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존력
나와 친해지기로 하면서 내가 가족들과의 손절을 최우선으로 한 건, 어떻게 보면 나는 가족을 빼면 사막에 혼자 떨어뜨려놔도 살 것 같은 진정한 생존능력이 있는 사람임을, 가족을 빼고는 모두가 다 안다는 점 때문이었다.
그랬다.
나는 생존력 하나만큼은 만렙이었고, 그 생존력은 여전하다.
서점을 차리기 전에는 새벽에 직장을 다니면서 쿠팡 알바를 했고, 그 전에는 타일을 붙였으며, 또 이제는 서점 일을 하며 프리뷰 일을 동시에 하고 있다.
늘 손에서 일을 놓지 않고 살았기에 어디에 가도 나는 잘 살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하고 해낸다고 해야 할까?
그러면서 나는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찾아낸다.
자본이 안정화가 되면 나는 내가 하고 싶은 일이 몇 가지가 있다.
물론 드라마 작가가 최후의 목표이지만, 사소한 취미 생활인 베이킹이다.
나는 베이킹하는 걸 좋아한다.
대체로 만드는 건, 마들렌, 휘낭시에, 쿠키 등 제과류이지만, 가끔가다 케이크를 굽고, 빵을 만들기도 한다. 그리고 베이킹 수업을 듣기도 하는데, 전국 어디서건 듣고 싶은 베이킹 수업이 있으면 나는 들으려고 노력한다.
서울, 부산, 대구, 순천 등...
육지로 갈 수 있는 곳이면 나는 거의 수업을 듣는 편인데, 수업을 핑계로 그곳을 여행 간다고 하는 게 나은 표현 일 수도 있다.
타지에서 수업이 있는 날이면 나는 수업이 끝나고 갈 카페나 맛집들을 검색한다.
검색을 하는 것도 재밌기도 하거니와 고생해서 찾아간 곳에서 맛보는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행복함을 준다는 사실을 나는 깨달았다.
집과 멀어질수록 그 기쁨은 실은 좀 더 커지는 데, 어쩌면 나는 가족들과 멀어지기로 결심한 후에는 더더욱 타지에 가는 걸 꺼려하지 않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다른 지역에 가면 나를 모르는 사람들 사이에 섞여서, 그들의 루트를 따르며, 그들이 앉아있는 곳에서 풍경을 보고, 다른 사투리나 말투,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기도 하고, 맛있는 음식을 천천히 먹고, 음악의 볼륨을 낮추고, 시선을 자유롭게 두고 멍해지는 내 모습을 발견하기도 한다.
나와 친해지는 방법을 조금씩 알아가는 것 같은 기분이 나는 그때 든다.
혼밥을 싫어하던 내가 나를 위한 식사를 검색하고, 홀로 커피를 마시고, 홀로 술을 한잔씩 하면서 내면의 나와 대화를 시작하게 된 거였다.
그러면서 나는 내 모습을 객관화할 수 있었다.
객관화라는 게 실은 어려운 일임을 나는 안다.
어떤 누구도 스스로를 객관화시켜서 보기란 참으로 어렵다.
거울을 보아도 못난 내가 안에 서 있어서, 이성적으로 생각하기보다, 감정적으로 생각하기가 훨씬 쉬운 일임을 말이다.
나의 단점을 찾아내고 장점도 같이 발견하고, 그러면서 적절한 타협점을 찾는 걸 사람들은 어려워한다는 것을 또한 나는 안다.
왜냐면 내가 그랬으니까.
만약 내가 나랑 친했고, 나를 스스로 객관화시켰다면, 아마 나는 모르긴 몰라도 좀 더 많이 변화했을 거였다.
어떤 일을 하든 간에 두렵더라도 하려고 나섰을 거였고, 낯선 곳에 가기를 어색해하지 않았을 거였고, 앞으로 나아가지 못해도, 뒤로 물러나도 언젠가는 반드시 해내리라는 것을 알고 나를 응원했을 거였다.
하지만 나는 그러지를 못했고, 늦었지만 지금 한 발씩 떼어가며, 나와 친해지려고 노력하는 중이다.
나와 친해진다는 건, 실은 많이 오글 거리는 일 이기도 하다.
게다가 그 오글거리는 일 중에 하나가, 나는 나를 사랑하고, 나를 존중하며, 나를 자유롭게 풀어줘야지 라고 결정하는 순간부터 첫 시작인데, 실은 거울을 보고 그 이야기를 한다는 건, 좀 웃기다.
그러나 이 웃긴 일도 하루에 한 번, 3초만 할애하면 할 수 있다.
이를 닦거나 세수를 할 때도 충분히 할 수 있고, 옷을 입을 때도 가능하다.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 일이고, 돈이 들지 않는다는 점에서 가성비 갑인 일인 것이다.
나 스스로를 나마저도 외면하고 무시하면, 나는 어디로든 갈 수 없다.
나는 아마 내내 가족들의 보이지 않는 손에 묶여서 여전히 나를 하찮은 존재로 여기며 발전보다는 퇴화하는 걸 다행으로 여기는 사람이 되었을 거다.
그리고 이 하찮고, 무엇보다 우주에서 보면 아주 작은 점 같은 내가 좀 더 나아 친해지는 계기가 되는 데에는 한 가지가 더 있었다.
그건 바로, 타일을 배운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