텃밭으로 가는 소풍
새 마음 새 뜻으로 갈아엎은 밭에 가을작물을 심는다.
이것저것 많이 심어서 복잡했던 지난봄 농사를 거울삼아 이번에는 아주 단조롭게 몇 가지로 선택과 집중을 해보기로 한다. (이 말을 여기에 쓰는 것이 맞는지 모르겠지만 어디서 주워들은 말은 다 써본다.)
배추.
무.
쪽파.
상추
그리고 원래부터 있던 들깨.
들깨는 벌써 깨가 열려서 바닥으로 우수수 떨어지고 있다.
이렇게 눈처럼 예쁜 열매가 깨라니.
어쩜 이렇게 조그만 깨를 모아서 그 알갱이들을 볶을 생각을 했을까.
거기서 기름이 나오는지는 또 어떻게 알았을까.
생각할수록 신기한 농작물의 세계다.
다른 집 밭을 보니 이미 무와 배추가 엄청 자라 있다. 그에 반해 뒤늦게 심은 우리 밭 아이들은 너무 앙증맞고 귀엽다.
많이 심어서 수확을 많이 하는 것도 감당할 수 없어서 모종을 최소한으로 구매하니 남는 공간이 많아 띄엄띄엄 심었더니 다 심은 후에도 밭이 텅 비어 보인다.
그래도 곧 이 아이들이 무럭무럭 자라서 빈 공간을 채워 주겠지.
간단히 모종만 심으면 되겠지 하며 가벼운 마음으로 밭에 갔지만 막상 고랑을 파서 둑을 세우는 데 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걸렸다. 모종을 다 심고 나니 드디어 해가 뉘엿뉘엿 진다.
모종을 심고 물도 많이 줬으니 이제 우리가 먹을 차례다. 이렇게 시간이 걸릴 줄 알고 집에서부터 김밥을 싸왔다. 내가 다니는 텃밭은 구에서 운영하는 곳인데 텃밭 옆으로 개울이 흐르고 텃밭 안에는 작은 연못과 흔들의자 그네가 있고 입구에는 방문객들을 위한 테이블이 설치되어 있어서 여느 공원과 비슷한 분위기이다. 그래서 텃밭에서 일을 하는 것도 좋지만 이렇게 꼭 한 번은 소풍을 온 기분을 내고 싶었다.
소풍 같은 기분으로 시작하는 가을농사. 잘 되겠지?
마음은 소풍이었으나 실제는 모기가 너무 많아서 얼른 먹고 다시 짐을 싸야 했다.
집에 돌아와 보니 밭에서 물린 모기자국이 가득이다. 김밥이 아니라 모기향을 준비해 가야 했나 보다.
그래도 밭일도 끝내고 배도 부르니 오늘 하루가 아주 뿌듯하다.
이제 수확의 결실을 맺는 그때까지 열심히 물을 주고 풀을 뽑고 밭을 가꾸어야겠다.
이렇게 텃밭의 봄, 여름 그리고 가을이 우리 눈 속에 마음속에 새겨진다.
초보 농사꾼은 역시 농사는 아무나 짓는 게 아님을, 감사한 마음으로 농산물을 먹어야 한다는 것을 경험을 통해 배워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