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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염광섭 Mar 02. 2019

어린 왕자가 이런 기분이었을까?

모로코 사하라 사막.  87일 세계일주 #8


   사하라 사막에 들어가기 전에 사막에 맞닿아있는 마을인 '메르주가(merzouga)' 먼저 가야 했습니다. 그 마을로 가려면 공항에서 하루에 한 번 밖에 없는 버스를 타야 했는데, 우리가 모이기로 한 시간으로 견주어 봤을 때 그 버스를 타기엔 무리였죠. 결국 조금 비싼 값을 주고 택시를 타기로 했습니다.   


   길고 긴 시간을 지나 동이 틀무렵 우리는 메르주가(merzouga)에 도착했습니다. 정말 작은 시골마을이었죠. 건물은 모두 1층으로만 되어있었고, 사막 바로 옆이라 그런지 황량하기 그지없었습니다. 도착한 날은 마침 동네 전체가 정전이어서, 데이터는 물론 불빛도, 따뜻한 물도 없었죠. 사막에 들어가기 전까진 아직 시간이 있었습니다. 우리는 얼른 씻고 누웠죠. 택시가 밤새 도로를 달리는 동안 추워서 한숨도 못 잤거든요. 여기 아프리카가 맞는지 의문이 들더라고요.


   시간이 지나고 뜨거운 태양이 반쯤 기울었을 무렵, 우리는 낙타를 타고 사막으로 향했습니다. 제가 탄 낙타는 그 무리 중에서 제일 나이가 많은 듯싶었습니다. 많은 낙타 무리 사이에서 선두에 있었거든요. 제가 등에 올라탈 땐 올라가기 쉽게 약간 등을 기울여줬습니다. 세심한 배려가 돋보이는 친구였죠. 그나저나 분명 해가 꽤나 기울어가고 있었는데, 왜인지 그 햇빛은 굉장했습니다. 정말 살이 데일 정도로 뜨거웠죠. 그 열기에 고개를 들지도 못했습니다. 게다가 낙타의 시승감도 썩 좋진 않았습니다. 올라탈 때는 세심한 배려에 감동했는데, 막상 낙타가 걸으니 허리가 매우 아팠습니다. 혹이 가운데 크게 나있는 친구여서 걸을 때마다 제 몸이 앞쪽으로 쏠렸죠.


   뜨거운 열기와 좋지 않은 시승 감에 고개도 제대로 들지 못하고 한동안 있었습니다. 여기가 사막 어디쯤인가는 궁금하지 않았습니다. 지금 내가 허리가 너무 아팠고, 햇빛은 너무 뜨거웠거든요. 그러나 시간이 지나자 조금 괜찮아졌습니다. 해는 출발할 때보다 실컷 더 기울었고, 이제 제가 탄 낙타에도 어느 정도 적응이 되었거든요.


   그래서 고개를 들어 주위를 살펴봤습니다. 내가 지금 사막에 있는 거 맞는지, 여기가 사하라 사막이라면 정말 어떻게 생겼는지. 연금술사를 보며 펼쳤던 그리고 어린 왕자를 보며 펼쳤던 상상의 나래에 부합하는 곳인지 보려고요. 그런데 정말요. 아무리 상상을 해도 그 상상을 뛰어넘는 경우가 있는 것 같습니다. 제 눈앞엔 그 무엇으로도 담아낼 수 없는 광활한 사막이 펼쳐져 있었습니다. 자연 그 자체였습니다. 인위적인 것은 하나도 없는 그런 자연. 저 끝 하늘과 사막이 맞닿은 지점엔 부드러운 곡선이 경계를 그렸습니다. 그 위로는 하늘색부터 시작해 고도를 올릴수록 점점 짙은 푸른색을 띠는 하늘이 있었습니다. 건조한 지역이라 그런지 구름 조차 없는 온전한 하늘 그대로였습니다. 그리고 그 하늘 아래는 한결같은 주홍빛 모래가 부드러운 언덕을 이루고 있었습니다. 그 경광에 입이 쉬이 다물어지지 않았죠.


출처 : google image

   그렇게 또 한참을 걸었습니다. 베이스캠프에 도착할 무렵엔 한쪽으로 해가 지기 시작했죠. 사하라에서의 일몰은 그 순간을 기점으로 다른 방면을 맞이합니다. 그렇게 선명하던 경계는 해가 넘어가면서 허물어지기 시작합니다. 뜨거운 태양은 그만큼의 열기로 하늘을 붉그스름하게 물들이고, 그 아래 주홍빛 모래와 색을 섞기 시작하죠. 일몰의 그 순간만큼은 하늘과 그 아래 사막의 경계가 사그라들고 서로 맞닿죠.

아 그리고, 그 경계가 허물어져 어둠이 찾아오면, 낮의 살을 태우는 듯한 더위는 온데간데없이 극한의 추위가 찾아옵니다. 한국의 겨울만큼이나 춥죠.


   베이스캠프에 도착한 우리는 서둘러 옷을 껴입고 챙겨둔 맥주와 와인을 꺼냈습니다. 모래언덕을 기어 올라 맥주와 와인을 한잔씩 하고 모래 위에 철퍼덕 누웠죠. 부드러운 모래는 침대만큼이나 푹신했습니다. 그리고 말없이 하늘의 별을 헤아렸습니다. 참으로 별이 쓸리는 밤이었죠. 여기 있는 사막의 모래를 한 움큼 쥐어 하늘에 흩뿌려놓은 듯이 별들은 하늘에 빼곡하게 그리고 불규칙적으로 들어차 있었습니다.


   지금도 글을 쓰면서 그 순간을 돌아보고 있습니다.

   

   사하라 사막의 여정을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하나 되짚어 보고 있죠.




출처 : google image


   가끔은 그런 순간이 있습니다. 이거 정말 평생 안고 가는 기억이겠구나 하는 순간.


   제겐 사하라 사막에서의 마지막 날이 그런 것 같습니다. 투어가 끝나고 돌아가는 날에는 베이스캠프에서 일찍 출발해야 했습니다. 새벽 4시 30분. 주섬주섬 일어나서 옷을 있는 대로 껴입고 낙타에 올랐습니다. 잠이 덜 깨서 꾸벅꾸벅 졸았죠. 그러다 문득 고개를 들어 하늘을 봤습니다. 달빛은 바닥의 주홍빛 모래를 비추기에 충분했습니다. 은은한 주황빛이 바닥에서 올라왔죠. 하지만 그만한 달빛도 사막의 별들을 감추기엔 역부족이었던 것 같습니다. 구름 한 점 없는 새까만 하늘에 수놓은 별들이 정말 아름다웠죠. 첫날밤에 봤던 그 별들과는 또 달랐습니다. 그 순간은 정말 선명합니다. 저는 지금 지구 반대편 사하라에서, 새벽하늘을 보고 있습니다.


   여행이 길어져도 이렇게 꿈만 같은 순간이 있습니다. 이제 정말인지. 내가 꿈을 꾸고 있는 건 아닌지. 그 순간이 그랬습니다. 어린 왕자도, 연금술사의 산티아고도 사하라 사막 한가운데에서 새벽녘 하늘을 본 적이 있겠죠?


출처 :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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