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TODAY'S FASHION
- 스페로네 가죽 싱글 재킷에 검은색 모크넥
- 토마스 모어 화이트 에크루진에 슈즈는 닥터마틴 3홀
- 오늘의 가방은 생 로랑 리브고슈백.
- 색이 없기 대문에 오늘 액세서리는 직접 만든 체인 목걸이에 반지.
■ TO-DO LIST
- 회사 적응하기 (그룹웨어 등 서류 제출하기)
- OJT 마치고 업무 프로세스 익히기
AM 08:15
날씨가 추워진 것이 어느덧 겨울이 됐음을 체감하게 된다. 10도 안팎의 날씨. 그러나 아직까지는 날씨의 제약이나 겨울을 위한 아이템을 꺼낼 필요는 없는 정도의 날씨. 사람들은 패딩이나 목도리를 벌써부터 껴입지만 아직까지는 그럴 필요 없는 날씨.
출근길 역시 달라지는 건 아무것도 없다. 그러나 어제와 오늘의 차이는 무엇이든 닥치고 해 보자는 것, 그리고 무엇이든 해보고 결정하자는 내 마음속의 다짐과 바록 패션 업계는 떠났지만 나에게 남은 수많은 옷들을 간과하지 말자는 것이었다.
평소와 같은 마음으로 전 회사 출근하 듯, 출근하는 내 모습을 정규직이 보기에 별로 좋아 보이진 않을 수도 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계약직이든 정규직이든 그게 뭐 그리 중요한 것인가. 애당초 그걸 나누는 것 조차가 너무 웃기고 꼰대 같은 생각인 것을. 오히려 그동안 내가 쌓아왔던 것들에 대한 어느 정도의 자부심이 있었기에 누가 건들던 말던 눈치를 볼 필요가 더욱 없어졌다. 어차피 헤드의 말만 잘 들으면 되고 주어진 일에 충실하면 되는 것을, 그 이외의 것들에 대해 고민할 필요는 전혀 없었다.
AM 10:34
그러나 이내,
"귀하는 지난번 시행한 수시 채용에서 불합격하였음을 알려드립니다."
지난번 본 유명 외식기업 m사의 면접 불합격 통보 문자가 왔다. 서서히 마음속 깊숙이 자리 잡았던 불안감이 다시 스멀스멀 엄습해오기 시작했다.
'침착하자. 아직 2일밖에 되지 않았어...'
기억하자. 앞뒤 사정 파악하지 않고 성급히 결정했던 것들이 얼마나 많은 후폭풍을 불러일으켰는지를. 어쨌든 사람들은 나의 선택에 대한 '이유' 보다는 '결과'를 더욱 중시할 테니까.
그리고 인정하자. 난 성급했다는 걸. 그리고 그 판단이 잘못됐음을 깨달았을 때는 이미 돌이키기 어려운 수준이라는 걸 이제는 안다. 그러기에 이제는 아무리 급해도 성급한 결정을 내리지 말자고 결론을 내려본다.
PM 12:50
2일째가 되니 계약직 사람들과 서서히 말을 트게 됐다. 의례 그렇듯, 다들 어떻게 여기에 들어왔는지 궁금해 각자의 사연들을 물어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계속 이어지는 대화 속에서 이내 나는 자동적으로 입을 다물고 말았다. '창피해서.'
계약직인 사람들의 사연들을 듣다 보니 나의 선택은 정말 '배가 부른' 선택이었다. 코로나가 터진 시점부터 백수였던 사람들부터 작년부터 일을 구하지 못 한 사람들까지, 각자 일한 곳들도 천차만별이었고 심지어 같은 필드에서 일했던 사람들 또한 있었다. 그 와중에 10월 퇴사 후 바로 이 곳에 취직한 사람은 나뿐이라는 것 또한 알게 되었다.
정규직에서 계약직만 되어도 각가지 걱정과 생각이 많은 나와는 다르게 이들은 이미 이러한 걱정들을 해탈한 것처럼 보였다. 순간 죄스러워지는 느낌을 떨칠 수 없었다. 그들의 절박함 없이 나는 그저 내 배를 채울 돈과 내 성공을 위한 커리어만을 위해 이 순간을 벗어나고 싶었던 것이었다.
그 짧은 시간 동안, 난 내가 그동안 이루어왔던 것이 모두 '허상'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어찌 됐든 출발선상은 동일했으니까. 제 아무리 내가 대학교와 사회에서 능력을 발휘했다 한 들, 그것 모두 결국 결과로 평가받는 것이 바로 지금 내가 살고 있는 대한민국의 현실이라는 것. 그 현실 속에서 내가 이룬 것들은 지금 모두 허상이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PM 11:10
유명 브랜드의 JOB OFFER가 들어와 이력서를 보내고 잠자리에 들 준비를 마친다. 날씨가 제법 추워져 따뜻한 잠자리를 위해 전기장판을 꺼내 켰다. 따스함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이내 몸이 노곤 해지고 졸음이 몰려오기 시작한다.
글을 계속 쓰다 보니 느끼는 건데 요즘 쓰는 글 속에 '생각'과 '깨달았다.'라는 말이 유독 많이 들어가 있다. 회사에서 느껴보지 못한 배움이다. 인생에서 배울 수 있는 가장 값진 것이 아닐까. 누군가는 정규직에 목숨을 걸고 대기업에 목숨을 걸기도 하며 그것을 위해 일평생을 바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다 현재의 나에게 그것은 정말 중요하지 않는 것 같다.
'BOYS, BE AMBITIOUS' 내가 참 좋아라 하는 말이다. 하지만 이제 나에게 야망은 사회에서의 지위가 아닌 내 삶에 대한 야망도 정의하고 싶다. 그렇게 되면 참 많은 것들을 포기할 줄도 알아야 하고 그 속에서 행복을 찾아야 할 것이다. 난 어쩌면 지금, 그것을 찾기 위한 하나의 여정을 거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