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TODAY'S FASHION
- 퍼스트룸 트렌치코트
- 로에일 베이지 재킷 & 로에일 베이지 슬랙스 (근데 탕 색깔이 달라서 셋업은 아니다.)
- 오늘의 가방은 아크네 베이커 미디움백
- 신발은 역시나 닥터마틴
■ TO-DO LIST
- 업무 적응하기
AM 08:40
"네? 반 월치 밖에 안 들어온다고요?"
젠장, 당장 이번 달 프리랜서 계약도 부러진 마당에 무슨 25일 월급날 반 월치 월급만 들어온다니... 당장 카드값부터 메워야 하는데 카드값도 메울 수가 없게 돼버렸다. 부랴부랴 마이너스 통장으로 이번 달 카드값을 미리 갚았지만 당장 다음 달은 어떻게 보내야 할지, 출근길이 아니라 무슨 대출상담을 받으러 은행에 가는 것 같은 착각마저 든다.
잘만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당장의 월급이 끊기는 게 어떤 느낌인지 이제야 조금 실감이 간다. 풍족했던 내 생활은 잠시 접어둬야겠다 생각은 했지만 이렇게 빠르게 찾아올 줄이야. 다행히 당장의 불은 껐다만 이제부터가 시작이겠다는 생각을 하니 눈앞이 캄캄해졌다.
하긴 근데, 취준 때는 이것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진 않았다. 첫 직장 때는 120만 원을 받으며 직장생활을 하기도 했으니 이건 뭐 버틸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참고로 그때의 기억 때문에 나는 단 한 번도 카드값을 월급보다 초과해서 사용해본 적이 없다. 무조건 현금을 먼저 쓰고 나머지 비용을 카드로 내고 쇼핑은 외주로 번 돈으로 했기 때문에 생각보다 내 카드값은 적지만 그래도 막상 고정 수입이 들어오지 않으니 막막하기는 여전히 막막했다.
AM 10:34
단순 업무의 반복, 반복, 반복... 지금 전 회사였으면 엑셀 시트에 로우데이터를 편집하고 기획업무에 광고 데이터를 보며 하루를 시작했겠지만 머리를 쓰지 않는 업무를 하다 보니 뇌가 말랑말랑 해지는 것 같았다.
'이 것도 나쁘진 않는데?'
마케팅 업무를 하다 보면 참 여러 가지 상황들을 고려하고 체크하는 것이 습관처럼 되어 있었다. 늘 A부터 Z까지를 고민하고 비판하고 YES 보다는 WHY를 하는 게 다반사였는데 이제는 YES 아니면 NO만 가리는 업무를 하니 오히려 일이 재밌기까지 했다. 대충 하면 될 것을 퇴근 전 업무량을 체크하니 1000이 넘어 있었다.
'내일 목표 KPI는 무조건 3시 전에 1000다.'
맙소사...
PM 11:38
퇴근 후 떡볶이에 계란말이 김밥, 순대를 먹고 푹 쓰러져버렸다. 내일은 목요일, 일주일 중 4일이 갔다. 퇴사한 지 곧 일주일이 돼가지만 지난 4일이 나에게는 마치 400시간의 시간을 보낸 것처럼 고되고 힘든 하루였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조금씩 조금씩 나아져가는 내 모습이 보인다. 이제는 성급하지 않아도 된다는 걸, 내가 조금 아끼고 절약하면 되는 걸, 내가 노력하면 미래가 나아진다는 기대보다는 현재에 충실한 삶이 행복한 미래를 만든다는 것을 조금씩 아는 것 같다.
애석하게도 난 쓸데없는 정의로움을 가지고 태어났다. 아닌 것을 아니라고 이야기할 수 있는 용기, 즉 미움받는 용기는 때로는 나에게 좋지 않은 영향력을 행사하곤 한다. 이런 나의 성향과 이 꼰대 한국 사회와의 접점을 찾지 않는 한 난 여전히 오해와 받지 않아도 될 미움과 욕을 얻어먹으며 살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제는 오래 다닐 수 있는 회사를 찾고 싶다. 아니면 어떤 회사든 오래 다닐 수 있는 실력을 갖추던지. 그 둘 중 하나를 충족시키지 않는 한 나는 앞으로 날 지키지 못할 것이다. 이렇게 11월 초, 나는 생각만큼 무거운 현실의 무게를 다시 느끼며 잠자리에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