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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염광섭 Jan 25. 2019

선생님은 뭐냐면

휴학하고 돈 모아서 세계일주 #5

휴학하고 아르바이트하는 거면서, 선생님인 척하지 마세요.


   4월 말, 입하를 앞둔 주말에 무엇이라도 더 해야겠다는 생각 해 참여했던 공모전 동아리에서 들은 말입니다. 내가 뭔가 독특하게 밉보인 일을 한 건 아닌 것 같은데 그녀는 꽤나 깊숙한 말을 던지더군요.


   깊숙이 들어온 말은, 그만큼 소화하는데 오래 걸리는 것 같습니다. 그녀가 무심코 던진 날카로운 한마디를 받기엔 그에 관한 사색이 충분하지 않았죠.


  아마도 저는 아이들을 가르치는 것에 대해, 좀 더 추상적으로는 누군가의 삶을 일부분이라도 이끌어 준다는 것에 대해 깊게 생각해 본 적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여행을 위해 돈을 모아야 하는 저에겐 그저 시급이 높고, 효율이 좋은 아르바이트였을 뿐이니까요. 미안하지만 지금까지 제 수업을 듣는 아이들에 대한 의미는 딱 그만큼이었습니다. 어쩌면 저런 묵직한 말을 받는 게 당연하다 생각될 만큼 단순한 태도였죠.


   조금 더 깊게 생각해보려면, 아이들이 저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비춰봐야 할 것 같았습니다. 학원에서 가르쳐주시는 또 다른 선생님인지. 혹은 그녀의 말 그대로 휴학하고 돈을 벌기 위해 일하는 아르바이트생 정도인지.


   학창 시절. 지루한 학교 수업이 끝나고, 늦은 햇빛이 비추는 시골길을 지나 집에 도착하면 얼른 밥을 먹고 학원가는 버스에 올랐습니다. 해 질 녘, 그것도 밥까지 거하게 먹고 오른 시골버스는 당연히 졸릴 법도 한데 저는 말똥말똥하게 창밖의 풍경을 감상했습니다. 지금도 그 하나하나의 풍경이 행복하게 떠오를 정도로요.

   그 당시 저에게 학원에 가는 일은 힘들기보단 꽤나 즐거웠습니다. 학원 선생님이 저랑 정말 잘 맞았거든요. 매우 열정적이셨습니다. 우리가 배우고 있는 것들에 대한 개념이 어떻게 나왔는지, 왜 나왔는지 일일이 설명해 주셨습니다. 그냥 외우라는 말은 일절 하신 적이 없었죠.

   아이들과의 소통도 상당히 중요하게 여기셨습니다. 장난도 잘 받아주셨고, 힘들어 보이면 따로 불러 상담도 해주셨습니다. 반대로 잘못을 했을 땐 엄격하셨습니다. 항상 우리를 가르칠 때 쓰시던 당구채로 체벌을 하셨죠. 그런 자로 잰듯한 모습만큼 믿고 의지하고, 선생님이 말하는 건 다 사실인 것 마냥 생각했습니다.



   그럼 지금 그 학원 선생님을 하고 있는 저는요?


   비록 정식으로 시험을 합격해서 된 학원 선생님이 아니지만, 아이들이 저를 보는 모습은 거꾸로 제가 수업에 임하는 태도에서 비롯될 것 같습니다. 열정을 가지고 임한다면, 그만큼 아이들도 저를 선생님으로서 봐주지 않을까요.


   제가 누군가를 가르치는 데에 번듯한 자격이 없다는 사실은, 이 짧은 사색을 했다고 바뀌는 건 아닙니다.


   그래도 제가 아이들을 대하는 태도의 변화를 가져다줄 수는 있을 것 같습니다. 저에겐 깊은 삶의 요령도 없고. 삶에 도움이 되는 말 한마디 조차 건네줄 수 없습니다. 그렇다고 전문성 있는 교수법을 통해 가르쳐 줄 수도 없습니다.


그럼에도 이 짧은 사색을 통해 비집고 나온 제 열정은 전해줘야겠습니다. 저의 이 마음가짐을 고스란히 지식의 전달을 통해 전해주고 싶습니다.


꽤나 깊게 들어온 그녀의 말을, 끝까지 소화시켜 봐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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