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학하고 돈 모아서 세계일주 #7
휴가
지난 3개월간 저는 단 하루도 쉬지 못했습니다. 학원에, 과외에, 모의면접 아르바이트까지 일정이 비는 날이 없었어요. 더군다나 이번 한 달은 정말 지옥이었습니다. 학원강사직을 맡은 후 처음 겪는 시험기간이었거든요. 평일과 주말을 구분할 것 없이 출근했습니다.
그러던 저에게 모처럼 휴일이 찾아왔습니다.
학생들의 시험이 모두 끝나고 원장님께서 기나긴 휴일을 선물해 주셨죠. 오늘부터 시작해서 4일이나 연달아 쉴 수 있는 거예요. 그 기간 동안 예정되어 있는 일정은 과외밖에 없습니다. 긴 휴가의 첫날, 햇빛이 강하게 내리쬐고 있을 즈음 저는 느지막이 일어나서 방을 살폈습니다.
제 방의 상태는 제가 얼마나 치열한 한 달을 살았는지 고스란히 보여줬습니다. 플라스틱용 분리수거 통 안에 페트병은 넘쳐흐르다 못해 바로 옆에 유리병용 분리수거 통을 잠식해 나가고 있었죠. 그리고 그 앞엔 받은 지 5일이나 지난 20kg짜리 쌀 보따리가 그대로 있고요. 현관문 오른쪽에 있는 커다란 사과 박스 안엔 일반쓰레기가 가득 차있었어요. 근 한 달 동안 퇴근하고 문을 열면 저를 환영해주는 친구들이었죠.
러그는 캣닢이 아무렇게나 흩뿌려져 있었고, 방바닥은 맨발로 걸어 다니기 힘들 정도로 먼지가 많았어요. 부엌엔 1주일치 설거지가 모여있었고요.
이제 여름도 다가올 겸 대청소를 하기로 마음을 먹었습니다. 우선 먼지가 쌓인 러그를 먼저 털었어요. 빗자루로 방을 쓸고, 밀린 설거지도 모두 해버렸죠. 서재로 쓰려고 마음먹었지만, 지금은 만두의 전용 공간이 되어버린 베란다도 깔끔하게 청소를 했어요. 질서를 찾아볼 수 없었던 쓰레기 더미들도 정리해서 모두 버렸습니다.
늦잠을 자서인지, 청소를 꽤 오래 해서인지 모르겠지만, 할 일을 모두 마치니 해질녘 어스름이 방안에 들어오고 있었죠.
돈은 잘 모이고 있나
자, 이제 방청소도 끝난 겸 노을이 내리쬐는 침대에 누워 휴대폰을 들었습니다. 요 근래 너무 바쁘고, 학원일에 적응하느라 제가 돈을 얼마나 쓰고, 얼마나 모았는지 확인해보지 않았습니다. 요 몇 달 동안 노력한 결실을 볼 때가 된 것이지요. 은행 앱을 켜고, 공인인증서를 통해 로그인을 했습니다.
계획만큼 돈이 모여있었냐고요? 아니요. 전혀요. 계획했던 양의 2/3도 모여있지 않았습니다.
마음이 팍 내려앉았습니다. 물론 시간은 많이 남아있지만, 대체 무엇 때문에 돈이 이것밖에 없는 걸까요. 저는 여행을 갈 수는 있는 걸까요?
살면서 아르바이트비로 200만 원이 넘는 돈은 처음 받아봤습니다. 아마 갑자기 생긴 돈과 그에 맞는 보상심리로 아무렇지 않게 돈을 쓴 것 같습니다. 출근하다가 커피가 먹고 싶으면 스타벅스에 갔고, 퇴근하고 출출하다 싶으면 배달의 민족 앱을 켰습니다. 내역을 보니 다 그런 티끌 같은 결재밖에 없었습니다. ‘티끌모아 태산’이라는 속담을 이렇게 체감할 줄은 몰랐죠.
당황스러운 마음을 부여잡고, 그래도 스스로에게 핑계를 대기 시작했습니다.
월세도 내고
차비도 내고
전기세, 가스비도 냈잖아.
조카 생일선물도 사줬고, 부모님 생신인데 용돈도 부쳐드렸잖아.
그래. 이렇게 지출이 많은데 돈이 모이지 않는 게 당연하지.
그래도 우울한 마음은 감출 수 없었습니다. 정신이 퍼뜩 들었을 땐, 해질녘의 붉은 햇살은 온데간데없고 은은한 달빛만 바깥으로 비추고 있었어요. 가만히 앉아서 생각만 한다고 지금 이 상황이 달라지는 건 아니니까, 앞으로 어찌해야 할지 고민해 봤습니다.
남은 기간 안에 계획한 돈을 모으려면 수입이 더 필요했습니다. 과외든 뭐든 하나라도 더 해야 했고, 쓰는 지출은 눈에 띄게 줄여야 했습니다. 커피는 집에서 타서 먹으면 되고, 야식은 닭가슴살로 대체하면 될 것 같았습니다.
지원할 수 있는 알바가 있나, 어디 할만한 과외가 있나. 침대에 일어나 컴퓨터 앞에 앉았습니다.
아이고, 모처럼만의 휴일이었는데. 좀 놀러도 다녀보고, 맛있는 것도 먹으려 했는데.
오늘 저녁은 라면으로 때워야 할 것 같습니다. 우울한 휴일이 되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