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경과 시기(猜忌)는 언제나 함께
내가 아닌 다른 누군가를 가슴 떨려하며 좋아했던 적이 있다. 또 무언가에 푹 빠져 다른 건 다 잊고 그것에만 심취했던 적이 있다. 좋아하는 마음은 나를 쉽게 들뜨게 하고 기쁘게 만들었다. 반대로 누군가를 어떤 이유로 죽일 듯이 미워한 적도 있다. 고백하자면 별 이유 없이 싫어하기도 했다. 싫어하는 마음은 나를 괴롭게 만들고 서로를 곧 잘 망가뜨렸다. 이토록 사랑과 미움은 양극단의 성질을 지닌 듯 다르다. 하지만 정말 좋아하는 마음과 싫어하는 마음은 다른 걸까?
인생을 살다 보면 사람의 마음을 얻는 것은 세상에서 제일 어려운 것 같다. 특히 나이가 들수록 더 그렇게 느껴진다. 그러다가 어느 날은 갑자기 너무나도 쉽게 느껴질 때가 있다. 그럴 때면 나는 영문을 모르겠다. 도무지 사람 심리를 알다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렇든 저렇든 남에게 쉬이 휩쓸리지 말고 내가 내 주인이 되어 중심을 잡아야 하는데. 발가락 끝에 열심히 힘을 주면 뭐하나. 남의 마음에 휩쓸려 이미 내 몸뚱아리는 자유롭지 못한 채 이리저리 휘둘리는 것을.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고 해메이다 중심을 잃고 무너지는 것을. 끝없는 저 나락 밑으로 떨어지고 마는 것을.
그렇게 나락 저 밑바닥을 굴러다니다 보면 언젠가 작은 깨달음을 얻는다. 좋아하는 마음과 싫어하는 마음은 같은 마음이다. 사람들은 동경과 시기(猜忌)가 다르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가만 보니 마음은 출구가 보이지 않는 미로 속을 헤매는 것처럼 어렵다가도 의외의 구석에서 손바닥 뒤집듯 휙휙 쉽게도 바뀌었다. 나도 매한가지다. 나는 네가 좋았다가, 싫었다가, 좋았다가, 싫었다. 나는 너를 죽도록 사랑해서 죽도록 원망했고 죽도록 원망하다 죽도록 사랑했다. 오래 보니 널 좋아하게 만들었던 이유가 결국 널 미워하게 만들었다. 그러다 바보같이 널 미워하던 이유로 다시 너를 좋아하게 되었다. 돌아보니 그때 나는 당신을 너무나 동경해서 시기했다. 시기하다 보니 다시 동경했다. 너도 그랬다.
좋고 싫음은 동전의 양면이다. 그 둘을 분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가까운 친구와 가족, 연인부터 시작해 모든 인간관계가 다 그렇다. 가까운 인간관계에서는 잘 모르겠다면 유명 연예인만 봐도 동경과 시기는 별개의 감정이 아니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대중들의 선망과 동경의 대상이던 연예인이 (그것이 이유가 있든 아니든 간에)한 순간에 시기와 질투, 혐오의 대상이 되는 일은 매우 쉽다. 뭐 SNS가 발달한 현대 사회에서 비단 연예인에게만 적용되는 얘기는 아니긴 하다. 아무튼 우리에게 그런 일은 비일비재하다. 그래서 어떻다는 이야기를 하려는 것은 아니다. 그저 사람의 마음이란 게 그렇더라. 그뿐. 이 글에서 그에 대해 더 하고 싶은 이야기는 없다. 그저 인정하면 편해진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나의 마음과 타인의 마음을. 마음이란 게 참 그렇더라. 별 거 없더라. 사람 마음이 생각보다 그리 복잡하고 대단한 게 아니더라. 그러니 너무 괴로워하지 말자. 우리 모두 나락으로 가지 말자.
동경과 시기는 언제나 함께 한다. 눈을 감고 잠시 심호흡을 해보며 마음을 비우는 연습을 해보자. 그럴 수 있어. 사람 마음이란 게 원래 그렇잖아. 그래 별거 같지만 생각보다 별게 아니지. 내 마음도 그렇지. 그러니까 괜찮아. 동경도 시기도 그저 그런 마음이다. 타인의 마음까지야 내가 어쩔 수 없어도 내 마음은 내가 다스리면 된다. 너무 괴로워 말자. 오늘도 미련하게 나락으로 빠질 뻔한 나와 위태로운 당신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