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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염지 Mar 29. 2022

할머니의 인생 꿀팁을 부정하다.

사람은 믿을 존재가 아니라 사랑할 존재다.

사람은 믿을 존재가 아니라 사랑할 존재다.

우리 할머니가 2019년 추석, 고구마 줄기를 떼어내며 내게 알려준 할머니의 인생 팁이었다.

할머니 눈은 고구마 줄기를 떼어내느라 바빴기에 그녀의 눈을 마주할 수 없었지만, 할머니의 굳센 말투에서 할머니의 신념이 드러났고, 그녀의 인생 팁은 나의 인생 모토 중 하나가 되었다.


할머니의 팁은 어느 정도 맞았다.

사람을 믿지 않고 사랑하니, 살아가며 만난 여러 사람들이 준 상처는 아물지 못할 정도로 깊게 남진 않았다.

믿음기대를 불러오고, 그 기대는 항상 실망을 데려온다. 사람을 믿지 않으니 기대하지 않게 되고, 되돌아오는 실망은 기대만큼 작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랑 온전 것이다. 내가 감당하는, 어떤 기대를 바라지 않는 그런 .


근데 어떤 사람이 나타나버렸다.

할머니 인생의 팁을 부정하고 싶은 사람이.

사랑하고 싶고 동시에 믿고 싶은 사람이.


나 때문에 자기가 더 좋은 사람이 되는 것 같다고 말하는 그 사람의 생각이 너무 고마워서,

대충 먹어버리는 내 점심이 걱정되어 주변 맛집 리스트를 정리해서 보내주는 그 사람의 카톡이 너무 따뜻해서,

서로 교환해서 읽은 책 안에 짧은 편지를 적은 엽서를 꽂아 둔 그 사람의 손끝이 너무 순수해서,

나의 시답지 않은 이야기에도 진심으로 공감해주는 그 사람의 말이 너무 다정해서,

불의를 참지 못하는 나와 함께 분노해주는 그 사람의 맞장구가 너무 건강해서,

치열한 게임을 통해 얻어낸 소원권의 소원을 내가 쓰길 바란다며 쓰는 그 사람의 마음이 너무 예뻐서.


온전한 행복함을 느끼게 해주는 그 사람을

온전하게 믿고 싶다.


그리고 어느 추석 날, 할머니와 함께 고구마 줄기를 떼어낼 때 부디 말해주고 싶다.

“할머니 어떤 사람은 사랑할 존재이자 믿을 수 있는 존재인 거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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