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학하고 돈 모아서 세계일주 #4
밝은 삼월의 저녁.
느지막이 일어나 출근했습니다. 이제는 조금 익숙해진 자리에 가방을 내려놓고 앉았습니다. 오늘 수업은 무엇이 있는지 보려는 찰나, 옆자리에 주임 선생님께서 말을 건넸습니다.
“수학 선생님은 아기들 좋아하세요?”
“음? 아기들이요? 저 원래는 그렇게 좋아하지 않았는데, 조카 생긴 후부터는 좋아졌어요. 귀엽더라고요.”
“오 그래요? 같이 봉사 안 가실래요? 학대당하거나, 버림받은 아기들 잔병치레할때 같이 병원에 가 주는 일인데, 저랑 영어 선생님이 매주 수요일마다 하고 있거든요. 안양역에서 가까워요!"
음. 봉사라. 그 당시 봉사는 저에게 별로 의미 있는 행위라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봉사는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마음으로 해야 한다고 생각했고, 저는 그런 마음을 가져본 적이 없었거든요. 하지만 시간도 조금 여유가 있었고, 일단 한두 번 해보고 아니면 말자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 한 번쯤 가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싶어 좋을 것 같다고 했습니다.
첫날. 그렇게 가벼운 마음으로 봉사하는 곳으로 향했습니다. 안양역에서 5-1번 마을버스를 타고 이마트에서, 내려 뒤쪽 골목으로 들어가니 ‘동방사회복지회’라는 곳이 있었습니다. 4층짜리 벽돌 건물 전체가 일시 보호소였습니다. 뒷골목에 있어서 그런 것인지, 학대당한 아이들이 보호받는 곳이라고 들어서 그런 것인지 건물의 첫인상은 울적했습니다.
안으로 들어가, 사무실이 있는 3층으로 향했습니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유리로 된 문을 열어보니, 10m 정도 되는 대리석 복도가 쭉 나 있었고, 양옆으로 난 문 위쪽에는 학교에서 학년과 반을 표시하던 것과 같은 플라스틱 표지판이 삐죽 나와 있었습니다. 그리고 꽤 시끄러웠습니다. 아이들 우는 소리부터 청소기 돌리는 소리까지.
처음 가는 장소에서 으레 하듯, 옆으로 스쳐 가는 사람들의 눈치를 보면서 사무실로 들어갔습니다. 멋쩍게 봉사하러 왔다고 하자, 20대 후반 정도 되어 보이는 팀장님이 반갑게 맞이해주셨습니다. 안내서와 봉사 활동 신청서에 사인하고, 구체적으로 무슨 봉사를 하는지 설명을 들었습니다.
많은 아이가 좁은 공간에서 생활하기에, 보통 가정의 아이들보다 가벼운 잔병치레가 많다고 했습니다. 이 친구들을 병원에 데려가려면, 법적으로 아이 한 명당 어른이 한 명씩 붙어서 돌봐줘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렇기에 별로 어렵지 않은 일임에도 불구하고, 봉사자분들이 많이 필요하다고요. 설명이 끝나고 본격적인 봉사활동을 위해 병원에 가야 하는 아이들이 있는 방으로 갔습니다.
방에 들어가니 목재로 만들어진 아기 침대가 6개 정도 있었습니다. 병원에 가기로 한 아기의 침대 앞에 서서보니, 위쪽 자그마한 갈고리에 달린 네임택에 아기의 이름과 생년월일, 성별이 적혀있었죠.
생년월일 : 2018년 2월 28일
성별 : 여
이름 : 정윤서
침대 위로 슬쩍 얼굴을 내밀어보니, 제 팔뚝만 한 아기가 똘망똘망한 눈으로 저를 쳐다봤습니다. 분명 아무것도 모르지만, 강물같이 맑은 그 눈이 선명했습니다.
옆에서 청소하고 계시던 사회복지사분에게 양해를 구하고, 윤서를 안았습니다. 윤서는 거리낌 없이 제게 폭 안기더군요. 분명 처음 보는 얼굴과 냄새일 텐데, 낯가림이 전혀 없어 보였습니다. 제 조카만 해도 처음 보는 사람에게 안기면 목이 마를 때까지 우는데, 윤서는 오히려 엄마 품에 안기듯 편하게 저에게 안겼습니다.
아직 아무것도 몰라서 그런가보다, 하면서 5살쯤 돼 보이는 아이에게도 다가가 봤습니다. 전혀 낯가림이 없었어요. 해맑은 얼굴로, 엊그제 본 포켓몬스터의 이름을 줄줄이 저에게 알려줬습니다.
병원을 다녀오는 일은 딱히 어려운 게 없었습니다. 윤서를 꼭 안고 차에 타서, 기사님이 운전해주시는 대로 병원에 갔다가, 진찰을 받고 약을 타서 돌아오면 되는 일이었습니다. 그동안 아기가 어디 다치지 않게, 잘 데리고 있기만 하면 되는 아주 쉬운 일이었습니다.
결과적으로 한 두 번, 혹은 봉사시간 조금만 채우고 그만할 생각이었는데, 꽤 오래 했습니다. 나중에 보니 100시간도 넘게 했더라고요. 매주 수요일마다 했으니까, 대략 8달 정도 했네요. 감히 아이들을 동정하는 마음에 그렇게 오래 한 건 아닙니다. 돌이켜보면 오히려 많은 걸 배우는 일이었기에 오래 했던 것 같습니다.
아마 첫날 제게 폭 안긴 윤서를 보며 저는 봉사를 오래오래 하겠다 다짐했던 것 같습니다.
단순 남을 위한 봉사가 아니라, 저를 찾는 데에 의미를 둔 봉사였습니다. 울적하고 우울한 분위기보다는, 세상을 해맑게 대하는 아이들을 보면서 깨달은 게 많았습니다.
삶을 대하는 태도는 환경에 구애 받는 게 아닌 것 같습니다. 버림받은 아이들과 그를 보듬어주는 사람들의 마음 한켠엔 상처가 그득할 법도 한데 밝습니다. 아니, 밝다기보단 맑습니다. 굽이굽이 진흙을 머금고 흐르는 강이어도, 결국엔 곧게 맑아질 것처럼. 아직은 잘 모르는 아이라서 그럴 리 없겠지만, 그걸 전부 알고 있는 것처럼. 첫 봉사 때 본 윤서의 눈동자엔 언젠가 맑아질 강물이 들어차 있는 듯했습니다.
이들도 이렇게 맑게 살아가는데, 환경에 구애받아 맑음을 잊으면 안될 것 같았습니다. 지금 내가 어느 곳을 흘러가고 있던, 결국엔 곧고, 맑게 흐를 것이라는 그 생각을 잃으면 안 될 것 같았습니다. 천진난만한 아이들과 늘 웃음을 띤 선생님들을 만나는 매주 수요일은 힘들기보단 보람이 더 가득했던 것 같습니다. 어쩌면 이게 봉사의 진정한 의미인가 싶습니다.
나를 찾음으로써 우러나오는 마음이 진심이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