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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염기쁨 Nov 16. 2020

단양으로 가는 기차 안.



새벽 다섯 시. 알람이 울렸다. 눈을 슬쩍 떠보니 보통 창문으로 빛이 들어와야 하는데 아직도 깜깜한 천장을 보곤 다시 눈을 감았다. 한 오초 뒤, 벌떡 일어날 수밖에 없었다. 오늘은 아침 기차를 타고 단양에 가는 날이기 때문. 다행히도 어젯밤에 미리 짐을 싸놔서 씻기만 하면 된다는 사실에 안도감이 들었다. 바깥공기는 시렸다. 어제까지만 해도 긴팔 하나면 충분했던 날씨가 갑자기 추워지며 기모 맨투맨과 경량 조끼 그리고 후리스 집업을 또 입어야 했다. 아직 가을이지만 겨울과 같은 추위는 하필 내가 떠나는 날에 오는 건지. 날씨 복이 참으로 없다.


새벽 여섯 시 반. 주말이었음에도 청량리역은 꽤나 바쁜 느낌이었다. 정차해있는 기차에 올랐다. 두 세명 정도 있던 칸은 단체로 산행을 하는 무리들이 기차 안을 금세 채웠고 기차가 출발하자 시끄러웠던 기차 안은 다시 조용해졌다. 아침에 배가 고플까 봐 샌드위치를 싸왔는데, 코로나로 인해 취식이 금지되어버렸다. 아쉬움을 가득 안은채 도로 샌드위치를 가방에 넣었다. 그리고 한 손에 든 커피만 홀짝거렸다.


창 밖으로는 해가 떠오르고 있었다. 아주 조금 세상이 따듯해져 가는 모습을 보다 사진을 찍으려 보면 아까 봤던 해는 사라지고 없다. 아주 조금 봤을 뿐인데. 해가 뜨는 것도, 지는 것도, 참으로 한 순간이다.


정말 피곤하지 않는 한 이동 중 자는 걸 선호하지 않는 편인데, 대학교 시절 통학을 하며 그 시간 동안 수많은 것을 할 수 있다는 것을 느낀 후였다. 벼락치기로 공부를 해서 얻은 만족할 만한 점수(내 만족 기준은 낮음을 알린다), 좋아하는 영화 한 편, 가끔은 짧은 소설과 평소에 보지 못하는 드라마를 몰아보기도 했고, 지루하기만큼 지루한 통학 시간을 '벌써?'라는 생각이 들만큼 빠르게 시간을 흘러 보내 주니. 분명 빠르게 흘렀는데, 얻은 게 많다는 느낌이 꽤나 좋았다. 물론 잠을 잘 수 도 있었겠지만, 잠을 자면 오히려 피로가 쌓이는 느낌이 들기도 했고, 자다가 내려야 하는 역을 지나쳐 수 번의 자체 공강을 만든 후는 잠을 자지 말아야겠다고 결심한 것도 내가 이동 중에 잠을 자지 않는 이유에 한몫을 하기도 한다.


가방에서 가져온 좋아하는 작가의 산문집을 꺼냈다. 조금 더 어렸을 적에는 어떻게든 한 자리에서 책을 끝내는 것을 좋아했는데 요즘은 읽었던 부분을 또 읽고 다시 읽는 것이 좋아졌다. 한편을 읽는데 시간이 그리 걸리지는 않아서 그런지도 모른다. 그렇게 곱씹고 싶은 문장들을 찾아 다시 읽고, 또 읽으니 어느새 한 시간 훌쩍 흘렀다.  창 밖은 어느새 환해졌고 마주하는 빛이 따듯하다 못해 뜨겁기까지 했다. 영하로 기온이 떨어진다는 뉴스가 기억이 났다. 창 너머로는 여전히 시리고 아린 공기가 있겠지. 기차 안에 있어 다행이라 생각하며 앞으로 몇 개의 역이 남았는지 확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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