있을 건 다 있던데. 87일 세계일주 #6
저는 정말 종교라는 것에 전혀 관심이 없었습니다. 믿을 건 제 자신이라고 생각했죠. 하지만 군대에서 군종 생활을 하면서, 종교라는 것에 대해 조금이나마 관심이 생겼습니다. 제가 해야 할 일이고, 제대로 하려면 종교에 대한 이해가 필요했으니까요.
사후세계에 대한 불안함을 극복하기 위해서일까요?
현생에서의 심리적 안정을 얻기 위함일까요?
아니면 어떤 절대자가 바람을 이루어주었으면 해서일까요?
2년 전, 매 주말마다 열심히 성당에 가는 군대 동기에게 조심스럽게 물어본 적이 있습니다.
“진선아, 너는 왜 종교를 믿어?”
“음. 처음엔 그랬어. 경외심. 놀라움. 그 종교라는 것이 얼마나 대단하길래 사람들이 그렇게 열광할까. 얼마나 대단하길래 그렇게 아름다운 건축물을 지어 올렸을까. 그런 호기심에 다니기 시작했거든.”
그 당시 진선이의 말이 지구 반대편 세상에서 가장 작은 나라, 이곳 바티칸에 와서야 이해가 갔습니다. 대체 어떠한 믿음을 가지고 이렇게 경이로운 곳을 만들었을까 싶었습니다. 걸어 다니는 길이 모두 정갈했고, 무심코 지나칠법한 조각들엔 하나하나 나름의 이야기와 의미가 담겨있었습니다.
가이드의 긴 설명이 끝나고, 본격적인 바티칸 내부를 둘러보며 저는 감탄을 금치 못했습니다. 시스티나 예배당으로 향하는 길목에 그려져 있는 라파엘로의 그림은 종교에 대한 상징적인 의미를 그대로 녹여내었고, 그 끝 예배당에 있는 (미켈란젤로의 한 평생을 바친) 천장화는 교과서에서 보던 것과 차원이 다른 웅장함이 깃들어 있었습니다. 성 베드로 대성당(Bsailica di San Pietro)의 그 아득히 뻗어있는 천장은 그 높이를 가늠하기 쉽지 않았습니다. 그 큰 성당의 압박감을 줄이기 위해 일부러 크게 조각한 조각상(제일 작은 조각상만 해도 2m가 넘는다군요)을 통해 어림짐작할 뿐이었죠. 그리고 그 무엇보다 인상 깊었던 건, 이 성지를 찾은 신도들이었습니다. 누구보다 경건한 얼굴로 바티칸 한 곳 한 곳을 순례하던 그들의 표정이 지워지지 않네요.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저는 종교를 믿진 않습니다. 다만 바티칸에서 느낀 건 진심 어린 종교에 대한 경외심입니다. 비로소 알겠더라고요. 종교는 생각보다 우리의 삶에 깊숙이 박혀있는 것 같습니다. 어떤 이에겐 모든 행동의 근거가 되고, 어떤 이에겐 한 평생을 바쳐 추구하는 것.
어쩌면 바티칸을 보고 종교에 대한 경외심을 느낀 저의 상황이 주객전도일 수도 있겠네요. 절대자 혹은 어떤 진리에 대한 존경심을 표현한 것이 종교이고, 경이로운 건축물이고, 세상에서 가장 작은 나라인 바티칸일 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