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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쓰는 마음 2

나와 친해지는 방법

by 이순복

다시 쓰는 마음


나와 친해지기 위한 방법이 뭐가 있을까? 곰곰이 생각해보면, 나랑 친해지는 방법이라는 게 너무 어려운 거였다. 타인과 친해지려고 하면, 맛있는 걸 사준다든가, 좋은 델 데려간다든가, 선물을 한다든가, 편지를 쓴다든가 등등, 모두 떠오르는 데, 나와 친해질 방법을 고민해보니, 딱히 떠오르는 방법이 생각나지 않았다.

하지만, 타인에게 해주었던 모든 것들을 반대로 나에게 해주면 되는 게 나와 친해지는 방법이었다.


일단 나는 나에게 해주는 선물부터 고민하게 되었다.


고민하는 시간 동안 나와의 대화를 위해서 우연히 나에게 쓰는 편지 쓰기 대회를 보았다.

편지라.. 편지를 쓰는 것만큼, 나에 대해서 고민하고 생각하는 시간이 있을까?

나는 A4용지에 컴퓨터 자판을 두드려 가며 편지를 쓰면서 과거를 생각하고 현재를 비교하고 미래를 꿈꾸는 내용을 썼다.


죽고 싶었던 과거에서부터 시작해서, 살고자 하는 의지가 생기기까지 했던 현재까지, 그리고 그 의지로 남들보다 늦게 시작한 꿈과 목표도.

살면서 계획은 늘 어그러져서, 나는 실은 계획을 세우지 않았었다.

계획을 세운다는 건, 목표를 만든다는 거였고, 만든 목표로 나는 다시 살아갈 용기를 가져야 하는 데, 그게 어려운 일이라는 사실을 나는 초등학생 때부터 알았다.


내가 뭔가를 하려고 하면, 마치 거대한 벽에 부딪힌 것처럼, 나는 아무것도 되지 않는 걸 하고 수도 없이 고민했다.


삼시 세 끼를 다 챙겨 먹는 일이 힘들었는데, 그나마 먹으려는 한 끼도 못 먹어서 겨우겨우 목구멍 안으로 꾸역꾸역 억지로 넣었던 날들도 있었다.


그랬던 내가 세울 수 있는 계획이란 무엇이었을까?


나는 매일 밤을 잘 때면 신께 빌었다.

제발 죽여주든가, 죽게 해달라고 빌었다.

세상을 살기 싫었고, 세상 사람들이 보는 내가 싫었고, 내가 세상을 보는 시선이 너무 싫었다.

싫으니, 내가 사라지면, 된다는 생각.


그게 내 온몸과 생각을 지배했다.


암울하고 앞이 보이지 않고, 눈만 감으면 가슴이 답답하고 자면서도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나의 부모는 왜 나를 낳았을까?를 고민했고, 적어도 낳았다면, 내가 살아가야 할 이유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은 엄두도 내지 못했다.


나는 존재하지 않는 게 훨씬 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울증 인지도 모른 체, 우울의 시간이 지나갈 무렵, 나는 병원에 갈 것을 고민했었다.

절대로 미래로, 아니 현재를 살아가지 못할 거라는 생각이 온몸에 가득 찼을 때.

어떤 날은, 높은 다리를, 어떤 날은, 높은 건물을, 또 어떤 날은 한 없는 잠을 생각하게 되었다.

망설이는 나를 볼 때마다, 자신의 목숨마저도 어떻게 할 수 없는 찌질함에 나는 더욱 서글퍼졌는 데, 되돌아보니, 나는 나를 너무 미워하고 증오했었던 것 같다.


지금도 가끔가다 그런 기분이 나를 지배하는 데, 그럴 때면 나는 물을 한 컵 마신다.


그리고는 숨을 참는다.

그러면 아주 잠깐 내가 생각했던 게, 물로 씻겨 내려가는 기분이 든다.


우울이 수용성이라는 말이 맞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깨닫는다.


감정은 모두 수용성이라는 말, 그래서 나는 요즘 차를 즐겨 마신다.

따듯한 차를 우려서 마시면, 따듯함이 차가워지는 동안에, 내가 했던 어두운 생각들과 고민들이 사라지고는 한다.


비록 우울증이라는 사실을 깨닫는 데 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고, 아직도 병원엔 가지 않았지만, 나는 스스로 우울증을, 나와 친해지지 못해서 얻게 된 깊은 마음의 한숨을 하나씩 아주 천천히, 그리고 분명히 느리게 알아가고 있었고, 편지를 쓰면서 나는 다시 한번 내가 노력해 왔음을 깨닫게 되었다.


어쩌면 과거의 나는 한없이 부끄러운 모습을 참지 못해서 죽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현재의 나는 여전히 부끄러움과 창피함을 나의 몫으로 가지고 있지만, 아주 조금씩 달라진 덕분에, 나와 친해지길 기대하고 있다.


편지를 쓰면서 내가 느낀 건, 한없이 나를 평가절하하고 폄훼하는 나의 모습이었다.

세상의 모두가 나를 향해서 날 선 말을 한다고 해도, 나 스스로는 온전히 나의 편을 들어줘야 한다는 것.

절대적인 지지와 응원은 오로지 나만을 위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것임을.


나는 이제 알았다.


그래서 나에게 줄 선물은 바로, 여행이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내가 번 돈으로, 직접 비행기를 예약하고, 숙소를 정하고, 루트를 설정했다.

그리고 여행을 가기 위한 돈은, 새벽에 직장을 다니면서, 다시 새벽일을 하는 쿠팡 아르바이트로 충당했다.


노동은 늘 생각하는 거지만, 신성하다.


이 신성한 행위로 내가 쉴 수 있는 여력을 마련하는 것 또한 아마 무척이나 신성한 행동임에 틀림없다.

이 신성한 행위 또한 내가 우울에서 벗어나고, 새로운 곳으로 나아가기 위해서 반드시 필연적인 것이었고, 나는 조금 행복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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