꼰대세요? 네 꼰대예요.

꼰대라고 말하기 싫지만 꼰대가 되어가는 우리들

by 염군


출처 : tvN

내가 꼰대를 처음으로 이해했던 시간은 드라마 <디어 마이 프렌즈>에서부터 였던 것 같다. 각기 다른 성격에, 각기 다른 스타일의 어른들이 나와 풀어가는 드라마. 내가 좋아하는 노희경 작가의 드라마라서, 내가 좋아하는 고현정이란 배우가 나와서 보았던 이 드라마는 나에게 참 많은 것들을 시사하며 종영했다. 많은 것들을 생각하게 했던 드라마였지만 유독 나는 '꼰대'라는 사람들을 이해할 수 있었던 하나의 장면 장면들을 보았고, 그 장면에서 참 많은 것들을 느낄 수 있었다.




그동안 참 많은 꼰대들을 봐왔다.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큰 소리로 뭐라 하는 할아버지들부터 내 나이 또래인데도 상사들에게 굽신거리며 상사의 말과 자신의 의견은 잘 피력하고 직급이 낮은 회사 직원에게는 잘해주는 척하며 자신의 실리를 챙기는 '젊은 꼰대'들도 봐왔고, 자신은 꼰대가 아니라면서 내 말에는 무조건적인 복종과 '네가 나랑 겸상을 하다니.'라는 말을 서슴지 않으며 갓난쟁이 어린애로 취급하던 꼰대도 만나봤다.

그러는 사이 나 또한 꼰대가 되어가는 것만 같았다. 어린 친구들을 볼 때면 꼬박꼬박 존댓말을 쓰면서도 자신이 겪은 일에 대한 상처를 이야기하며 '나는 이래요.'라고 이야기하는 사람들을 볼 때면 내가 당했던 수백 가지의 일들을 가지고 '눌러버리고' 싶다가도 그냥 피곤해서 '아 그럴 수 있죠.'라고 이야기하며 끝맺음을 지는 일이 잦아졌다. 회사에서는 또 어떠한가. 실수를 하면 실수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서도 '왜 이걸 못할까?'라고 생각했던 적도 있었고 또 다른 꼰대들에게 어쩔 수 없이 굽신거리는 나 자신도 바라보면 씁쓸한 입맛을 다시며 뒤돌아가기도 했었다.

그렇다면 왜 우리는 꼰대가 되어가는 것일까? 그것도 유독 '한국'에서 말이다. 잠깐 동안의 어학연수와 외국 여행을 통해 만났던 많은 중년들이 있었고 게스트하우스 매니저 시절에도 30대 여행객들은 많았으나 꼰대는 많지 않았다. 참 신기했다. 왜 유독 한국에서만 그런 사람들이 많은지. 2년이 넘는 사회생활을 통해 내가 얻은 결론은 '개인의 감정표현에 대한 부재' 그리고 '자기 연민'이라는 결론에 다 달았다.

무엇보다 꼰대가 되는 가장 첫 번째 지름길은 '자기 연민'인 것 같다. 우리는 언제 어디서든 꼰대를 만난다. 그리고 그 꼰대들에게 대항 또는 굴복하면서 얻은 상처들을 가지고 있다. 누구든 그 상처들을 각자마다의 방법으로 풀지만 그 트라우마는 쉽사리 고쳐지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그 트라우마가 싸이고 싸여 자기 연민의 길로 가게 된다. '아 나 때는 안 그랬는데...' 내지는 '나 때는 말이야, 이건 이렇게 했는데...' 라며 자신의 트라우마를 애써 감싸며 살아간다. 그런 생각들을 가지고 있다 보면 나이가 차고 어느새 자신의 밑에 누군가가 있게 된다. 그게 나이 든, 직위든. 그러면서 타인에 대한 나의 권위의식은 점점 쌓이고 그 권위의식은 꼰대력과 비례한다는 게 나의 분석(?)이다.

그렇다고 한국에서 자신의 트라우마를 극복하기란 참 힘들다. 나는 비교적 내 감정을 표출하는데 솔직한 편이다. 그렇다고 상처에 비관적이진 않다. 그저 짜증 나는 일과 피곤한 일에 대해 '웃으며' 넘기려 노력하고 비련의 주인공이라고 생각하며 질질 짜려하지 않는다. 남들이 보면 "쟤 왜 저래?"라고 볼 수 있지만 어쩌겠는가? 타인에게서 온 상처를 치료할 사람은 나뿐인데 누구에게 부탁하겠는가.

그러나 안타깝게도 많은 한국인들은 자신의 상처에 대해 제대로 표현하고 치유하는 방법에 대해 배우지 못한다. 외국은 개인주의라는 사상이 Expression의 통로를 만들어주었다면 한국은 공동체 주의가 개인감정 표출의 통로를 막아버렸다. 한국에 '한'이라는 고유 단어가 생겼고 '화병'이라는 한국 고유의 병이 괜히 생긴 게 아니다. 결국 이 모든 것들이 복합적으로 나타나는 또 하나의 형태가 '꼰대'라고 나는 생각해본다.




직장을 다니는 우리는, 그러나 어쩔 수 없이, 나를 괴롭힐 그놈의 꼰대에게 가야 한다. 감정을 표출하고 자기 연민에 빠지지 않기엔 우리의 적(?)은 세상 꿈쩍 안 할 것이다. 제 아무리 본인이 들으려 해도 바뀌지 않을 것이며, 자신이 부서지지 않는 한 꼰대력 또한 그대로 남아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여기서 우리의 선택은.... 퇴사라면 얼마나 좋을까. 로또라도 당첨돼서 얼굴에 돈 뿌려주며 잘 있으라, 이야기하면 얼마나 좋겠냐만 현실은 드라마가 아니니 그 생각은 고이 접어둔다.

결국 그러는 사이 우리 또한 꼰대가 되어간다. 그러기에 차라리 꼰대라고 인정하는 게 꼰대가 되지 않는 길이라고 나는 생각해본다. 그럼 조금은 마음이 편해지지 않을까. 제 아무리 꼰대 테스트에서 꼰대가 아니라고 나왔어도 우리는 꼰대다. 그렇기에 더 큰 꼰대들에게 상처 받아도 그것을 치유하는 각자의 방법과 그 상처를 표출해보는 연습을 해보면 좋을 것 같다. 그래야 당신이 혐오하는 그 사람처럼은 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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