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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순복 Nov 24. 2021

다시 쓰는 마음 14

18년 만에 쓰는 자기소개서

사실 너무 어려운 주제였다.

자기를 소개하라니...... 


너 자신을 알라 라고 했던 소크라테스가 나는 늘 원망스럽긴 했다.     


학교를 들어가거나, 어딘가를 가게 되면 꼭 빠지지 않고 자기소개를 하라고들 한다.

가슴에 이름표를 붙여 놓았지만, 아마도 이름만 가지고는 절대적으로 부족하기 때문에 그런 것 같은데, 나이를 말하고, 나는 어디서 왔고를 말하는 것에서 그치면 좋으련만...!     


단지 거기서 그치지 않고,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 나는 누구라고 하는 것에 증명을 해 보여야 한다는 압박이 와서 사실 나는 많이 부담스럽다.     


나 스스로를 아직도 나는 잘 모르는 데, 어떻게 남에게 나를 소개할 수 있을까?     

아직도 나는 나와 친해지기보다는 서로 거리 두기를 열심히 하고 있는 데 말이다.     

그럼에도 굳이 써야 한다면...... 나는 아마도 아주 내성적이면서도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은 척하는 강한 척하는 인간이지 않을까...?     


18년 정도 친하게 지내는 언니가 있다.

그 언니는 나를 볼 때면, 강한 척좀 그만하라고 닦달을 한다. 

나는 그때도 그냥 어깨를 으쓱하면, 어쩌겠어? 천성인데...라고 해버리면서 웃는데, 언니는 웃으면서도 내 등짝을 때리면서 계속 그만하라고 한다.     

아마도 언니 눈에는 보였나 보다.

내가 심하게- 센 척하는 게.     


장녀들의 특징이지 않을까?


그러고 보니 그 언니도 장녀인데... 언니는 싫은 소리도 잘하고, 죽는소리도 잘하고, 앓는 소리도 잘한다.     

감정 표현이 확실한 언니라고나 할까?     


반면에 나는 감정표현을 잘 못한다.


아프면 아프다고 해야 하는 데, 아프다는 소리를 입 밖으로 꺼내는 게 좀 꺼려진다.     

예전에 28살 무렵에 일을 시작하고, 6개월을 못 쉬고 일 한 적이 있었다.

나는 내 체력이 짱짱할 줄 알았는데, 그 6개월이 지나고, 결국은 링거를 맞아야 했던 기억이 난다. 

그것에 플러스로, 고기를 써는 기계인 육절기를 다루다가, 오른손 검지 손가락을 깊게 벤 적이 있는데, 괜찮은 척하면서  바로 위층에 있는 피부과 선생님 앞에서 안 아픈 척하느라, 입술을 깨물었던 적도 있었다.     

손가락 사이를 벌려서, 소독을 하시는 데... 진짜, 악 소리 나게 아팠는데도, 나는 아프지 않은 척하면서, 엄마 앞에서도 괜찮다고 말했었다.     


남의 아픔은 그렇게 잘 알아주면서, 나의 아픔은 나 몰라라 하는 나.     

그런 나를 언니는 어떻게 알아본 걸까?

티를 안 낸다고 했는데, 티가 났던 것 같다.     


그렇게 티가 났던 걸, 나는 왜 모르고 있었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자기소개서를 쓰면서, 이런 이야기를 쓸 수는 없었지만, 강한 척하는 사람이라고 알려주기는 했다. 이제는 단점과 장점을 같이 써야, 좋다는 것 정도는 깨닫게 되었다고나 할까?     


단점은 강한 척한다,

장점은 인내심이 강하다...라고나 할까?     


둘 다 크게 좋은 건 아닌 것 같다


세상은 인내심이 강하면, 더 푸시를 해서 호구로 만들고, 강한 척하면, 센 척한다면서 꼰대 라느니, 병신이라느니 하는 말로 놀린다.     


그 중간을 찾기도 힘든데, 극과 극의 단점과 장점을 모두 가지고 있는 나에게는 조금 가혹하다.     


이제야 조금씩 그 중간을 찾으려고 감정 표현에 애를 쓰는데, 사실 나 스스로가 아직은 표현을 하는 것이 서툴다. 너무 서툴러서, 나도 모르게 저 멀리로 숨어버리고 싶지만, 그렇기에는 또 당당하지 못한 것 같아서, 발 하나는 그 사이에 빼꼼히 내놓고 있기는 하다.     


웃기지만, 이 사이에서 나는 영원히 헤엄치면서 살아갈 수도 있다는 생각도 해본다.     


그럼 뭐 어때.. 이게 나인데.. 하고 자기소개서에 썼다가 지워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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