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의 신랑감
어렸을 때 매 주말마다 들렀던 곳이 있다.
그곳은 바로 동네 목욕탕.
목욕탕에 간다기보다는 물놀이를 하러 가는 느낌으로 목욕탕 가는 날을 손꼽아 기다렸다.
더운 수증기에 숨이 막힐 때쯤 시원한 냉탕에 들어가서 개구리헤엄을 치고, 그러다 손가락에 쪼글쪼글 주름이 질 때쯤 엄마 손에 이끌려 북북 때를 밀었다.
한참 만에 목욕탕 문을 나설 때 느껴지던 반들반들한 피부에 닿는 시원한 공기와 온몸에 퍼지는 개운함은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 목욕탕을 기다렸던 이유가 있다.
그건 바로 긴 목욕 시간 이후 뱃속의 허전함을 달래주던 붕어빵이다.
늘 목욕의 마무리는 붕어빵이었기에 내게는 목욕탕과 붕어빵이 한 묶음으로 느껴졌다. 나중에는 목욕이 목적인지 붕어빵이 목적인지 헷갈리기까지 할 지경이었다.
평소 팥을 즐겨 먹지 않는 어린이였지만 붕어빵에 든 단팥만큼은 가리지 않고 잘 먹었다.
김이 술술 나는 붕어빵을 보며 머리부터 먹을까 꼬리부터 먹을까 늘 고민을 하는 그 시간이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었다.
어찌나 붕어빵을 좋아했던지 하루는 엄마에게 이런 이야기를 했다.
"엄마, 나는 붕어빵 장사랑 결혼할 거예요. 그러면 붕어빵을 매일 실컷 먹을 수가 있으니까."
왜 붕어빵을 직접 팔 생각은 안 했을까.
아마 내가 직접 팔면 아까워서 못 먹을 거 같다는 생각이 어린 마음속에도 있었나 보다.
그 이후로 우리 집 식구들에게 나는 붕어빵 장수에게 시집갈 딸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한글을 뗀 나는 동화책과 함께 만화책의 즐거움에 빠져들게 되었다.
만화책을 좋아했던 부모님의 영향으로 어린이 만화잡지를 정기적으로 봤고, 그 당시에 나온 각종 학습만화는 모두 섭렵을 했을 정도로 만화를 좋아했다.
엄마가 시골 학교로 전근을 가게 되어 어느 면소재지의 작은 학교로 전학을 갔던 때였다.
5일장이 서던 시골 동네에 새 만화방이 문을 열었다. 거기다 그 만화방은 친구네 집이 하는 곳이었다. 용돈이 없던 어린 시절이어서 돈을 내고 책을 본다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던 꼬꼬마 시절의 나는 그저 친구를 만난다는 핑계로 만화방을 들락날락거렸다.
사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곳의 만화는 겨우 한글을 뗀 내가 읽을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래서 딱히 만화를 읽었던 기억은 없고 단지 만화책이 엄청 많았던 책장을 보는 것만으로 만족감을 느꼈다.
그리고 그때 나의 새로운 다짐을 엄마에게 이야기했다.
"엄마, 나는 붕어빵 장사랑 결혼을 해서 붕어빵을 실컷 먹고 나면 이혼을 한 후에 만화방 주인이랑 결혼을 할 거예요."
그 어린 나이에 이혼은 어디에서 들었던 걸까.
하여간 들은 건 있어서 두 번 결혼에 이혼까지 나왔다. 하지만 거기에다 한술 더 떠서.
"엄마, 나는 만화방의 만화를 다 읽은 후에는 이혼을 하고 세 번째는 진짜로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을 할 거예요."
아, 아주 꿈이 야무졌다.
결혼을 세 번 하겠다고 열 살도 되기 전에 온 가족에게 선언을 했다.
그 뒤로 가족들은 붕어빵만 보면, 그리고 만화책만 보면 신랑감이 어디 있냐고 농담을 했다.
안타깝게도(?) 지금의 나는 겨우 한 번밖에 결혼을 못했지만 붕어빵과 만화책 사랑은 여전하다.
다행인 것은 굳이 결혼까지 하지 않아도 붕어빵과 만화책을 살 수 있는 재력은 갖췄다는 것이다.
브런치에 이혼 글이 이렇게 인기일 줄 진작 알았다면 붕어빵 장수와 만화방 주인에게 접근을 좀 해볼 걸 그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