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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트윈플레임 Dec 03. 2023

추울 땐 뜨끈하게 '소고기 전골'

요 며칠 날씨가 너무너무 추웠다.

옛날처럼 부엌이 바깥에 있는 것도 아닌데 날이 추우면 요리를 하기가 싫다.


물론 이건 꼭 날씨 때문은 아니다.

요똥은 비가 오는 날은 비가 와서, 맑은 날은 맑아서, 더운 날은 더워서, 추운 날은 추워서 요리하기가 싫다.

이럴 때면 슬며시 잔꾀가 살아난다.


우리 동네 정육점(사실은 이사오기 전 동네)은 고기를 사면 그 외 나머지 것들은 전혀 신경 쓰지 않아도 되게 고기와 관련된 것들을 다 무료로 챙겨준다. 예를 들어, 삼겹살을 사면 상추와 파채 그리고 맛소스를 챙겨준다. 소고기를 사면 쌈채소와 더불어 핑크솔트, 허브솔트를 골고루 챙겨준다. 하지만 매일매일 고기를 구워 먹을 수는 없다. 그래서 대안으로 소고기 전골용 고기를 사면 전골육수를 챙겨준다!

즉, 가지고 가서 끓이기만 하면 되는 동네 정육점표 초간편 밀키트인 셈이다.


1. 받아온 육수를 끓인다. 요리의 9할이 간인데 이미 간이 된 육수를 주다니. 게임 끝이다.

2. 그래도 이것만 달랑 끓이긴 미안하므로 몇 가지를 곁들여본다. 파, 양파, 당근, 버섯 그리고 당면 불린 것을 같이 넣어준다.

3. 마지막으로 소고기를 넣어서 살짝 익혀주면 끝.


참 쉽쥬? 세줄로 끝나는 레시피의 음식이 완성된다.

무엇보다 좋은 건 국을 따로 끓이지 않아도 이것 하나로 때울 수 있다는 점이다.

고기에, 채소에 마지막으로 국물까지 먹으면 그렇게 속이 따끈하고 든든할 수가 없다.

앗! 그런데 문제가 발생했다.

무엇 인고허니 바로 요리 완성사진을 남기지 못했다.


요똥의 또 하나의 스킬은 그 어떤 맛있는 요리도 맛없게 보이는 플레이팅이다. 먹을 수 있는 음식을 하는 데 온 에너지를 다 쏟아서 그런지 플레이팅 따위는 이미 안중에 없다.

그래도 어설프나마 요리 인증샷을 찍으려고 했는데 그 기회가 날아가버렸네.


어쩌면 내가 모든 것을 '직접' 만든 것이 아닌 정육점표 육수로 만든 음식인지라 가족들이 특히 잘 먹어서 사진 찍을 순간을 놓친 것으로 좋은 방향으로 생각해본다. 그리고 그만큼 요리가 금방 완성되어서 실제로 찍을 시간이 없기도 했다.


완성된 모습이라고 해봐야 물에 둥둥 떠다니는 소고기와 채소뿐이니 독자의 상상이 오히려 실제보다 더 아름다울 거라고 생각한다. 이쯤 되면 의도적인 사진누락이 의심되나, 오늘은 자신 있게 식구들 모두 아주 만족스러운 식사를 하였노라 외쳐본다.


동네에 정육점 육수가 없는 분들을 위하여 육수 레시피를 검색해 보았으나 검색할 때마다 다르게 나오니 요똥은 혼란스럽다. 어떤 이는 간장, 설탕, 다진 마늘이라고 하고 어떤 이는 디포리와 다시마, 간장을 넣었다고 하고 어떤 이는 멸치, 다시마, 새우, 간장, 설탕이라고 하는데 아무래도 만드는 사람 마음인가 보다.

아무래도 요똥의 추천은 그냥 시판육수를 사용하는 것이 맞을 것 같다고 조심스레 입을 벙긋거려 본다.


시판 육수인지 아닌지 알 길이 없는 가족들에게 나는 오늘 저녁요리에 성공한 어깨 으쓱한 엄마가 되었다. 


정육점 사장님, 사랑해요!

이사 갔지만 안 간 사람처럼 자주 갈게욥! 요똥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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