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학하고 돈 모아서 세계 일주 #8
밤 10시 30분
날씨가 제법 쌀쌀해진 것 같습니다. 버스를 기다리며 집에 가면 무얼 먼저 할지 생각했습니다. 일단 배가 고프니, 라면이 남아있다면 끓여먹으면 될 것 같았죠. 그리고 내일은 별다른 일정이 없으니 늦게 자도 될 것 같더라고요. 무엇보다 이제 슬슬 항공권을 구매해야 할 것 같았습니다. 아직 계획된 출발일까지는 3달도 넘게 남았지만 항공권은 미리미리 구매할수록 싸니까요.
그간 ‘세계일주 바이블’도 몇 번 읽어보고, 그와 다른 버전의 세계 일주 책도 학교 도서관에서 빌려 봤습니다. 인터넷도 열심히 찾아봤고요. 그렇게 얻은 정보들을 취합한 결과, 큼직한 항공권만 미리 구매하는 게 좋을 것 같았습니다. 여기서 제가 말하는 ‘큼직한 항공권’이란, 각각의 대륙을 이동하는데 필요한 항공권입니다. 대륙 내에서의 이동 말고요. 보통 순수 비행시간만 8시간이 넘는 항공권들이죠. 이런 친구들은 미리미리 구매할수록 가격이 쌉니다. 그 외 ‘자잘한 항공권’들은 변수에 맞춰 그때그때 구매하는 게 낫을 것 같더군요. 가격도 미리 구매하나, 그 직전에 구매하나 비슷비슷하거든요.
집에 와서 부엌 위 수납장을 열어보니 라면은 없었습니다. 딱 포장비닐만 남아있었죠. 학원에서도 저녁을 못 먹었는데 굶을 수는 없잖아요. 바깥 편의점에서 라면이라도 사 와야겠다 싶었죠. 아니다. 그래도 월 초인데. 생활비도 넉넉하고, 요 근래 제대로 된 야식도 못 먹었으니 야식 좀 먹어보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야채곱창을 시켰습니다.
곱창도 기다릴 겸, 컴퓨터를 켜고 항공권을 검색해 봤습니다. 신기하게도 ‘스카이스캐너’, ‘카약닷컴’, ‘네이버 항공’ 등, 각각의 검색엔진마다 같은 항공편에 대한 가격도 다르더군요. 음 마침 제가 출발하고자 하는 날짜에 꽤나 좋은 가격의 항공권이 올라왔습니다. 시간대도 나쁘지 않고, 경유시간도, 항공사도 전부 괜찮았죠 얼른 침대 옆 서랍을 뒤져 여권을 찾았습니다. 가방에서 지갑도 꺼내서 컴퓨터 앞에 다시 앉았어요.
‘세계일주 바이블’에선 항공권을 구매할 땐 항공사 홈페이지에서 구매하는 게 좋다고 했습니다. 중개업체를 통해 사면 편리하긴 하지만, 수수료도 붙고 혹시나 환불하게 되었을 때 그 절차도 복잡하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항공사 홈페이지를 들어갔습니다. 검색엔진에서 보았을 때랑 똑같은 시간대의 항공권을 검색하고, 예약을 했습니다. 여권 이름, 성을 적고 (FIRST NAME과 LAST NAME은 잘 몰라서 인터넷 검색 한 번 했습니다) 여권번호도 적었습니다. 이메일도 적고, 카드번호도 적었죠. 그리고 버튼 하나 누르니까 메일로 항공권이 날아오더라고요.
그렇게 드디어. 제 첫 항공권을 구매했습니다. 정말 세계일주를 떠나는 것이지요. 첫 목적지는 런던인 거고요.
음 근데 원래 이렇게 간단한가?
이게 이렇게 그냥 쉽게 딱 사면되는 건가? 그럼 끝인 거야?
실감이.. 안나네?
그래도 뭔지 모를 설렘은 느껴집니다. 항공권을 살 때 느끼는 그 떨림. 그래도 기어코 첫 항공권을 사고 말았구나. 여행은 그 순간만큼, 준비하는 순간도 행복하다 하지 않았나요. 아마 그 기분이 벌써 느껴지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음 그렇다고 마냥 좋아할 수는 없습니다. 아직 여행 준비 품목을 사기 위한 돈은 고사하고 여행 중에 쓸 경비도 다 못 모았습니다. 유럽에서 아프리카, 아프리카에서 남미, 남미에서 북미, 북미에서 한국까지 다시 돌아올 '큼직한 항공권'도 마저 구매해야 하고요. 그래도 확신과 뚜렷한 목표는 열심히 저축하느라 지쳤던 제게 다른 활력을 불어넣어 주는 것 같습니다. 항공권을 샀잖아요. 이젠 빼도 박도 못하게 출발해야 하니까요.
그런 확신이 생겼어요.
이제 누가 뭐라 해도 무슨 일이 생겨도
나는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