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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트윈플레임 Mar 13. 2023

쉘 위 댄스?

탱고를 배우려고 했는데 신발만 남았어요.

음주가무에 능한 사람을 동경한다.

이 중 그 어느 것도 그다지 잘하지 못해서.


그래도 뭔가를 배우면 곧잘 따라 하는 편이니 춤 정도는 정식으로 배워보면 좀 다르지 않을까.

오래전에 일본영화 '쉘 위 댄스'를 보면서 스포츠댄스도 참 매력이 있구나 생각을 했었다. 하지만 당시에는 살사댄스 위주의 교습과 동호회가 주를 이루던 때여서 살사댄스에는 그다지 끌리지 않아 배울 생각은 없었다.


그러던 차에 어느 댄스 동호회에서 탱고수업을 한다는 공지를 보았다.

오, 이거 좀 독특한데.

한번 배워볼까.

그렇게 나는 뭔지도 모르는 수업을 덜컥 신청했고 20대의 호기롭던 나는 아는 사람이 한 명도 없는 수업에 참석하게 되었다.


주말 낮에 하는 수업은 나와 비슷한 직장인들이 대부분이었던 듯하다.

남녀 비율이 비슷했는데 이건 주최 측에서 그렇게 조절을 한 건지 아니면 우연히 맞은 건지는 모르겠다.

커플 댄스이기 때문에 남녀의 역할이 나뉘어 있어서 성별을 맞춰서 듣는 것이 꽤 중요했다.


압구정 어딘가에 있던 연습장은 지하였고, 작고 아담했다.

처음은 간단한 스텝부터 시작했다.

생각보다 어렵네.

하지만 뭐 처음부터 쉬울 수가 있나.


취미는 뭘 하든 결국은 장비빨.

우리는 단체로 댄스화를 주문했고 그렇게 본격적으로 수업을 듣게 되었다.


혼자서 스텝을 연습을 할 때는 그럭저럭 따라 했는데, 파트너와 함께 맞춰보면 막상 생각처럼 잘 되지 않았다.

특히 남자가 리드하는 부분이 많다 보니 잘하는 파트너와 함께 하면 잘 따라갈 수 있지만 상대 남자 학생이 버벅거리면 같이 버벅거리기 일쑤였다.

내 몸이 내 몸이 맞는데 왜 이렇게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는지.

그리고 정작 가르쳐 준 대로 스텝을 따라가도 이거야 원 엉거주춤한 폼을 눈뜨고는 도저히 봐줄 수가 없다.


스텝만 따라가면 되는 게 아니라 이게 춤이다 보니 온몸으로 음악을 타고 감정을 표현해야 하는 건데 감정은 개뿔 스텝만 겨우겨우 따라가니 보기에 멋질 수가 없다.

그 와중에 선생님이 시범을 보일 때면 넋을 잃고 바라본다.

정말 한 마리의 플라밍고 같이 사뿐사뿐 그리고 플로어 전체를 다 누비며 넓게 원을 그리듯이 무대를 누비는데 그 모습은 정말 감탄을 자아내게 했다.


그렇게 몇 주를 수업을 받았는데 이게 일주일에 하루다 보니 갈 때마다 까먹은 부분을 복습하느라 진도가 더뎠다.

그리고 어쩌다 한번 빠지기라도 하면 다시 처음부터 시작.

점점 한 명씩 사람들도 빠지기 시작하고 그러니 갈 때마다 계속 우왕좌왕이다.


지금처럼 유튜브라도 있었으면 동영상이라도 좀 찾아보고 공부를 했을 텐데 그때는 그저 일주일 한번 수업 듣는 게 다였고 진도도 지지부진하니 흥미가 금방 뚝 떨어졌다.

거기다 잘 모르는 남자 연습생들과 부둥켜안고 춤을 배우려니 그것도 쉽지는 않았다.

모든 남자 연습생이 정우성이나 현빈 같으면야 문제가 없었겠지만 평범한 그들은 좁은 연습실에서 연습을 하다 보니 발갛게 달아오른 얼굴에 연신 땀을 흘리고 있었다. 그 와중에 껴안고 춤을 추려니 땀냄새와 끈적한 손이 제일 고역이었다. 파트너와의 교감은커녕 제발 근처에 안 왔으면 하는 마음이 절로 들었다.


결국 나는 자연스럽게 수업과 멀어졌고 아름다운 탱고는 영화에서나 감상하는 것으로 정리되었다. 감각적인 음악과 넓은 플로어를 누비는 반짝반짝 빛나는 남녀. 이제는 그만 꿈으로만 간직하자.


아직도 새것 같은 댄스화만을 남기고 잠깐 타올랐던 탱고의 꿈은 그렇게 흔적도 없이 사그라들었다.




















 * 이미지 출처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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