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나의 크로스핏 도전기

누구의 눈치도 볼 것 없는 오직 나 자신과의 싸움

by 임시저장

방학 동안 체력을 좀 키워보려고 크로스핏이라는 운동을 시작했다. 크로스핏(cross-fit)은 유산소, 근력, 유연성 운동을 조합한 다양한 루틴으로 몸 전체를 튼튼하게 해주는 피트니스이다. 수업에 참여하게 되면 1시간 동안 워밍업과 오늘의 워크아웃(workout of the day: WOD) 루틴을 진행한다. WOD는 그날그날 달라지는데, 예를 들어 첫날의 WOD는 rowing machine 1분 + wall ball 1분 + dumbell snatch 1분 + pull up 1분 + 휴식 1분의 5분 루틴을 5회 반복하는 것이었다. 한 가지 운동을 1분씩 집중해서 하기 때문에 특정 근육에 무리가 되지 않고 지루할 틈이 없다. 음악에 맞춰 그룹으로 운동을 하기 때문에 저절로 페이스 조절이 되는 것도 큰 장점이다. 이제 겨우 4번 수업을 들었지만, 벌써 크로스핏 마니아가 된 기분이다.


건강검진 때마다 "땀을 흘릴 정도의 고강도 운동을 일주일에 몇 번 하느냐?"는 질문에 "0번"으로 답하면서 살아온 내가 오십이 넘어 크로스핏을 하자니 그야말로 안습(눈에 습기가 찬다, 즉 눈물겹다는 인터넷 용어)이다. 일단 내가 다니는 센터에 흰머리가 난 사람은 나 하나다. 요가 바지에 헐렁한 티셔츠 차림의 중년 아줌마는 손목보호대에 무릎보호대까지 갖춘 젊은이들 사이에서 외모부터 안습 그 자체다.


자연스럽게 코치는 나의 목표치를 아주 낮게 잡아준다. 예를 들어, 덤벨 중에서 가장 가벼운 것이 10파운드(1 lb =0.454 kg)인데 나한테는 그마저도 부담될까 봐 5파운드짜리 "연습용" 덤벨을 주는 식이다. 스쿼트를 할 때도 다리를 반만 접으라고 하고, 팔굽혀펴기를 할 때 가슴에 패드를 두세 개 대어주면서 조금만 내려가도 된다고 한다. 어제는 줄넘기를 하면서 다들 크로스를 100개씩 하게 했지만, 나는 그냥 일반 줄넘기 100개만 하면 되었다. 자존심 상한다고 할 수도 있지만 다치지 않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자신의 능력을 객관적으로 인식하고 수준에 맞는 운동을 하는 것. 이것이 크로스핏의 가장 큰 매력이다. 다른 사람이 어떤 무게로, 어떤 강도로 운동하는지 신경 쓰지 않는다. 대신 각자 자신의 목표를 향해 저마다의 강도와 속도로 운동을 한다. 신체 조건이 좋고, 운동을 잘한다고 뽐내는 사람도 없으며, 체격이 초라하고 운동능력이 떨어진다고 무시하거나 비웃는 사람 역시 없다. 어떤 수준에서 어떻게 운동을 하든 서로를 존중하며 응원한다.


어제 내 파트너로 같이 운동하신 분은 내가 5파운드 덤벨 두 개, 즉 4.5kg을 들고 하는 운동을 50파운드 덤벨 두 개, 즉 45kg을 들고 했다. 나에게 목표치를 낮춰 준 것처럼 잘하는 사람에겐 더 높은 목표를 주기 때문이다. 어제의 WOD는 파트너와 번갈아 가면서 운동과 휴식을 반복하는 구조였는데, 나는 목표치가 낮아 금방 해치운 반면 힘든 과제를 수행하는 파트너는 상대적으로 오래 걸렸다. 그런데 이 분은 그렇게 힘든 동작을 하면서도 내가 오래 기다릴까 봐 조금 일찍 시작하도록 눈짓을 보내 배려해 주었다. 나는 그분의 놀라운 운동 능력과 도전 정신에 응원의 환호와 박수가 나오려는 것을 꾹 참으면서 운동했다. (나는 아직 초짜라서 다른 사람들한테 관심이 많다. 앞으로 나도 점점 더 내 운동에만 집중하게 되지 싶다.)


수업이 끝나면 매번 다 같이 인증사진을 찍고, 파이팅을 외치고, 주먹 인사를 나눈다. 처음엔 내가 이 그룹에 어울리지 않는 것 같아 부담이 컸다. 사진을 본 적은 없지만 나만 튈 것 같아서 마음에 걸렸다. 그런데 나 이외에는 어느 누구도 그런 생각을 하는 것 같지 않다. 다들 자신과의 싸움에 진지하게 임하고, 무사히 운동을 마쳤다는 만족감에 웃음꽃이 핀다. 나도 하루 운동을 마칠 때마다 나 자신이 너무 기특하고, 괜찮은 사람 같아서 기분이 좋아진다. 너무 늦기 전에 이 운동을 만나서 기쁘고, 주문해 둔 운동복이 어서 왔으면 좋겠다.



<그림 출처: 모브사이코 100. 모브가 육체개조부와 함께 처음 훈련을 하는 모습>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강의 평가 유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