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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순복 Nov 25. 2021

다시 쓰는 마음 16

자기소개서의 완성

 교육원에서 첫 숙제로 내준 자기소개서를 다 썼는데, 꽤나 잘 썼다고 속으로 나 혼자만 생각을 하는 중에, 이건 소개서가 아니라 브런치를 자주 쓰다 보니, 무언가 에세이 같은 느낌이 되어서, 올리기가 살짝 망설여졌다.     

선생님께서 자기소개서에 들어갈 이야기들이 내가 드라마를 왜 좋아하는지, 선호하는 장르는 무엇인지, 스터디에 참가를 할 수 있는지에 관한 것들이었는데.     


이걸 모두 적기는 했는데, 왠지 내기가 쑥스럽고, 괜스레 부끄럽고 그렇다.     


내가 드라마를 좋아하는 이유는, 진짜 뭔가 상투적이고 작위적인 것만 같지만, 진짜로, 진심으로 좋아하는 이유는 새벽 시장 때문이었다.     

어린 시절에 장사를 했던 부모님을 둔 덕에, 나는 시장과 가까운 삶을 살았다.

9살 무렵부터 시작된 나의 새벽 일과 중에 하나가 시장에 따라가는 일이었는데, 시장에 가면 상인들이 너도나도 할 것 없이, 7시 30분이 되면 텔레비전 앞에서 식사를 한다.     


내가 가는 시장은 그랬는데, 다른 시장은 모르겠지만.


유선 방송이 한창 유행을 했고, 텔레비전의 불이 24시간 동안 꺼지지 않은 시대가 도래하자, 아침 드라마뿐만 아니라, 그 당시에 유행했던 드라마들이 시장에서는 끊임없이 나오고 있었다.     

모두들 그 앞에 붙어서, 밥을 먹는데, 먹으면서 모두들 나쁜 년들을 욕하고, 착한 사람들을 응원하는 모습이 나에게는 엄청난 위안이라고 해야 할까?     


아마도 감정 표현이 서툰 나 같은 사람이 봤을 때, 그들의 표현들이 신선하게 다가왔을 테고, 나 또한 드라마를 보면서 표현이 서툰 감정들을 조금씩 글에 드러내고, 드라마를 보면서 웃고 울면서 해소를 하고는 했었다.     


그래서 나는 드라마가 좋았다.


낯선 사람들이 나와서 나 대신 악을 물리쳐 주는 것도 좋았고, 하늘을 날고, 총알을 피하고, 머리 끄덩이를 잡고 개판으로 싸우는 것도 좋았다.     


생각해보면, 내가 좋아하는 드라마의 장르는 액션 히어로였던 것 같다. 그건 영화도 마찬가지인데, 나는 다이하드와 리쎌웨폰 시리즈를 무지하게 좋아한다.     

절대로 죽지 않는 남자와 깐죽대면서도 할 건 다하는 남자는 어딜 가도 사랑받을 만하다고 생각한다.     

그들을 보면서, 나는 내 심장 안에 타오르는 보통의 히어로가 될 것을 다짐했나 보다.     

내 드라마의 주인공들은 평범하지만, 그들처럼 악을 보면 참지 못하고 욱- 해서 달려든다. 그러다가 죽도록 얻어맞기도 하고, 죽을 뻔 하기도 하지만, 언제 그랬냐는 듯이 짜잔- 하고 다시 일어나서 또 싸운다.     

그게 내가 드라마를 좋아하는 이유이자, 드라마를 하고 싶은 이유였다고 썼는데.     

쓰고 나니 쓸 때는 두근거렸던 가슴이, 이제는 한없이 부끄럽고 창피하게 느껴진다.


글을 못 쓰는 초등학생이 된 기분이랄까......     

요즘은 어린 친구들이 나보다 낫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제대로 된 글을 쓸 수는 있을까? 하고 진지하게 고민을 하는 데.     


영 자신은 없다.     


다들 쟁쟁한 실력자들 이던데, 그들 사이에서 나는 꼴등을 하지나 않을까? 하고 조마조마해본다.     

그래도 어쩔 순 없다.     


꼴등이라도 아예 안 하는 것보다 나으니까.


아인슈타인이 

“ 어제와 같은 오늘을 살면서, 다른 내일을 기대하는 건 중증 정신병 증상이다” 

라고 했던 말을 항상 마음속에 품고 산다.     


나의 내일 아니, 나의 오늘이 달라지려면, 내가 하는 지금이 어제와 조금이라도 달라져야 한다.     


나는 살고 싶어서 글을 쓰게 되었는데, 이제는 살아보려고 다시 글을 쓴다.


매일을 울면서 자는 날이 많고, 화가 많은 날들이 수두룩 했던 날들이 아직도 이어진다.     

남들의 밤은 마냥 밝고, 아침은 더 눈부신 것처럼 보이지만, 나의 밤은 여전히 어둡고, 까맣고, 앞이 보이지 않는 위태로운 낭떠러지를 외발로 걷는 것 같은 기분이고, 아침은 또 왜 그렇게 추운지 모르겠다.     


그럼에도 나는 쓴다.


계속해서 쓸 거라고, 자기소개서에 한 줄을 더 추가해본다.     


그럼, 언젠가는 다른 내일을 맞이 하게 될지도 모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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