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같이 웃어야 유머지
'웃수저'라는 말이 있다. 뉴스레터 캐릿에 따르면 ‘딱히 노력하지 않아도 주변 사람들에게 웃음을 주는 재능을 가진 사람'을 뜻하는 말로,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나 경제적으로 좋은 환경을 누리는 사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금수저’를 응용한 신조어라고 한다.
생각해 보면 내 주위에도 유머와 즐거움, 재미 등을 삶의 모토로 살아가는 이들이 여럿 있다. 우리 삶에 유머가 없었다면 삶은 꽤나 투박하고 딱딱하게 흘러갈지도 모른다. 사실 나는 웃음보다는 진지함이 있는 대화나 상황들을 더 편애하지만 그럼에도 나를 무장해제시키는 몇몇 작가들이 있다. 이 경우에 작가는 이 책을 웃기려고 작정하고 쓴 건가 싶을 만큼 읽다 보면 바람 빠진 풍선마냥 웃음의 긴장이 느슨해지곤 한다.
가장 최근에 소리 내어 웃으며 읽었던 책이 있는데, 바로 김혼비 작가의 <우아하고 호쾌한 여자 축구>다. 참고로 나는 축구의 룰도 잘 모르고 솔직히 관심이 거의 제로에 가깝다. 스포츠에 크게 흥미를 느끼지도 못할뿐더러 구기종목에는 더더욱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
그런 나에게 지인이 이 책을 우연히 추천해 줬는데 웬걸, 작가의 위트 있는 글빨에 푹 빠져버렸다. 축구의 축도 잘 모르는 내가(사실 월드컵도 분위기만 즐겼지 정작 경기는 잘 안 봤...) 축구의 기본적인 룰을 차근차근 알아가고, 그 안에 녹아있는 선수들의 희로애락을 함께 공감할 수 있었던 것은 순전히 그녀의 필력 덕분일 것이다. 그녀의 재치 있는 문장은 대체로 무해하고 스스로를 우스꽝스럽게 만들면서 타인을 조롱하지 않는다. 그 부분들이 나에게 가장 잘 맞다. 한 끗 차이지만 개그랍시고 타인을 깎아내리고 심지어는 혐오의 발언까지 서슴지 않으며 억지웃음을 종용하는 분위기는 정말이지 최악이다. 이런 무례한 말들을 아무렇지 않게 농담이랍시고 떠들어대는 이들에게는 쓴웃음조차 과분하다.
올해 6월에 출간된, 은둔과 거리를 사랑하는 내향인의 소소한 기록이라는 부제를 가진 <내밀 예찬>의 김지선 작가는 "자신을 낮추는 농담은 누구에게도 해를 입히지 않으면서 훨씬 더 먼 곳까지 도달한다"라고 말한다.
그러나 결코 하지 말아야 할 농담이 있다. 체중과 키, 건강, 종교, 부동산, 사는 지역, 정치적 성향, 직업, 연봉, 가족, 애인 등과 관련된 농담들. 현대 사회에서 종교만큼 강력한 계급으로 작용하고 있는 취향을 비하하는 농담들, 무엇보다 내가 짐작조차 할 수 없는 타인의 고통이나 상처를 헤집어놓는 농담들. 재치와 무례 사이는 너무나도 가깝고, 나에게는 별것 아닌 것처럼 느껴지는 이야기가 상대방에게는 치명적인 공격이 되는 경우는 생각보다 흔하다. 그래서 좋은 농담을 던지는 이들은 대체로 뾰족한 인권 감수성을 지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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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웃자고 한 농담에 죽자고 달려든다는 말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건 너만 웃기지 나는 하나도 웃기지 않다고 말해도 되려 상대는 '에이, 장난인데 왜 또 진지해지고 그래'라고 아무렇지 않게 답한다. 그럼 나도 장난으로 너를 원색적으로 비난하며 한번 웃어볼까?
재치와 무례 사이는 너무나도 가깝다는 김지선 작가의 말처럼 자신의 농담이 모두의 농담으로 닿기까지는 타인에 대한 섬세한 감수성과 시의적절한 센스가 동반되어야 비로소 가능할 것이다. 김혼비 작가의 책도 그렇다. 재미를 밑바탕으로 하고 있지만, 그 안에는 진지함도 사회적 이슈도 더 나아가 민감한 주제들도 부드럽게 녹아있다. 그래서 나는 그녀의 글을 읽으며 함께 웃다가도 함께 진지해지고 그 끝에는 감동을 느끼기도 한다.
지난주에 오랜만에 내가 좋아하는 공간을 다녀왔다. 춘천의 공유서재인 <첫서재>인데, 그곳의 서가에서 김혼비 작가의 책을 만났다. 읽어야지 하면서 미뤄두기만 했던 <다정소감>의 도입부를 읽다가 시간이 부족해 덮고 나왔지만 서울에 가서 그 책의 나머지를 마저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 나의 웃수저는 김혼비 작가다. 그녀의 글은 나의 무장해제 웃음에 크게 기여한 바 있었고, 유쾌하고 호쾌한 그녀의 웃수저로서의 역할이 주변 이들에게도 큰 웃음이 되어줄 것이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