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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염광섭 Jan 25. 2019

대화가 얼마나 중요한데

휴학하고 돈 모아서 세계일주 #6

   여느 때와 같이 느지막이 시작된 주말이었습니다. 베개 옆에서 날카로운 알람 소리가 울렸습니다. 알람을 끄고 시계를 보니 예정보다 30분이나 늦게 일어난 걸 알았습니다. 얼른 과외학생에게 문자를 보냈습니다.

“선생님 조금 늦을 것 같아 한 30분 정도? 미안해.”

익숙한 답변이 돌아왔습니다.

“억휘바리”

   이 친구 이름이 ‘정휘’입니다. 장난기가 꽤 많은데, 제 딴에 재치껏 보낸 답장인 것 같았습니다.

점심에 밥과 함께 먹으려고 꺼내 둔 불고기는 다시 냉동실로 넣었습니다. 얼른 준비를 마치고 집을 나서야 했거든요.


   말복이 지나고 나서 날씨는 훨씬 선선해졌습니다. 찌는 무더위가 하늘을 덮었을 땐 거의 자연재해나 다름없었습니다. 39도를 육박하는 더위에 체감온도는 40도를 훨씬 웃돌았죠. 과외를 하러 가는 지하철에 서서 최근에 산 블루투스 이어폰으로 노래를 듣고 있었습니다. 잔잔한 노랫소리 사이로 ‘카톡’이라는 알림음이 들려 휴대폰을 들여다봤더니, 과외 어머니에게 카카오톡이 와 있었습니다.

“선생님, 휘 어머니입니다. 오늘은 휘랑 과외를 언제 하기로 하셨나요? 드릴 말씀이 있어서요.”

   불안감이 엄습해왔습니다. ‘과외를 그만두시려는 건가? 아니면 내가 지각한 것 때문에?’


   가만히 어머님의 말씀을 들어보니, 다행히(?) 그건 아녔습니다. 휘는 지금 고등학교 2학년입니다. 곧 수능이 끝나면 잠정적으로 고등학교 3학년이 되죠. 그럼에도 아직 스스로 공부하려는 의지가 전혀 보이지 않습니다. 물론 공부의 필요성을 모르기에 충분히 그럴 수 있다지만, 여느 부모들이 그렇듯 휘 어머니도 많이 불안하셨던 것 같습니다.

   어머니는 휘와 상의도 하지 않고 억지로 영어학원을 보냈다고 합니다. 억지로 먹은 것은 체하기 마련일 텐데. 음식도 그렇고 공부도 그런 것 같습니다.

휘는 결국 오래 견디지 못하고 바로 어제 일방적으로 학원을 그만두었다고 합니다. 어머님이 그러하셨듯. 일절 상의 없이. 학원비도 환불받지 못했다고 하네요.

그 일로 모자가 크게 다툰 것 같았습니다.


“제가 얘기해보도록 할게요.”


    대충 무슨 말을 할지 고민해보고, 과외 장소로 향했습니다.

   구로디지털단지역 6번 출구로 나와 길을 건너 조금 걷다 보면 탐앤탐스가 있습니다. 워낙 유명한 프랜차이즈라 조금 시끌벅적하지만 과외하기엔 나쁘지 않은 장소입니다. 커피를 시키고 자리에 앉으니, 휘가 멀뚱멀뚱 들어왔습니다.

‘휘야 요즘 학원은 잘 다니고 있는 거야?’라는 생각을 머릿속에서 한번 검토하고, 입 밖으로 내려하는데 휘가 먼저 얘기를 꺼냈습니다.


“선생님 저 엄마랑 싸웠어요”
“.. 왜?”
“학원 그만뒀거든요. 저는 정말 비효율적이고 소용없다고 생각하는데, 엄마는 안 그런가 봐요.”


   먼저 이야기를 꺼내 주니 고마웠습니다. 나름 제 3자의 입장에서 보았을 때 어머니가 이해가 가는 부분이 있고, 휘가 이해가 가는 부분도 있었습니다. 그렇게 본 객관적인 시선을 휘에게 직접 얘기해줄 수도 있지만, ‘공감’이라는 방법을 먼저 택했습니다.


“그러게, 어머니가 지금 너의 상황을 제대로 모르셔서 그러셨나 보다. 나였어도 속상할 것 같은데.”
“그래도 죄송한 마음은 있어요. 엄마가 밥도 해주시고, 공부도 시켜주시니까요. 근데 이건 정말 아니거든요. 진짜로 학원은 못 다니겠어요. 제가 여태껏 공부를 잘하지도 않았고, 혼자 해서 좋은 결과를 내지도 못했지만, 이건 아니에요.”


   그래. 어머니 입장에선 휘가 공부를 했으면 하지만 제대로 한 것이 없고, 그렇게 억지로 학원을 보내신 게 아닐까? 반대로 휘는 아직 공부를 해야 하는 이유를 제대로 알 수 없을 텐데. 무작정 공부를 하라고 할 수 있는 것도 아닐 텐데. 그러니 이런 일이 벌어졌지.


“밥 안 먹었다고 했지? 사줄게 가자”

 

  오늘 수업은 안 하는 게 나을 것 같았습니다. 제가 옆에서 주저리 설명해도 하나도 못 알아들을게 뻔했거든요. 과외는 생략하고, 밥이나 한 끼 사주고 보내는 게 나을 것 같았습니다. 카페를 나와 바로 귀퉁이를 돌면 있는 해장국집에 들어갔습니다. 밥을 먹으면서 어설픈 조언 대신, 휘에게 제 이야기를 해줬습니다.


   저도 고등학교 시절에 어머니와 꽤나 많이 다투었습니다. 아버지야 워낙 무뚝뚝하신 데다 자식들이 마음대로 하도록 내버려두는 스타일이신지라 별다른 다툼이 없었지만, 어머니는 그렇지 않으셨습니다. 내 자식은 공부를 열심히 해서 좋은 대학에 가야 했고. 얼른 좋은 직장을 얻어 안정적으로 결혼을 하시길 바라셨습니다. 늘 당신의 평생의 숙제인 듯 양. 저에게 말씀하셨죠.


“너희 누나들 봐라. 다 대학 잘 가고 남편도 잘 만나서 잘 지내고 있지 않냐. 이제 너밖에 안 남았다. 공부 열심히 해서 대학 가서, 좋은 직장 얻고 결혼만 하면 된다.”


   자식이 잘 되기를 바라는 모든 부모님의 마음을 그 당시의 저로서도 충분히 이해했지만, 그게 저의 18살을 버려가며 공부할 만큼의 동기부여가 되지는 못했습니다. 어린 나이에 어쨌든 그 순간을 즐기고 싶었거든요. 그 나이는 지나가면 다시 오지 않으니 하고 싶은 건 모두 다 해보고 싶었습니다.


   당연히 성적은 바닥을 기었습니다. 안 그래도 외딴곳에 있던 학교인데, 성적이 바닥을 기다 보니 기숙사도 떨어져서 자취를 해야 했습니다. 원래 안 하던 공부는 더 안 하게 되었죠. 어머님과의 감정의 골도 점점 깊어갔습니다. 그 무렵엔 집에도 잘 찾아가지 않았고, 전화도 일주일에 한 번 정도밖에 안 했습니다. 전화해봤자 혼나기만 하니까요.


   결과적으로 떨어진 가족관계를 다시 붙인 건, ‘대화’였습니다. 제 딴에 나름 열심히 공부했다고 해놓고 성적이 땅바닥을 쳤던 2학년 기말고사가 끝난 날. 어머니에게 전화해서 한껏 울었습니다.

   나는 왜 공부해야 하는지도 모르겠고, 엄마가 나를 그렇게 압박하는 게 너무 스트레스였다고. 그래도 나름 이번에 해보려고 한 건데, 성적은 또 바닥을 쳤다고. 위로를 받고 싶은데 엄마에게 전화하는 게 그렇게 무서웠다고. 혼날게 뻔하니까. 또 싸울게 뻔하니까.


   그냥 그 당시의 제 감정을 모두 털어놨습니다. 하나부터 열까지 전부. 워낙 내색도 안 하고 이런 진솔한 이야기를 해본 적도 없는 아들이기에, 어머니도 적잖이 당황하신 것 같았습니다. 한동한 가만히 계시더니, 천천히 말씀을 하셨습니다. 나는 네가 잘되었으면 좋겠다고. 어머니로서 당연한 것이 아니겠냐고. 잘 돼서 좋은 건 내가 아니라 아들 너라고. 아직 아무것도 모를 테니 이렇게 강요를 해서라도 공부를 해야 후회하지 않을 거라고. 너희 엄마 아빠가 어렸을 때 공부하지 않은 게 그게 그렇게 후회돼서 너에게 그런 것이라고. 미안하다고.


   그날 아마 한 시간은 넘게 통화한 것 같습니다. 우리는 대화를 나누었고, 서로가 무엇 때문에 이렇게 감정의 골이 깊어진 건지 깨달았습니다. 그저 대화가 부족했던 것이 아닐까. 당신의 본심을 어렴풋이 알고는 있었지만, 직접 들으니 어머니가 얼마나 진심으로 저를 위하는지. 그 마음이 새삼스럽게 다가왔습니다.



   그날 휘에겐 더 이상의 제 개인적인 조언은 하지 않았습니다. 그냥 나는 이랬다. 대화가 중요한 것 같다 이 정도가 다였죠. 휘가 집에 가서 오늘 먹은 뼈다귀 해장국의 밥값을 할지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원래 밥값 하는 게 세상에서 제일 어려운 일이니까. 당장 오늘은 아녔을지라도, 언젠가 대화의 물꼬가 트이는 날이 오지 않을까요.


   막힌 건 제때제때 풀어줘야 하는 것 같습니다. 쌓이고 쌓여서 생긴 틈들은 나중에 걷잡을 수 없이 커져버려 꿰맬 수 없는 지경에 이르기도 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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