓아 아무나 들어와도 된다고 손짓하는 것 같다. 반면 수녀원 문은 굳게 닫혀있는데, 기도 기간이라 일반인의 출입을 통제한다고 안내문이 붙어 있다. 오래된 건물과 정원이지만 정성껏 쓸고 닦고 손질하여 정갈한 상태를 유지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사제관 앞에는 유월민주항쟁진원지라고 쓴 기념석이 있다. 영화 1987로 재조명을 받은 6월 민주화 항쟁은 이 성당의 종탑 꼭대기에서 성명서를 낭독하면서 그 출발을 알렸다고 한다. 민주화운동의 과정에서 명동성당이 큰 역할을 한 줄은 알았지만 성공회 성당에 대해서는 무관심했었다. 부끄럽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하다. 정동 일대는 지붕 없는 박물관이라 불릴 만큼 우리나라 근현대사에서 중요한 사건들이 많이 벌어졌다. 학창 시절 우리나라 역사에서 가장 날림으로 배운 부분이 근현대사이다 보니, 아는 것이 너무 없다. 앞으로 광화문 회의에 올 때마다 시간을 내어 조금씩이라도 계속 탐방을 해보아야겠다.
뜬금없게도 사제관 왼쪽으로는 양이재라는 건물이 있다. 경운궁의 한 전각인 양이재는 대한제국 초기였던 1905년에 세워졌는데 황족과 귀족 자제들의 교육을 담당하던 곳이었다. 1912년부터 대한성공회가 임대하여 쓰다가 1920년에 아예 사들여 현재는 대한성공회 서울대교구의 사무실로 쓰인다고 한다. 화강암으로 터를 올렸고, 칠을 하지 않은 나무와 기와가 조화를 이룬 기품 있는 건물이다. 일반적으로 보는 한옥의 한지문보다 훨씬 촘촘한 격자 틀을 쓰고 있어 매우 견고하고 위엄이 있어 보인다. 전각답게 기다란 용마루가 웅장하다.
경내를 구경하다 보니 예배당 입구에 어서 들어오라는 다정한 목소리가 들린다. 11월 16일까지 수요일마다 정오에 무료 음악회를 연단다. 오늘은 김재연 님의 하프시코드 독주회가 예정되어 있었다. 제목은 바로크 음악 정원(Jardin de la musique baroque). 루이 쿠프랭(Louis Couperin), 프랑수와 쿠프랭(Francois Couperin), 로이에(Joseph-Nicolas-Pancrace Royer), 제미니아니(Francesco Geminiani), 삼마르티니(Geius Sammartini) 같은 17~ 18세기 바로크 작곡가들의 곡을 연주하는데, 하나같이 처음 들어보는 이름이다. 브로슈어에 "우리에겐 잘 알려지지 않은 작곡가들"이라는 안내가 있어 마음이 놓인다. 하프시코드 독주회라고는 하였지만 장유진 님의 첼로와 허영진 님의 리코더가 협연을 하였다.
연주회를 끝낸 재연 님을 붙잡고 청중들이 이것저것 물어보는 바람에 즉석에서 약식으로 하프시코드 특강이 열렸다. 하프시코드는 피아노와 비슷하지만, 크기가 훨씬 작고 건반이 2층으로 되어 있다. 프랑스에서는 쳄발로라고 부르는데, 현악기의 느낌이 강한 가볍고 경쾌한 소리가 난다. 영화 아마데우스를 봤다면 모차르트가 오스트리아 궁정에서 연주하는 그 악기가 바로 하프시코드이다. 국내에는 10대 정도 밖에 없는 귀한 악기이다. 오늘 연주한 하프시코드를 만든 사람은 연주자의 남편이었다. 악기 상태를 점검하기 위해 독일에서 날아왔다고 한다. 엊그제 지나간 태풍 때문에 습도가 높아 오늘은 하프시코드나 첼로의 현이 최적의 컨디션이 아니었다고는 한다. 나의 귀에는 차이가 느껴지지 않았지만 연주자들과 악기를 만든 장인에게는 안타까운 마음이 컸던가 보다.
마지막에 연주한 삼마르티니의 곡은 리코더가 주인공이었다. 우리가 초등학교 시절 배운 그 리코더의 좀 더 크고 우아한 버전이긴 했지만 리코더는 분명 리코더였다. 리코더를 연주한 허영진 님은 벨기에 메헬렌 국제 미에케 반 베딩켄 리코더 콩쿠르(헥헥 이름이 엄청 길다) 1위 수상자라고 하는데, 하프시코드와 첼로 연주를 압도했다. 평소 리코더를 아이들의 장난감 정도로 여겼던 것을 반성하고 리코더에게 사과 편지라도 써야 할 것 같다.
연주회가 끝나고 성당 내부를 찬찬히 둘러보았다. 유럽 여행에서 보는 성당에 비해 크기도 아담하고, 스테인드글라스 역시 소박하기 그지없다. 하지만 반원형 제단에 예수와 성인들의 모자이크 그림은 금빛 찬란하다. 하얀 예배당 내부에는 열두 개의 돌기둥이 있는데 각각 예수의 열두 사제를 상징한다고 한다. 여느 성당처럼 벽에는 예수의 탄생에서 부활에 이르는 장면들을 그린 성화들이 시간의 순서로 걸려있다. 영국의 국교회인 성공회는 "Holy Catholic Church"를 한자문화권에서 "성스럽고(거룩하고) 공번된(보편적인) 교회"라고 번역하면서 붙여진 이름이다. 많은 나라들에서 Episcopal Church 또는 Anglican Church라고 부른다.
성당 밖으로 나오니 파라솔 그늘에 앉아 담소를 나누고 차를 마시는 여유로운 사람들의 모습이 보인다. 이토록 푸른 하늘과 눈부신 햇살, 아름다운 꽃과 나무들, 귀한 음악, 다정한 미소. 세상이 나에게 거저 내어주는 것이 참 많다는 생각이 든다. "관광객은 요구하고 순례자는 감사한다." 유은실의 소설 순례주택에서 주인공 순례 씨는 평생 공중목욕탕에서 세신사로 일하며 돈을 벌었다. 순례 씨는 그 돈으로 다세대 주택을 지어 열심히 일하는 이웃들에게 저렴하게 세를 준다. 힘들게 모은 재산을 자식에게 물려줄 욕심도 내지 않는다. 세상이 지금까지 베풀어 준 것들에 감사하며, 관광객이 아닌 순례자로서 살아간다. 우연히 들른 성당에서 나도 온전히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본다. 그 어떤 대가도 지불하지 않고 받게 된 여러 축복 속에서, 그동안의 오만했던 마음을 반성한다.
무교동 낙지볶음으로 점심식사를 하고 집무실로 돌아가 두시간 정도 업무를 처리했다. 4시 회의에 참석하고 나오는 길에는 지하도에서 갑자기 쓰러진 할머니를 도와 구호활동을 하기도 했다. (참고: 길 가다 쓰러진 할머니 도와드린 썰: https://brunch.co.kr/@yeojungi/56) 집으로 돌아오면서 오늘 하루를 돌아보니 이보다 만족스러울 수가 없다. 연구년은 여느님처럼! 이라 했던 내 절친 동료의 말이 저절로 떠오르는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