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염군 Mar 26. 2020

우리의 직업은 그렇게 반짝거리지 않는다.

그래도 반짝거릴 줄 알고 선택했던 패션 마케터에 대한 이야기

프로젝트 런웨이 코리아를 기억하는 사람들은 많지만 하이디 클룸과 파슨스 교장선생님 팀 건이 나왔던 프로젝트 런웨이를 보며 패션의 꿈을 키웠더랬다. (출처 : 프로젝트 런웨이)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스타일', '프로젝트 런웨이', '도전 슈퍼모델 코리아'...


 패션을 전공했던, 패션을 선택한 내 나이쯤 되는 사람들이라면 한번쯤 보고 한번도 가보지 못한 미지의 세계를 꿈꾸며 패션을 선택했을 거라고 생각한다. 나 또한 그랬으니까.







 원래 난 에디터가 하고 싶었다. 글 쓰기를 좋아했던 나였기에 중학교 때부터 에디터를 하고 싶었고 2005년-2006년 지긋지긋한 시골 동네에서 벗어나 서울에서 공부하고 싶었던 나였다.

 당시만 해도 패션의 중심은 서울이었다. 학생이라 돈도 없었고 그럭저럭 받는 용돈이 고작이었지만 뭣도 모르고 나란 중딩. 마석에서 강변을 거쳐 서울 강남역에 있는 유니클로와 명동, 홍대를 그렇게 가길 좋아했지만 비싼 옷값에 옷을 사기는커녕 그냥 내려놓은게 다반사였다. 당연히 옷은 사지를 못 했고 그 시골 동네에 볼 수 있는 패션잡지도 없느니 그냥 공부나 열심히 하며 꿈을 키워 나갔더랬다.

 고등학교 때는 또 어떠했는가. 지금 들으면 참 웃긴 일이지만 그 당시에 남자가 보그나 마리끌레르를, 하물며 남성잡지도 읽으면 수군수군거리던 게 현실이었고 마음은 핫했지만 내성적이었던 나는 잡지도 늘 숨어서 보아야만 했다. (라떼는 말이다, 정말 그랬다.)

 그렇게 모든 난관 (?)을 뚫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패션을 하고 싶었기에 패션 마케팅학과를 나왔고 지금은 어엿한 패션 업계에서 일하는 3년 차 마케터가 되었다. 10년째 한 직업만을 꿈꿨던 내가 에디터에서 마케터가 되기로 결심한 건 딱 하나였다. 내가 가진 현실과 재능이 에디터를 하기엔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과 동시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금은 반짝반짝 거리는 일을 할 수 있지 않을까 라는 일종의 기대감에서부터 였다. 내가 생각하는 그 반짝거림은 '화려함' 그 자체였고 패션 업계에 가면 자연스레 그런 남들이 봤을 때 '와!' 하는 사람이 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2004년에 시작한 프로젝트 런웨이는 어느새 프로젝트 런웨이 시즌 18을 마무리 짓고 있고 미국인들만 득실득실했던 지난 시즌과는 다르게 이제는 한국인이 쇼에 출현하게 될 만큼 세월이 꽤 많이 지났다.

 어떻게든 3년을 버텼다. 버티면서 그간 패션만 할 것 같았던 선배, 동기, 그리고 후배들이 이 길을 접는 모습들을 많이 보게 되었다. 특히 '패션' 카테고리에서 일하는 '마케터'를 찾는 건 하늘에 별따기였다. 그 유명하다는 브랜드에서 일했을 때도 나는 MD들은 알았어도 마케터들과의 직접적인 커넥션은 전혀 없었다. 그리고 이내 지나고 나서 깨달았다. 이 업계에서 마케터라는 건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겠구나, 라는 걸.

 '우리는 절대 반짝반짝한 일을 하지 않는다.' 나는 이 이야기를 후배들에게 이야기하곤 한다. 정말이다. 차라리 MD는 '매출'이라는 명확한 목적 아래 일하지만 마케터는 그 목적이라는 걸 인정해주지 않기에 정말 많은 곳에서 부딪히고 일해야만 한다. 당장 회사의 얼굴이 되어야 하기도 하고 때로는 판매, CS, 사이트 운영을 하기도 하며 업무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는 상황이 비일비재하다. 그저 마케터를 '노출'과 관련된 일이라고 판단하는 브랜드들이 많다 보니 이 것에 지친 마케터들이 결국 브랜드로 가지 않게 되는 현상까지 발생하게 된다. (이건 뭐 패션 쪽에만 관계된 이야긴 아니지만.)

 마케터가 비록 대외적인 업무가 많아, 누군가에게는 반짝거리는 일을 하는 것처럼 보일지 몰라도 흔히들 패션업계에서 일하는 '반짝거리는' 사람들은 소수일뿐더러 그 사람들은 그 사람 자체가 반짝거리는 사람일 뿐이었다. 마치 '스타'처럼. 일반인이 아무리 노력해도 연예인이 되긴 힘든 것처럼 그들이 가진 반짝거림은 곧 그 사람이 가진 '외모'나 '재력', '패션 아이템'으로 가꾸어진다는 사실을 안 건 업계를 들어오고 나서 얼마 안 되어 안 사실이었다.

 또 보이기에만 반짝반짝 거리는 것 뒤에는 말도 못 할 만큼 '구질구질'한 현실이 기다리고 있다. 예를 들면, 당장 밥 먹을 돈은 없지만 옷은 사야 하기에 10만 원도 안 되는 돈을 12개월 할부로 긁을 만큼? 내가 아는 사람은 생활비 20만원으로 살아가면서 옷은 사고 저축은 안 하는 삶을 연맹하고 있던 이도 있었고 (대부분이 그랬지만) 비싼 명품들을 사며 회사를 다니는 사람들은 그야말로 회사를 취미로 다니면서 잘난 부모님 밑에서 패션을 즐기며 일하는 사람들뿐이었다.

 그러다 보니 이 업계에서는 허세가 가득한 사람과 허세를 극혐 하는 사람, 두 부류로 나뉜다. 매일매일 VIP 파티나 셀레브리티 파티 등을 돌아다니며 인맥을 쌓고 외모가 곧 나의 능력이라고 생각하는 부류가 있는가 하면 그냥 적당한 허세로, 적당한 자신감으로 다른 내실을 다지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던 것 같다. 다행히도 허세를 극혐 하는 사람들을 만나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만 (아쉽게도) 허세가 가득한 사람은 나를 쳐다도 보지 않는다. 그도 그럴 것이 외모적인 모습에서는 절대 장점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있어 나는 (외모적인) 능력도 없고 그렇다고 멋도 없는 사람일 뿐이라는 걸 알고 나선 굳이 그 사람들에게 잘 보일 필요도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촬영은 언제 나가도 정말 재밌다. 비록 일을 하고 나면 녹초가 되지만 여럿 실장님과 함께 합을 맞추며 일하는 게 행복하달까


 일 뿐만 아니라 사람들에게 치임에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패션을 선택하고 싶다면 선택하라고 이야기한다. 비록 반짝거리진 않지만 반짝거림을 만들 수 있는 매력적인 직업임에는 틀림없으니까. 촬영 시안을 짜고 그 촬영 시안에 맞춰 모델의 S컷을 건졌을 때의 짜릿함, 내가 고른 워딩과 내가 고른 룩북 사진이 여러 곳에서 터졌을 때의 쾌감은 해보지 못한 사람은 절대 알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거기다 내가 감히 만나볼 수 없는 사람들을 직접 만날 수 있는 기회도 있다. 이건 정말 마케터가 아니고서는 할 수 없는 경험 중 하나이기에 나는 이 매력만으로도 이 직업을 선택한 것을 참 좋아라 한다.

 그리고 외모가 반짝거리지 않아도 어떠한가. 생각보다 외모보다 '내실'로 반짝거리는 사람 또한 많은 게 패션업계의 특징이니 말이다. 무엇보다 내면이 반짝 거리는 사람이 만들어내는 결과물은 상상을 초월한다. "어떻게 하면 저런 생각을 할까, 어떻게 하면 저런 결과물을 낼 수 있지?" 라며 배우고 반성하게 되는 부분들이 많은데 이런 것들을 자세히 바라보면 결국 이 업계에서 일을 해도 괜찮다는 생각으로 이어진다. 언젠가 저분처럼 나도 촬영 시안을 잡고 기가 막힌 화보와 글을 구성할 수 있겠지 라는 기대감을 품으며 열심히 일하게 되는 원동력으로도 이어지는데 그것만으로도 사람이 '사람'답게 살아가는 이유를 만들어주는 게 이 직업의 매력인 것 같다. 결국 내면의 반짝거림은 외면의 반짝거림보다 더 오래, 영롱하게 빛날 테니까.

매거진의 이전글 Comm. : 마케터에게 가장 필요한 덕목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