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봄 글쓰기 모임이 휴지기를 가졌던 5월 한 달 동안 그전부터 함께 글을 써왔던 글쓰기 메이트들과 각각 돌아가며 글감을 나누고 글쓰기 모임을 이어갔다. 그 기간 중에 내가 올렸던 글감 중 하나는 "과거의 나와 대화하는 시간이 있나요?"였다.
뭔가 거창하게 영적인 느낌으로다가 과거의 나와 송신하는 그런 느낌(드라마 시그널 같은)이 아닌, 나 자신이 너무 좋다거나 너무 싫어질 때, 어린 나의 모습을 재발견하는 경우? 해결되지 못한 숙제처럼 떠오르는 과거의 기억들? 등의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다. 지금과 비슷할 수도, 많이 달라졌을 수도 있을 것이고, 어쩌면 그때의 모습이 더 좋았을 수도, 지금의 내가 더 좋을 수도 있을 것이다.
내 경우는 사실 20살 이전의 모습과 지금의 모습이 많이 달랐다. 더 정확하게는 20대 후반으로 갈수록 어릴 때의 모습과 반대로 흘러가는 나를 끊임없이 재발견하는 시간들이 많았다. 지금의 나는 혼자만의 시간이 너무 소중하고 사람을 만나는 것도 늘 총량을 정해두곤 한다. 그 총량이 다 차면 그 달에는 더 이상 약속을 잡을 수도 누구를 만날 수도 없는 상태가 된다. 내가 너무 지치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릴 때는 이런 나의 내향성을 잘 몰랐다. 사람들과 늘 어울려 다니기를 좋아했고(정말 좋았던 것은 맞을까?), 어느 장소에 가도 꼭 누구와 함께 가야만 했다. 어쩌면 당시의 나는 자존감이 낮았던 터라 나 혼자 무언가를 할 수 있을 거라는 가능성 자체를 열어두지 않았는지도 모르겠다.
과거의 시간들을 가만히 기억해 보면 지금과 많이 달랐던 모습들이 새록새록 떠오르는데, 가끔은 그 모습들이 싫기도 하다. '왜 그때는 홀로서는 것을 그토록 두려워했을까', '혼자 스스로 결정하지 못하고 주체적이지 않았을까'라고 생각하며 그때의 나를 질책하기도 한다. 성인이 되어 어느 정도 안정기에 접어든 지금도 여전히 그 시절 꼬마 아이로 머물러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본업은 변호사지만, 에세이스트와 문화평론가를 오가며 활발히 활동해온 정지우 작가의 <우리는 글쓰기를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지>에서 저자는 글쓰기란 과거의 나를 상상하는 일이라고 말한다.
글 쓰는 능력과 태도는 사람들에게 항상 '잊고 있던 무언가'를 환기하는 느낌을 준다. '맞아, 그게 중요한 건데 잊고 있었어. 왜 그걸 모르고 있었지? 왜 잊고 살았지? 나는 멈춰 서서 그 중요한 것에 관해 생각할 필요가 있었어.' 글쓰기는 바로 그런 사람의 마음에 적중하는 측면을 구조적이고 본질적으로 갖고 있다. 멈추거나 역행할 수 없도록 만들어져 있는 삶을 멈추거나 역행하게 만들어준다는 점에서, 글쓰기가 갖는 특별한 지점이 생기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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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내가 이토록 글쓰기를 좋아하는 이유도 작가의 말과 비슷할 것이라 생각한다. 글을 쓰는 과정에서 현재에만 머물러있지 않고 과거의 나를 반추하는 과정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어려서 몰랐던 그때의 나와 끊임없이 대화를 시도하고 그래서 지금은 괜찮은지 질문한다. 현재의 시간과 관계를 맺는 것도 물론 중요하지만, 해결되지 못한 과거의 시간과도 계속 관계를 회복하려 노력한다. 어쩌면 지금 내 삶 속에 해결되지 않은 문제들은 과거에 해결되지 못한 문제들 때문에 더 튀어 오르고 있는지도 모른다. 가만히 이불만 덮어두고 있다고 해서 그 문제가 해결된 것은 아닐 테니 말이다.
나는 내 시간에 욕심이 많은 사람이다. 시간을 적절하게 배분해서 하루를 밀도 있고 정성스럽게 살아가는 것을 좋아한다. 그 과정에 현재만 넣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록 지나온 과거일지라도 그때의 시간들이 있었기에 지금의 나도 있을 테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