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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내민해 Oct 18. 2022

그래서 혼자 살고 싶다고?

당신의 옆자리

60대의 나는 어떤 모습일까를 가만히 상상해 보다가 그 나이가 되었을 때 내 옆에 누가 있을까로 생각이 옮겨간다. 혼자만의 시간을 그토록 찬양하던 나의 60대에 내 곁에 있는 사람, 혹은 사람들.


배우자가 있을까, 그렇다면 아이는?

그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다 보니 과연 나라는 사람은 타인과의 밀착된 관계를 오래 견딜 수 있는 사람인가에 대한 생각까지 도달하게 된다. 부모님 세대와 달리 이제 결혼과 출산은 필수가 아닌 선택의 영역이 되었다. 여러 층위의 말들이 난무하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선택은 나의 몫이라 생각한다. 내가 그 상황을 감당할 수 있는 사람인가 아닌가의 문제로 말이다. 사람들은 흔히 혼자보다는 둘이 낫다고 말한다. 이 말은 극단적으로는 혼자 외로울 바에야 둘이 괴로운 게 낫다는 말일까. 글쎄 내 생각은 조금 다른데. 둘이라 괴로울 바에는 혼자서 외로운 게 낫다고 말이다.


어릴 때는 지금처럼 복잡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명료했다. 어느 정도 나이가 차면 달성해야만 하는 단계적인 삶에 대해 깊이 의문을 품지도 않았고, 나에게 맞는 삶은 다를 수도 있다는 선택지도 열어두지 않았다. 모두가 살아가는 것처럼 나도 그렇게 살면 되는 거라고 막연하게 생각했었다. 하지만 나이를 먹어갈수록 선택의 폭은 넓어지고 가능성도 다양해진다. 타인의 기준이 아닌 나에게 맞는 삶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한다. 혼자와 둘의 행복 척도를 가만히 재보다가 어쩌면 나는 정말로 혼자일 때가 더 행복한 사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조금 더 힘이 실리는 때가 있다.


"한집에 살지만 혼자이고 싶을 때가 있잖아요"라고 말하는 이정섭 작가의 <두 개인주의자의 결혼생활>에서 저자는 누구랑 함께 살지 못할 사람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문제는 연인과 시간을 보내는 동안 나의 소셜 에너지도 소모된다는 점이다. 시쳇말로 기가 빨리는 기분이랄까. 함께 있는 시간엔 쉴 새 없이 상대에게 포커스를 맞춰야 한다. 농담을 던지면 웃고, 뭐 먹을지 이야기를 나누는 등 끊임없는 액션과 리액션을 주고 받는다. "다들 평범하게 하는 일이잖아"라고 반문한다면 할 말은 없다. 하지만 난 좋은 사람과 있어도 에너지가 소모됐고, 소모한 에너지를 충전할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했다. 멍하게 하늘만 바라봐도 상관없었다. 일체의 소통을 멈춘 채 홀로 할 일을 해야만 충전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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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독립성과 사랑 중에 뭐가 먼저냐 묻는다면, 그 둘은 서로를 가능하게 해주는 보완 요소라고 말한다. 사랑하기에 상대가 나와 별개로 누리려는 일상을 인정할 수 있고, 나 자신의 독립적인 생활이 가능하기에 깊은 사랑을 키워갈 여유가 생긴다고 말이다.


지난달에 우리 팀의 막내 직원 결혼식을 다녀왔다. 이 팀에서 나와 4년 넘게 일했는데 신랑 신부의 알콩달콩한 모습에 식을 보는 내내 엄마 미소가 절로 지어졌다. 어떤 이들은 함께일 때 저렇게 더 반짝거리며 빛이 나는데 '과연 나에게도 그 삶이 맞을까?' 싶기도 하다. 나이가 들수록 결혼하기 어렵다는 말이 괜히 있는 말이 아니다. 생각이 너무 많아진다. 생각이.


어제부터 연애와 사랑에 대한 주제를 갖고 나의 오랜 남사친과 진지한 대화를 이어가고 있다. 그도 나도 각자의 연인이 있기에 남자의 입장과 여자의 입장을 골고루 대변하며 다소 팽팽한(?) 의견을 내세웠다. 남자의 역할 속 고단함을 푸념처럼 늘어놓는 그의 모습이 안쓰럽게 느껴져 "다들 그러고 살아, 너도 그냥 근갑다 해"라고 다소 쿨하게 답하는 나의 모습에 그는 어처구니없다는 듯 웃었다. 여자들은 도대체 왜 그러는 거냐는 그의 직설화법에 모든 여자를 일반화시키지 말라고 당차게 말했지만, 글쎄 나는 과연 상대에게 어떤 연인일까를 곰곰이 생각하다 썩 그렇게 괜찮은 여자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상대에게 져줄 수 있다는 것은 그만큼 상대를 더 사랑하기 때문일까, 아니면 단순히 참아주는 것일까. 상대의 논리가 다소 억지스럽다는 것을 알면서도 사랑하기 때문에 일방적으로 져주었던 그 마음이 억울하게 느껴지기 시작한다면 그 관계는 이미 균열이 시작되고 있는 것일까. 그동안 참고 있던 억울함이 많았는지 다다다다 쏘아붙이듯 말하는 그에게(저는 도대체 무슨 잘못이죠) 그렇게 힘들면 그녀를 도대체 왜 만나냐고 물었더니 돌아오는 대답이 참 모순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를 사랑하고 있기에, 그녀를 만나면서 느끼는 행복이 혼자일 때의 편안함보다 훨씬 더 크니까.


꽤 오랜 시간 핑퐁처럼 이어진 우리의 대화 중 유일하게 한 가지 통했던 것이 있다면


그럼에도 여전히 사랑, 사랑이었다.


배우 전미도님의 <생각보다 생각만큼>이라는 노래의 가사가 떠오르는 오늘이다.


생각해 보니 좀 우습지
혼자인 게 익숙한 너와 내가
이렇게 함께인 게


https://youtu.be/XLQyEqw45aU

생각보다 생각만큼 <전미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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