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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염광섭 Feb 20. 2019

당신은 낯섬에 기대를 가지나요?

이집트 홍해 스쿠버다이빙. 87일 세계일주 #7


홍해 스쿠버다이빙


   이집트는 위험하다기에, 여행의 처음부터 끝까지 함께할 동행을 찾았습니다. 그런데 아주 놀라운 건, 그 동행의 이름이 ‘염광선’인 겁니다. (제 이름은 염광섭입니다) 저랑 딱 자음 한자만 다르더라고요. 저보다 나이도 많고, 우리나라에선 ‘염’씨는 본관이 한 곳뿐이어서 사촌 형이라고 부르며 즐겁게 여행했습니다.


   여행을 위해 열심히 돈을 모을 당시였습니다. 오랜만에 동창도 만날 겸, 여행에 대한 정보도 조금 얻을 겸 저보다 먼저 세계일주를 다녀온 고등학교 친구를 만났습니다. 그 친구는 똘망똘망한 눈을 치켜뜨며 다른 해외 명소보다 ‘이집트 다합’이라는 곳을 추천했죠. 여행자들의 성지, 여행자들의 블랙홀이라고 하면서요. 물가도 그 어느 곳보다 싸고, 아름다운 홍해에서의 스쿠버다이빙은 무척 황홀하다고 했죠.


   그래서 저는 ‘광선이형’에게 다합에 가자고 말했습니다. 그곳에서 스쿠버다이빙 자격증도 따고, 여유롭게 물놀이를 즐기자고 했죠. 형은 흔쾌히 알았다고 했습니다. 스쿠버 다이빙 자격 과정 신청서를 작성하면서 얼마나 아름다운 세계가 저를 기다릴지 기대했습니다.



설렘인지 겁인지


   깊은 물속으로 들어가는 다이버는 물속의 압력과 인체의 내압을 맞춰야 합니다. 이를 이퀄라이징(Equalizing)이라고 부르죠. 스쿠버다이빙에선 매우 중요하며, 아주 기초적인 기술입니다. 이 이퀄라이징을 하지 않으면 수압과 인체의 압력차로 인해 귀에 엄청난 고통을 받게 되죠. 자칫하면 고통을 넘어 고막이 찢어질 수도 있습니다. 근데 이 기술은 수심이 깊어질수록 어렵습니다. 압력이 점점 강해질수록 내압을 조절하는 게 어렵죠. 문제는 여기서 시작되었습니다. 제가 비염이 있어서 그런지 교육받는 내내 제일 중요한 이퀄라이징이 잘 되지 않았죠.  


   수심 30m 다이빙 강습이 있던 날, 열심히 코로 흥! 흥! 내뱉으며 이퀄라이징을 시도했지만, 가당치도 않았습니다. 압력이 맞춰지지 않은 상태에서 강사님을 따라가느라 수심은 계속 깊어졌고, 고막에 점점 찢어질 듯한 고통이 느껴졌습니다. 깊은 물속에서 너무 고통스럽다 보니 패닉에 빠졌죠. 물안경은 무리한 이퀄라이징 때문에 코피로 가득 찼고, 놀란 가이드가 저를 얼른 데리고 나왔습니다. 가이드님 마저도 놀랐는데, 저는 오죽했겠습니까. 분명 죽지 않는다는 걸 알면서도 그 깊은 수심 속에서의 패닉은 죽음을 마주하는 느낌이었습니다.



아깝다


   제가 받고자 했던 어드밴스 자격은 수심 40m의 딥 다이빙(Deep diving) 강습을 받아야 수료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너무 두려웠습니다. 30m에서조차 이퀄라이징이 잘 안되는데, 더 깊게 어떻게 들어가요. 귀에는 곧장이라도 고막이 찢어질 것 같은 고통이 느껴집니다. 코에서는 피가 줄줄 나고요. 게다가 더 무서운 건, 깊은 수심 속에서의 패닉은 그 자체보다 더 위험하다는 겁니다. 자칫하면 죽을 수도 있으니까요.


   전혀 괜찮지 않았습니다. 겉으로는 웃으면서 강사님에게 “이퀄이 잘 안되네요ㅎㅎㅎ”라고 했지만 속은 바짝바짝 타들어갔습니다. 정말 포기할까 싶었습니다. 딥 다이빙이 있던 전날 밤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죠.


귀가 아파서 아무것도 못하면 어쩌지?

고막이 찢어지면 어쩌지?

물속에서 패닉이 오면 누가 날 구해주나?

물 실컷 먹고 기절하는 건가?

그러다 죽으면?

나는 아직 여행이 한참 남았는데?


여기서 포기를 해야 하나?


   그런데, 이거 정말 너무 아까웠습니다. 이미 지불한 돈도 그렇고, 사실 옆에서 베테랑 강사님들이 지켜보고 계시니 죽을 것도 아닌데, 무엇 때문에 새로운 도전을 못하는 걸까요. 두려워서, 겁이 나서 눈앞의 신세계를 경험하지 못한다는 건 너무 아까운 거잖아요. 이거 가지고 포기하면 어디 가서 ‘도전’했다고 하기도 뭐할 것 같았습니다.

이미 한번 겪어본 고통이니, 침착하게 대응하면 될 것 같았습니다. 이퀄라이징이 안될 때의 매뉴얼은 이미 이론교육시간에 배워본 바 있기에 패닉에 빠지지만 않으면 될 것 같았죠. 그래, 할 수 있는 건 다 해봐야 '포기'를 할 수 있는 거 아닌가요.



   다음 날 저는 ‘그래, 기절밖에 더하겠어? 물 좀 먹을 수도 있지’라는 심정으로 다이빙에 나섰습니다. 물속에 들어가기 전엔 있는 힘껏 코를 풀었습니다. 심호흡을 하고, 강사님을 따라 딥 다이빙에 나섰죠. 수심이 깊어 짐에 따라 필사적으로 이퀄라이징을 했습니다.


   하지만 아니나 다를까. 지옥 같은 고통이 귀를 압박했습니다. 정말 까마득한 고통이었죠. 누구라도 잡고 몸부림을 치고 싶었습니다. 정말 다 필요 없고 올라가고 싶었죠. 


그래. 아픈데 뭘 어떡해. 그냥 올라가자....

.

.

.

.

아니다.





 안 죽어. 아깝지도 않니?


   고통은 고통인데, 이미 한번 겪어본 고통 아닙니까. 그러고 보면 아직 저는 죽지도 않았고, 고막이 찢어진 것 같지도 않았습니다. 옆을 보니 강사님이 애써 침착하려고 노력 중인 저를 보고 계셨고, 곧장 제게 다가와 어깨를 잡으며 이퀄라이징을 다시 하자는 수신호를 주셨습니다. 강사님을 따라 수심을 조금 높여 다시 이퀄라이징을 했고, 강사님은 제 고통이 사라질 때까지 눈을 마주쳐 주시며 안정을 주셨습니다.


압력조절 때문에 수심을 자주 바꾸느라 산소통을 누구보다 빨리 써서 제일 처음으로 나왔지만, 결국 40m 다이빙에 성공했습니다. 해보고 나니 정말 별 거 아녔죠.


그리고 다음 날, 저는 어드밴스 자격증을 받았습니다.


 또 다른 세계의 확장


   그다음부터는 깊은 물속이 꽤 익숙해졌습니다. 이퀄라이징이 안될 때는 침착하게 수심을 조금 올려서 다시 하면 되었습니다. 물속에서의 극심한 고통도 이젠 어느 정도 참을만했죠. 결과적으로 이퀄라이징이 되지 않을 땐 그렇게 두려웠던 협곡(Canyon) 펀 다이빙(Fun diving)도 잘 마무리했고요. 장어가 많이 산다는 일가든(eelgarden) 다이빙도 무사히 잘 마쳤습니다.



   그러자 제 눈앞에 다른 세계가 펼쳐졌습니다. 패닉에 빠져서, 조급함에 빠져서, 두려움에 빠져서 보지 못했던 물속이 눈앞에 펼쳐졌습니다. 한국에서 그렇게 애지중지 키우던 니모들이 여기서도 유유히 헤엄치고 있었습니다. 하늘거리는 말미잘 사이사이로 여유롭게 유영하고 있었죠. 덩치가 저보다도 훨씬 큰 나폴레옹 물고기도 있었습니다. 작고 푸른빛을 띠는 크로미스 물고기들은 떼를 지어 다녔고, 제가 가까이 가도 전혀 도망가지 않았습니다. 해질 무렵 들어간 나이트 다이빙에선 한쪽 바위틈에서 잠을 자고 있는 바다거북도 봤고, 손을 움직일 때마다 빛나는 플랑크톤으로 가득한 어두운 바닷속, 마치 또 다른 세계의 밤하늘을 보는 듯한 경험도 했습니다.


Dahap. Google


   그리고 세계적으로도 어려운 다이빙 포인트라고 불리는 블루홀. 내려다보면 정말 깊은 파란색 말고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그곳도 제겐 환상적이었습니다. 비교적 얕은 수심에는 다채로운 말미잘과 열대어, 산호들이 둥그렇게 둘러싸고 있었고, 그 아름다운 곳에서 시선을 내려 바닥을 바라보면 끝이 보이지 않는 심연이 저를 쳐다보고 있었습니다 그런 이질적인 세계가 또 어디 있을까요.

낯섬에 기대를 가지면 ‘설렘’, 두려움을 가지면 ‘겁’이 된다라고 했습니다.

- 생각을 걷다 中, 김경집 -



이 날을 기억하면서, 앞으로 맞이할 것들에 설렘을 가지고, 겁먹지 않고 도전해야겠습니다.

(물론 생존이 보장되어 있는 상황에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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