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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순복 Nov 25. 2021

다시 쓰는 마음 15

트리플 초코 케이크

아직도 일을 하는 예순둘의 나의 엄마의 재미는 뭘까를 생각해 본다.


사는 내내 입에 풀칠하지 않기 위해서 늘 일만 하고 살았던 나의 엄마는 아직도 월세를 산다. 

거기에 빌붙어 사는 건 나도 마찬가지다.  ( 이사를 가야 하는 데... )   


내가 힘들고 어렵고 이제는 살아보아야겠다는 생각에 가족과의 손절 이야기를 쓴 것과 별개로, 엄마의 인생만을 봤을 때, 엄마라는 인간 그 자체로 보면 엄마는 어떻게 저렇게 살았을까, 아니 살까 싶을 정도로 열심히 살았다.     


그 열심히 살았던 엄마의 인생을 폄하한다거나, 훼손하고 싶은 마음은 나에게 하나도 없다.


나는 각자의 인생에서는 타인이고, 완벽한 조연이다.     

모두의 삶이 하나의 가치로 인정하고, 그들의 삶이 어느 것 하나 아름답지 않은 것이 없다는 것 또한 인정한다.     


나의 엄마의 삶도 마찬가지다. 


내 감정에 앞서서 엄마의 삶을 다른 엄마들의 삶과 비교해서 그녀를 내리 깎지는 않는다.

그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엄마는 엄마 그 자체로 대단하고, 훌륭하다.

나의 엄마는 아마 더 대단하고 훌륭한 사람일 거였다.     


엄마는 왜 항상 일을 했을까?를 생각하는 데, 그건 다 자식들 벌어 먹이기 위해서였고, 재미라는 건 없다는 생각이 들었는 데, 근래에 내가 서점을 쉬는 날 이면, 나는 내 휴무, 목요일, 에 엄마와 함께 늘 엄마 직장 근처의 프랜차이즈 카페를 간다.     


휴무날이라서 다들 더 자거나 쉬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느냐고 물을 수도 있지만, 물론, 더 쉬고 싶기는 하지만, 쉬는 것보다 중요한 건, 엄마와의 아주 잠깐의 시간이라는 것을 나는 알고, 그 시간이 언제까지나 유효할 거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어떤 글에서 읽었는데, 시간은 사라지는 것들에 대해서 늘 빠르게 행동한다는 것이고, 남은 우리는 늘 후회를 한다는 거였다.     


시간은 늘 빠르게 가고, 엄마의 시간은 나보다 빠르게 갈 거였고, 나는 그 시간을 따라잡기에는 아직 이르지만, 엄마와 시간을 그렇게 해서라도 보내고 싶어서 가뿐한 마음으로 함께 나와서 늘 타는 빨간 버스를 탄다.     

나는 뚜벅이로 여전히 생활하고 있는데, 엄마와 버스를 타고, 가는 그 사계절이 꽤나 좋다. 이럴 때면 뚜벅이라는 사실에 더욱 자부심이 생긴다.


걸어 다니는 게 가난함에 증거라고 < 정지돈 작가의 당신을 위한 것이나 당신의 것이 아닌>에 나오는 데, 맞아, 나는 가난해 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걷기는 내가 가난하다고 생각하기 전에도 늘 해오던 습관( 자기 위안인가?)이었고, 차가 굳이 있지 않아도, 내가 할 수 있고, 갈 수 있는 곳은 여전히 넘쳐난다고 나는 믿는다.      

엄마와 버스를 타고 사계절의 어느 하루를 그렇게 엄마와 카페를 갔다.

이가 좋지 않은 엄마를 위해서 수프와 단 걸 좋아하는 나를 위해서 초콜릿 케이크를 주문하는 데, 근래엔 트리플 초콜릿 케이크라는 걸 주문해서 늘 먹는다.     

엄마도 단 걸 좋아하는 데, 아메리카노에 시럽을 아주 듬뿍 넣어서 드신다.     

단 걸 먹으면서, 엄마와 이런저런 사는 이야기를 한다.


엄마는 대개 직장에서 얻은 아줌마들과의 스트레스를 이야기하고, 나는 그 이야기를 듣고 있다.     

나의 이야기는 카페의 시간에는 중요치 않다.

그 시간은 오로지 엄마의 이야기를 듣기 위함이니까.      


누군가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그 사람의 눈과 표정을 보게 된다. 

유독 유심히 관찰하는 버릇이 생긴 건, 글을 쓰면서부터 이기는 하지만, 이야기보다 더 중요한 것들이 대화가 오고 가는 표정들 속에 숨어 있다.      


그리고 눈은 그보다 더 많은 이야기를 담는다.      


엄마에게 일상의 즐거움이란 무엇일까? 하고 생각을 이야기를 하는 내내 고민해보니, 이 시간인 것 같다.     

엄마는 짜증스러운 이야기를 하면서도, 즐겁게 이야기를 하고 있고, 울면서도 빨리 눈물을 닦는다.      


나도 같이 짜증을 냈다가, 울었다가 다시 웃는다.     


트리플 초콜릿 케이크 때문에 회복이 더 빠른 것일 수도 있고, 양송이 냄새가 풀풀 나는 따듯한 수프 때문일 수도 있지만, 그 1시간 30분이라는 시간 속에서 엄마는 일을 하러 가기 전에 항상 내 손을 꼭 잡아준다.     

그러면 나도 손을 꼭 잡는다.     


아마도 하루에 있을 온갖 슬픔, 화, 짜증, 왠지 모를 불안들이 조금이나마 서로의 온기가 닿아서 녹아서 인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누구나 다 각자의 방법으로 운다.

누구나 다 각자의 방법으로 웃는다.     


나의 엄마도 자신만의 방법으로 울고, 웃는다.

그 안에 엄마의 자식인 나도 있다.     


그녀의 세계에서 나는 어떤 존재일까?를 다시 한번 생각해 본다.     


오늘 유독 트리플 초콜릿 케이크가 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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