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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트윈플레임 May 18. 2023

프로시작러에서 프로참석러로

프로 하객이 되었습니다.

싱글의 삶이란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모든 시간을 내 마음대로 쓸 수 있는 시간부자의 삶이었다.

매일 노는 것도 지겹고 회사와 집을 오가며 비슷한 사람만 만나는 것도 지겨워질 무렵 색다른 일을 찾아보았다. 기왕이면 돈도 벌 수 있다면 금상첨화.

때마침 신문기사에서 결혼식 하객 아르바이트라는 것이 있다는 내용을 보고 이것이 바로 내가 원하는 재미있게 돈 버는 방법이라는 생각이 들어 역시나 망설임 없이 아르바이트 등록 신청을 했다.


처음에는 모르는 사람의 결혼식을 간다는 생각에 살짝 두근거리기도 했던 것 같다.

신부는 왜 하객 아르바이트를 부르는 걸까.

무슨 사연이 있을까.

아니면 정말 친구가 하나도 없는 걸까.

여러 가지 의문을 안고 결혼식장에 갔다.


신랑, 신부는 흔히 어디에서나 볼 법한 평범한 사람들이었다.

나는 때로는 신부의 학창 시절 친구였다가 아니면 동호회 친구였다가 그것도 아니면 예전 직장 동료가 되었다. 

하객 아르바이트의 궁극적인 목적은 사진인데 신부 친구인 나는 신부 대기실에서 한번, 끝날 때 신부 친구들 단체사진 한번 이렇게 두 번 사진을 찍었다.

고객의 기쁜 날을 축하해 주는 멋진 일을 하는 사람이라는 가치를 스스로 부여하면서 진심으로 신랑, 신부의 앞날을 축복해 주었고, 나중에 두고두고 사진을 볼 것을 대비해 최대한 예쁘고 상냥한 미소를 짓기 위해 노력했다.


하객 아르바이트는 보통 5명, 10명 단위로 같이 움직이는데 잘 아는 지인의 결혼식에 온 사람들이니 우리끼리도 친하게 보여야 한다. 

괜히 신부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가는 말실수를 하여 우리의 정체가 노출될 수 있으니 우리는 그저 평범한 주제로 대화를 했다. 연예인 이야기, 남자친구 이야기, 어디 가면 무슨 옷, 화장품을 싸게 살 수 있다더라 같은 이야기였다. 그들은 대부분 나와 같은 싱글 직장 여성이었고 주말마다 만나다 보니 결국은 진짜로 친해지게 되어서 몇 년 뒤에는 각자의 직장 이야기, 결혼 준비이야기 등까지도 나누는 사이가 되어 아르바이트가 아닌 친목모임 같은 분위기가 되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아르바이트를 하느라 바빠서 각자의 결혼식에는 참석하지 못했다.


주말마다 결혼식을 참석하다 보니 서울, 경기 지역의 웬만한 결혼식장은 다 다녔던 것 같다.

나중에는 어디라고 말하면 그 결혼식장의 음식이 뷔페인지 아닌지 어떤 메뉴가 맛있는지가 줄줄 나왔다.

나는 주로 서울 전역과 인천 지역을 맡았고 가끔 지방으로 간 적도 있는데 그때는 출장비를 추가로 받았다.

결혼식이 많은 시즌에는 하루에 두건 많으면 세 건을 한 적도 있고, 같은 결혼식장에서 시간과 층만 다른 예식에 참석하기도 했다. 나중에는 돌잔치까지 진출하여 돌잔치 하객으로도 참석하는 프로 참석러가 되었다.


대부분 내가 이런 아르바이트를 했다고 하면 내 결혼식은 굉장히 잘 알아보고 준비했을 것이라 예상했다. 나도 물론 20대의 싱글 시절에는 결혼식에 대한 로망 같은 것이 있었다. 교회 같은 경건한 장소에서 소박한 결혼식을 꿈꾸기도 했고, 화려한 호텔의 컨벤션홀 같으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해보았다. 하지만 하객 아르바이트 3년 차에 예비신부가 되었던 나는 그 누구보다도 결혼식의 허례허식을 잘 아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정말로 내가 바라는 결혼식은 그저 정화수 한 사발 떠놓고 서로 절하고 끝내는 간단한 결혼식이었다.

수백 번의 결혼식을 지켜본 나로서는 이것이 그저 하나의 쇼라고 밖에는 느껴지지 않았고 결혼식에 대한 로망은 깨진 지 오래였다.

그래도 결혼을 혼자 하는 것은 아니니 지금은 남편이 된 남자친구의 의견과 양가 부모님의 의견을 받아들여 최대한 줄일 건 줄이면서도 남들과 비슷한 결혼식을 하기는 했다. 


지금도 결혼식은 쇼라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지만 가끔은 그때가 생각이 난다.

여전히 지하철역 이름을 들으면 그 근처에 있던 예식장이 생각날 때도 있고 때로는 그곳에서 먹었던 대게가, 와플이 그리고 갈비탕이 먹고 싶을 때도 있다.


이렇게 프로참석러의 시절은 수백 장의 결혼식 사진만을 남기고 종료되었다.

어쩌면 내가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이 참석한 어느 결혼식 사진에 같이 있을지 모를 일이다.






 * 이미지 출처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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