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우리 집에서 요똥의 타이틀을 얻게 된 데에는 이 메뉴가 결정적이었다.
그것은 바로 라. 면.
라면은 요리가 아닌 그 누구라도 만들 수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할 수 있는데, 물론 나도 그렇게 생각했던 사람 중 한 명이다.
그렇다.
그 누구나 가능하다는 라면 끓이기를 못하는 사람이 바로 나였다!
그런데 여기서 요똥이 될 수밖에 없었던 필연적 이유를 발견했다.
그 이유는 나는 웬만해선 다 맛있다는 거.
치명적인 요똥의 조건인 다소 관대한 미각.
어쩌면 너무나 관대한지도 모르겠다.
어떤 음식도 대부분 다 맛있다 보니 제대로 된 요리를 하기가 힘든 사람이 되었다.
거기에 요리에 대한 귀차니즘까지 한 스푼 더해지면서 다른 사람은 범접할 수 없는 요똥이 되었다.
그럼 여기서 요똥의 라면 끓이기를 한번 따라가 보겠다.
1. 물을 끓인다. 사실 라면 끓이기의 대부분의 지분은 물의 양이라고 생각된다. 왜냐면 이 물의 양이 늘 들쑥날쑥해서 어떤 때는 짜고 어떤 때는 밍밍하기 때문이다.
2. 물이 끓으면 라면과 수프를 넣는다. 그냥 막 때려 넣는다. 원래 그렇게 하는 것 아닌가요.
3. 요똥도 가끔은 오늘은 괜찮다는 말이 듣고 싶으므로 냉장고에 있는 뭐라도 넣어볼까 이것저것 살펴본다. 오늘은 설마 맛있을까 하는 헛된 기대를 하면서 어떤 때는 파와 마늘, 어떤 때는 어묵, 어떤 때는 참치를 넣어보곤 한다. 오늘은 어묵을 넣었다.
4. 다 익으면 달걀 하나를 깨서 넣고 휘휘 젓는다. 가끔 달걀 하나가 섭섭한 느낌이 들어 두 개를 넣기도 하지만 그럴 땐 여지없이 국물 색깔을 보곤 이건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5. 잘 익어라. 열심히 끓인다. 물은 100도가 되기 전부터 보글보글거리니 좀 오래 끓여본다. 100도가 될때까지.
6. 불을 끄고 먹는다.
꽤 간단한 스텝이다.
그런데 왜!
늘 라면은 불어있을까.
사실 양도 좀 많아지고 대충 후루룩 먹어도 되니 좀 불어도 나는 괜찮다. (요똥의 입맛)
그러나 우리 집 식구들은 내가 라면을 끓일 때마다 화들짝 놀라 내게서 냄비를 빼앗곤 한다.
그리하여 라면을 먹는 날은 내가 손 하나 까딱하지 않고 느긋하게 앉아서 쉬는 날이 되었다.
들어와서 라면 먹고 갈래요?
아마 결혼 전에 이 얘기를 했다면 지금쯤 자유로운 영혼으로 살고 있을텐데.
차마 그 말을 못해서 이렇게 애 둘 낳고 살고 있다는 마무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