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술자리에서 동기로부터 내가 후배들에게 '과팅'을 소개해준다는 소문을 들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누가 그런 소문을 낸 거지, 정말이지 알 수가 없었다. 지금도 아트센터에서 어셔 수습으로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고, 후배들 튜터링에, 주말마다 센터에서 행정자원봉사 나가, 공부할 시간도 없어서 밤을 새 가면서 쪼개가면서 공부하는데, 과팅이라니? (게다가 지금 나도 급한데;;;) 요 근래 나에 대한 구설수가 많이 오르락내리락하고 있었다는 사실 때문에 심적으로 좀 많이 힘들어서 그 이야기를 듣자마자 민감하게 반응하기 시작했다. 마치 뭔가 만나면 급격하게 반응하는 알레르기처럼. 그렇다고 동기들이나 다른 사람들이 날 잘 챙겨주는 것도 아니고, 내가 막아달라고 할 힘도 없었기 때문에 이 말도 안 되는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게 단지 침묵뿐이라는 것이 너무 웃기고 짜증 나기에 이르렀다.
구설수에 오른다는 것. 생각해보면 나는 참 구설수에 많이 오르락내리락하던 사람이었다. 공부를 잘했던 초, 중학교 때도 구설수에 올랐었고, 고등학교 때는 특히나 구설수로 참 많이 힘들어했었다. 심지어 내 험담을 내 보는 앞에서 듣는다는 것이 얼마나 '꽃'같은 일이던지...... 오히려 대학교 때 있는 험담이나 헛소문들은 귀엽기라도 했다. 최소한 내가 앞에서 듣지는 않으니깐.
오랜 경험(?)과 독서에서 찾았던, 구설수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딱 두 가지다. 인정하거나, 무시하거나. 예전에 내가 좋아하는 백지연 아나운서의 '뜨거운 침묵'이라는 책에 보면 이런 말이 나온다.
"95%의 지지해주는 사람이 있는데 네가 5%의 너를 모르는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말에 니 에너지를 낭비할 필요가 있는가"
맞다. 생각해보면 그들은 나를 모른다. 나를 지지해주는 사람들, 가령 내 부모님이나 내 동기들이나 후배들, 선배님들, 그리고 선생님들과 교수님들. 나는 큰 지원군을 가지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내 인간관계에 비율을 차지하고 있는 그 5%의 사람들 때문에 내 에너지가 낭비된다는 사실은 어떻게 보면 '비효율적'이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사람들은 행복한 기억보다 불행했던 기억들을 더 추억하기 마련이다. 그래서 그 5% 때문에 자살을 하고, 우울증에 걸리는 이유가 그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 5%의 사람들은 그 사람이 그렇게 힘들어하고, 심지어 죽음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것을 봐야만 자신들의 잘못을 뉘우치는 이 불편한 진실이 대체 어디까지 갈 것인가. 참 아이러니하다.
이번 경험들을 통해 나는 아직도 엄마가 일전에 말했던 '마음 수양'이 덜 됐음을 깨달았다. 그리고 더 큰사람이 되고, 더 큰 일들을 겪게 되면서 내가 들을 구설수의 소용돌이는 아직 끝없이 펼쳐져 있다. 그때는 정말 생각지도 못한 상처들과 고충들이 있겠지. 그래서 나는 이 경험을 나를 단련시키는 또 다른 촉매제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구설수에 오른다는 것은 인간이 인간과 같이 살아가면서 꼭 겪어야 할 '운명'이라고 생각한다. 그것에 너무 나약해질 필요도, 힘들어할 필요도 없다. 어차피 가십, 말. 그것은 시간이 지나가면 흘러 지나갈 일들이니깐. 아직 난 좀 더 강해질 필요가 있다.
저 글은 내가 네이버 블로그에 작성했던 글로, 아직까지도 많은 사람들에게 읽히는 글 중 하나이다. 21살 때 나는 사람들에게 진심을 다해 표현하면 그 진심이 마음에 닿아 나의 결백을 알아줄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7년이 지난 28살의 나는 그것이 틀릴 수 있다는 것을 깨달은 지 너무 오래되었다.
7년이란 시간이 지났다. 그리고 여전히 나는 구설수에 휘말린다. 우리가 사회생활을 안 하고, 혼자 살지 않는 이상, 우리는 구설수에 계속해서 휘말린다. 현재까지도. 업무적인 것들 외에도 사생활적인 부분, 만나보지도 않고 겪어보지도 않았으면서 말하는 사람들은 여전히 많다. 다행히도 저런 마인드로 지금까지 살았으니 많은 부분에서 예민하게 반응하지 않고 구설수에 휘말렸다 해도 딱히 상처를 받거나 히키코모리처럼 지내지는 않았던 것 같다. 그저 구설수에 휘말렸다 해서 그것을 해명하지도, 그것에 대해 상처 받지도, 그것에 대해 미련을 두지도 않았다. 어차피, 구설수를 증명할 길은 없다. 그저 내가 기회가 있을 때, 그리고 살아온 길이 진실되면 그 시간이 늦어도 알아서 증명될 것이라는 걸 7년이 지난 나는 안다.
그래서 지금은 마음이 편해졌다. 그리고 편한 것과는 별개로 준비하고 해야 할 일들이 너무나도 많았다. 계속해서 쉼 없이 달려온 탓일까. 대학을 졸업해 방 한 칸을 얻어 독립을 시작했고, 말도 안 되는 월급으로 다녔던 첫 직장에서 나와 이제는 어엿한 한 브랜드의 마케팅 총괄까지. 그러면서 계속해서 무언가를 도전했고 무엇인가를 성취하면서 나는 타인보다는 나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기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했던 것 같다. 그 노력이 결국은 나 자신의 성찰과 채움으로 남아지는 것 같다. 그리고 어느 순간 그것을 부러워하는 타인을 볼 때면 '아, 결국 그들도 나를 부러워했던 거였구나.'라는 생각으로 그 모든 상처들을 마무리짓곤 한다.
현재 구설수는 정말 내 인생에서 쓸데없는 쓰레기 같은 것이다. 지금으로선 그 구설수 때문에 식음을 전폐하고 상처를 받기엔 할 일이 너무나도 많아져버렸다. 구설수에 상처 받을 것 같으면 차라리 눈과 귀를 막는 것이 낫다. 그것들을 챙기기엔 지금 나의 삶은 너무나도 치열해져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