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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명 Jan 21. 2021

불온한 것들의 소각장

불온하고 불완전한

각자가 가지고 있는 불온하고 불완전한 것들을 하나씩 던져 소각해보자.

 길을 잃고 해메이는 내 안의 불온한 것들은 모두 어디에 털어버려야 하는 걸까. 갈 곳 없는 원망, 대상 없는 미움과 실체 없는 그리움은 다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 걸까. 그런 것들은 쓰레기통도 소각장도 없다. 나는 살면서 사람을 그로 대신하지 않기 위해 애를 쓴다. 힘들다. 남에게 나누자니 그럴 게 아닌 것 같고 혼자 끌어안자니 버겁다. 때로 사람의 마음에선 감히 흉내 낼 수 없는 혹취가 난다. 감정은 질척하고 더러운 오물이 되어 나를 옭아맨다. 살아있는 모든 모순의 모서리가 나를 찌른다. 괴롭다. 마음이 어지럽다. 그러면 나는 뒤이어 깊은 심연에 빠진다. 그 어떤 생각을 할 여력도 없이 무기력하게. 이때의 심연은 마치 진공 상태와 같다.


 나는 한 때 웬만하면 세상의 모든 일이 다 불만이고 모든 사람이 다 미웠다. 내 존재 자체가 원망스러웠다. 나는 태어나고 싶어서 태어난 것도 아닌데 살아가며 아주 작은 일도 내 바람대로 되지 않는다는 게 억울했다. 내게 주어진 삶에 감사하라고? 아주 웃기는 소리라 생각하며 코웃음을 쳤다. 나는 내 인생의 최대 피해자이자 최소 수혜자라 생각했다. 더 바라지 않고 지금 주어진 것만에 충분히 감사하며 살 테니 내게서 더 이상 뺏어가지만 말아 달라고 빌었었다. 벼랑 끝에서 버틸 테니 더 몰아세우지만 말아 달라고. 하지만 세상은 나를 시험하듯 벼랑 끝에서 끝으로 계속해서 내몰았다. 굴러 떨어지며 나락에는 끝이 없다는 사실을 절실히 깨달았다. 추락하며 살고 싶다고 생각했다. 살고 싶었다. 그저 주어진 삶을 살고자 했을 뿐이었는데. 나는 살고 싶어서 죽었고 죽고 싶어서 살았다.


 나는 세상을 혐오하고 사람을 혐오하며 종국엔 스스로를 혐오했다. 그렇게 스스로 갇혀 살며 남을 탓하기만 했는데 언젠가 나도 그들과 별반 다를 바 없다는 사실을 깨달아 버렸다. (별반 다를 바 없다기보다는 똑같다는 말이 더 맞지만 아직까지도 나는 쉬이 그렇게 말하고 싶지는 않다.) 그 후 며칠을 식음을 전폐하고 눈물로 밤을 지새웠다. 차라리 모르는 게 약이었을까? 나는 세상이 절대적 선도 악도 없는, 영원한 영웅도 악당도 없는 곳이라는 걸 알아버렸다. 문제는 그다음의 사고였다. 그렇다면 나도 예외 없이 '순백의 피해자'가 아니다. 이 명제는 내가 모든 일의 피해자이자 가해자이며 때로 방관자이고, 선이자 악이며 때로 그 아무것도 아니면서, 내가 아주 드물게 누군가에겐 영웅이고 대부분은 시민일 것이며 어떤 때는 악당인 것이라는 사실을 말한다. 어린 나에게 이런 현실은 마주하고 싶지 않은, 감당 못할 세상의 아주 큰 비밀과도 같았다.


 죽이고 싶었다. 그러나 그 사람은 나에게나 악당이지 다른 사람에겐 사랑받는 사람일 것이다. 원망하고 싶었다. 그러나 그 또한 모든 면에서 사람의 원한을 살 짓을 하지는 않을 것이다. 미워하고 싶었다. 그러나 밉지 않을 때가 있었다. 용서하고 싶었다. 그러나 사과받지 못했다. 만일 사과를 받는다 해도 그것은 지금의 당신이지 그때의 당신은 아니다. 용서한다고 해도 그것은 찰나의 내가 용서한 일이지 그전의 나와 앞으로의 내가 계속해서 용서할 수 있을지도 미지수다. 반대로 내가 용서받아야 할 일도 많겠지. 누군가도 내가 죽이고 싶을 만큼 미워질 수 있겠지. 가끔 그런 생각을 한다. 살면서 지은 죄를 다 용서받을 수 있을까. 아니. 분명 그러지 못할 거다. 끔찍했다. 아. 정말이지 산다는 건. 살아있다는 건 정말로…….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에 불온한 것들의 소각장이 없어 내가 이 곳에 불온한 것들의 소각장을 만들었다. 《불온한 방백》말고 더 어울리는 이름이 뭐가 있을까. 소각장엔 어떤 이름을 붙일까. 당장은 생각할 여력이 없으니 다음에 생각해보기로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좋아하는 말이다. 이 매거진에 올라오는 글은 절망 또는 회의적 사고에 빠져 죽자고 쓰는 글들이 아니다. 이 글쓰기는 나를 위한 글쓰기다. 그때그때 털어내고 싶은 마음과 정리되지 않은 생각들을 손 끝으로 타이핑하며 실체화하고 소각하는 과정을 기록한 것이다. 당신이 이 글을 끝까지 읽었다면 당신 또한 나와 비슷한 처지에 있으리라 생각한다.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 글을 써라. 불온한 것들을 글로 소각하라. 그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신은 당신의 인생을 계속해서 살아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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