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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 평가 유감

좋은 점수를 받았다고 기쁘기만 한 것은 아니다

by 임시저장

외모 평가를 하지 말라는 얘기 많이들 들어봤을 거다. 칭찬인데 뭐 어때? 예쁘단 말 듣고 싫어하는 사람 못봤다고 생각한다면, 자신이 시대에 좀 뒤떨어진 게 아닌가 점검해 봐야 한다. 외모 평가를 하지 말라는 것은 못생긴 사람들만 하는 소리가 아니다. 예쁜 사람도 예쁘다는 말이 부담스럽고, 때로는 진심인지 의심스럽고, 무엇보다 쓸데없이 외모에 더 신경 쓰느라 시간과 노력을 들이게 되기 때문에 애초 그런 말 좀 하지 말고 살자는 거다.


강의 평가도 외모 평가와 비슷한 면이 있다. 높은 평가를 받으면 좋을 것 같지만 꼭 그렇지는 않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 받고 일하면서 평가받고, 비교 당하는 것이야 피할 수 없는 숙명이겠으나 아무리 좋은 점수를 받아도 기분이 좋지 않은 것이 강의 평가다.


종강을 한지도 어언 3주. 학교에서는 "옛다! 여기 네 강의평가를 받아랏! 꼼꼼히 읽어보며 반성도 하고, 내년엔 어떻게 더 나아질 것인지 계획서를 내거라."는 이메일이 왔다. 탐탁치 않지만 못내 강의평가를 열어본다. 숫자는 나쁘지 않다. 학과 평균보다 높고, 학교 평균보다 높고, 심지어 같은 과목을 가르치는 다른 교수들과 합산한 평균보다 내 점수가 높으면 잠시 어깨에 힘이 들어가기도한다. 그러나 어깨뽕도 잠시. 똑같이 가르친 같은 과목 수업의 강의평가는 사뭇 다르다. 나는 똑같은 옷을 입고, 똑같은 강의 자료를 띄워놓고, 똑같은 유머과 예시를 써서 설명했는데 학생들의 평가가 많게는 10% 정도나 오락가락한다.


"언제나 친절하시고 설명도 쉽게 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더할 나위 없었다," "수강해서 기뻤고, 다시 수강할 수 없어 아쉽다." 학생들의 달콤한 코멘트는 나를 취하게 만든다. 하지만 이런 꽃밭에는 가시도 숨어있게 마련이다. "교수님 진짜 주관을 버리셔야 한다," "교수님의 정치 성향을 알 것 같다"는 느닷없고 밑도끝도 없는 코멘트가 방심한 나를 찌른다. 교수가, 아니 사람이 어떻게 주관이 없을 수가 있나. 내 정치 성향을 한 명의 학생이 꿰뚫어 봤다고 해서 그게 뭐 어떻다는 건가?


이런 강의 평가는 내 강의가 어떠했는지에 대해 별로 알려주는 바가 없다. 대신 강의 평가가 확실하게 전해주는 메시지는 하나 있다. "너는 평가 받고 있다. 너는 비교 당하고 있다. 까딱하면 경쟁에서 뒤쳐진다." 필요 이상으로 외모를 의식하게 만들고 소모적인 외모 경쟁을 부추기는 외모 평가처럼, 강의 평가도 필요 이상의 스트레스와 소모적인 경쟁만 조장하는 게 아닐까? 높디 높은 자리에 앉아계신 고매하신 분들은 한 번쯤 굽어 살펴주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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