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배 워킹맘에게 보내는 반성문
우리 팀에 새로 입사한 A차장이 첫 소개 자리에서 한 이야기다.
그 당시는 여섯 시 정시퇴근을 찾아보기 힘들었던, 일곱 시에만 퇴근을 해도 정시퇴근이라고 여겨지던 라떼의 시절이었다.
그런데 첫 출근에서 저렇게 당당히 퇴근시간을 지켜야 한다는 이야기를 하다니 당시의 나에게는 신선한 충격이었다. 서울 시내 어디라도 보통 한 시간 정도는 대중교통을 타야 하니 아홉 시까지 집에 가려면 적어도 여덟 시가 되기 전에는 무조건 퇴근을 해야 된다는 이야기가 된다. 평소에는 괜찮지만 가끔 일이 몰리거나 회식을 하거나 하면 어떻게 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서 나는 생각했다.
‘역시 애 있는 아줌마는 일보다 집이 우선이라 같이 일하기 힘들겠네.’
그녀는 늘 생글생글 웃는 얼굴로 출근하여 여섯 시 반 정도가 되면 퇴근을 했다.
다른 부서 아줌마 직원들은 밤 열두 시까지도 잘만 일하던데 그녀는 뭔가 달랐다.
나는 결혼도 하기 전이었고 열심히 일해서 성공하고 싶은 열망도 있었다. 그래서 하지 않아도 되는 야근도 하고 내가 돋보일 수 있는 일은 자처해서 맡기도 했다.
그런 나에게 그녀는 좀 이해가 안 되는 직원이었고 업무에 대한 야망 없이 회사에 출퇴근하는 그런 사람으로 느껴졌다.
돌 즈음의 딸이 하나 있는 그녀의 일과는 이랬다. 아침 일찍 일어나서 아이 이유식과 그녀 부부 그리고 시부모님 두 분의 식사를 준비한 후 출근을 하고, 퇴근 후 저녁에 집에 가서는 혼자 늦은 저녁을 먹은 후 아이를 돌보는 생활이었다. 나는 막연히 결혼을 한 후에는 다 그렇게 사는 건 줄 알았다. 그 당시 나는 아직 결혼을 한 친구도 없었고 결혼 후 특히 아이가 있는 삶이 어떤지에 대한 생각은 해본 적이 없었다.
나는 아이는 백일 정도만 지나면 잠도 혼자 잘 자고 밥도 잘 먹는 줄 알았다. 흔히들 아이는 스스로 큰다는 얘기를 하길래 아이 키우면서 전전긍긍하는 그 사람들이 유별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회사 회식 일정을 미리 조율해야 하고 저녁식사 후에는 후다닥 보내줘야 하는 것이 좀 못마땅했고 어쩌다 하루인데 그것도 못할까 싶어 A차장이 유난이라 생각했다. 일이 몰려 야근을 할 때는 그녀 눈치를 보면서 왜 이래야 하나 생각하기도 했다.
그로부터 몇 년 후 나도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게 되었다. 그 이후 나의 생활은 그 전과는 너무나도 다른 생활이었다. 아이는 나를 24시간 필요로 했고 나는 자는 것도 자는 것이 아니고 먹는 것도 먹는 것이 아닌 아이에게 매인 몸이 되었다. 그리고 백일이 아니라 돌이 지난 후에도 아이는 스스로 할 줄 아는 것이 거의 없었다.
밤새 제대로 잠을 못 자고 아침에 부랴부랴 출근을 하던 어느 날 이미 그전에 회사를 떠난 A차장이 불현듯 생각났고 동시에 나는 내가 얼마나 그동안 무지했는지를 깨달았다. 아이를 키우면서 일하는 생활은 생각보다 체력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너무나 힘들었고 이 모든 것을 완벽하게 해내는 일은 단연코 불가능한 일이었다. 돌이켜 생각해보니 A차장은 슈퍼우먼이었다.
그때는 몰랐다.
왜 A차장이 저녁 회식은 힘들다고 했었는지.
왜 시부모님을 모시고 함께 살았는지.
왜 시어머니가 주무시는 시간 전에는 꼭 들어가야 한다고 했는지 나는 몰랐다.
그리고 늘 큰 가방을 들고 다녔던 이유, 머리는 왜 하나로 질끈 묶고 다니는지 나는 정말 몰랐다. 매일 아침 모든 식구들이 하루 먹을 음식과 아이 이유식을 직접 만들고 난 후 출근하는 것이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 회사일과 집안 살림을 모두 다 잘 해내기 위해 동시에 얼마나 많은 일을 생각하고 처리하고 있는지 나는 아무것도 알지 못했다.
다른 워킹맘들과 다르게 까탈스럽게 조건을 내건다고 생각해서 슬쩍 불편한 마음이 들었던 내가 너무 부끄럽고 미안했다.
내가 결혼할 즈음 우리 팀에는 대학을 갓 졸업한 여자 신입사원이 들어왔다. 우리는 나이차가 조금 있었지만 그래도 즐겁게 일했고 팀 분위기도 좋았다. 그 후배와 함께 일하는 동안 나는 결혼을 했고 한 아이의 엄마가 되었다.
그러다 내가 다른 회사로 이직을 하고 새로운 곳에서 적응하고 있던 어느 날 이 후배 사원에게 오랜만에 만나고 싶다는 연락이 와서 저녁식사를 함께 하게 되었다.
이 날 나는 내가 A차장에게 해야 할 말을 이 후배에게 들었다.
그녀도 나와 마찬가지로 아이 키우며 일하는 나의 삶이 이해가 안 되었다고 했다. 나는 종종 다른 생각을 하는 때가 있었고, 사물의 단어가 잘 생각이 안 났다. 퇴근시간이 중요했고 회식은 되도록 피하고 싶어 했다. 이런 부분이 역시 그녀에게는 조금 불편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녀의 언니가 조카를 낳고 그 육아를 함께 도우면서 그녀는 제일 먼저 나에 대한 미안한 마음이 들었단다. 육체적으로 또 정신적으로 힘든 그 상황을 조금 더 알았다면 좀 더 나를 도와줄 수 있었을 텐데 전혀 아무것도 몰랐다고. 오히려 이해 못 하고 왜 저래야 하나 생각만 했는데 그런 본인이 너무 무지했고 꼭 사과하고 싶었다고.
나는 전혀 그런 말이 나올 거라 생각하지 못했기에 많이 놀랐지만 동시에 그 마음이 정말 이해되었고 나 또한 그랬노라고 미안할 필요 없다고 대답해주었다.
직접 사과하지 못했던 나보다 훨씬 훌륭한 후배인 그녀를 만나고 돌아오는 길에 나는 생각했다.
‘A차장님, 진짜로 그때는 몰랐어요. 저의 무지함을 용서하시길. 근데 어떻게 그렇게 지내셨나요? 늦게라도 다시 만난다면 정말 든든한 지원군이 되어 드리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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