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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내민해 Apr 27. 2023

문단 차력사를 만났다

누군가 나에게 좋아하는 작가가 있냐고 물어볼 때마다 나는 늘 고민에 빠졌다. 무엇이든 '가장'이라는 부사가 들어가는 순간 그 무게감이 더해지는 느낌이니까. 좋아하는 작가'들'은 있는데 그중에서 가장 좋아하는 작가라?


흠, 글쎄. 생각이 많아졌다.


우선 나는 한국 작가를 좋아한다. 시기에 따라 정도의 차이는 있었지만, 대체로 날카로운 안목과 예민한 감수성을 가진 이들을 좋아하고, 그들이 쓴 글에 깊이 매료되곤 했다. 그들의 책을 모두 읽었던 것은 아니지만, 누군가 그 작가의 이름을 말할 때, '어? 나도 그분 좋아해.'라고 말할 수 있는 정도였다. 그러니까 아직까지 나는, 나의 원픽으로 꼽을만한 작가는 없었던 거다. 그중 한 명이 장강명 작가였고, 그 외에도 여러 한국 작가들을 비슷한 비중으로 좋아한다.


얼마 전에 장강명 작가의 <소설가라는 이상한 직업>을 읽었다. 책을 읽으면서 알았던 사실은 이 책에 실린 내용이 yes24에서 운영하는 채널예스의 '장강명의 소설가라는 이상한 직업'이라는 칼럼(지금은 종료되었다)에서 시작됐다는 것이다. 당시 나는 한 달에 한 편씩 연재되는 그 칼럼을 꼼꼼히 챙겨 읽으며 출판업계의 현실을 낱낱이 고발하는 듯한 그의 솔직한 발언에 깊이 빠져들었다. 원래도 좋아하던 작가였는데, 그 칼럼을 읽으며 더욱 좋아진 것이다.


그리고 어제 드디어 그분을 만났다. 비록 비대면, 줌에서 만났지만 어쨌든 그분과 대화라는 걸 나눠봤으니까 이건 만났다고 말해야 하지 않을까. 랜선으로 책 모임을 진행하는 <세모람>이라는 온라인 도서관을 통해서였다. 나는 <세모람>을 그전부터 알고는 있었지만, 특별히 관심 있는 책 모임을 찾지는 못했다. 비문학보다는 문학을 더 좋아하는 편인데 세모람에서 다루는 책은 대체로 비문학, 그중에서도 자기계발 분야 쪽이 많았기 때문이다. 그러던 중에 4월 모임에 장강명 작가의 책 모임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이건 비문학이고, 문학이고 할 것 없이 무조건, 무조건이다! 라고 생각하고 처음으로 참석 버튼을 눌렀다. 그렇게 시작된 거다. 이 모든 일들이.


어제의 첫 랜선모임 결과를 한 줄 요약해 보자면, "드디어 가장 좋아하는 작가가 생겨버렸다"일 것 같다. 모임이 끝나고도 한동안 여운이 가시질 않았다. 참석인원이 많아 질문을 하나밖에 하지 못했고, 하려던 말들도 꾹 삼켰지만 그래도 좋았다. 원래 선망하는 누군가는 멀리서 봐야 빛이 나고, 괜히 그 사람에 대해 자세히 알게 됐다가 실망했던 경험도 더러 있어 걱정하기도 했지만, 결론은 괜한 걱정이었다. 원래도 좋았는데 더 입체적으로 좋아졌다.


<세모람>에 단순히 후기만 남기면 되는 줄 알고, 어제의 좋았던 감상을 작가님에게 전하는 편지글 형식으로 준비해두었는데, 그게 아니라는 건 메일을 받고 난 후에야 알았다. 뒤늦게 감상문처럼 쓰려다 원래 써 놓았던 편지를 꼭 전하고 싶다는 욕심이 생겨 결국 이 공간을 빌려 나는 이 글을 써 내려가고 있다. 전해질 수 있을까. 나의 이 편지가.






랜선 책 모임이라는 이질감에 살짝 우려했던 것과 달리 너무도 뜻깊은 시간이었어요. 오랫동안 장강명 작가님의 책을 꾸준히 읽어 왔던 터라 더욱 용기 내어 이번 <세모람> 모임에 참여할 수 있었습니다.


흔히들 독서가 취미라고 말씀하시는 분들이 있죠. 저도 그중 한 명입니다. 근데 진짜예요. 양을 떠나서 책에 담는 의미가 큽니다. 습관적으로 읽고, 습관적으로 쓰면서 제 직업과는 또 다른 저의 정체성을 알아가는 느낌이거든요. 작가님의 책은 그런 부분에 있어 저와 결이 잘 맞는다고 생각했어요. 어제 미니토크에서도 말씀 나눠주실 때, 혼자 또 감동받아 눈물이 글썽글썽했는데(좀 과몰입이긴 하죠. 제가), 그만큼 의미 있고 좋은 말씀들 같았어요. 출판업계의 부조리한 면들과 사회적으로 크게 각광받지 못한 다양한 이슈를 늘 깊이 있게 다뤄주시고, 소설이라는 장르에 잘 녹여주셔서 무겁지만 의미 있다고 생각하며 잘 읽고 있었거든요. 누군가는 해야 할 이야기라고 생각했고 그 길에 앞장서고 계신 모습이 좋았던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 "문단 차력사"라는 키워드가 기억에 남는데 정말 그런 느낌이 들어요. 모두가 달려가고 있는데 굳이 걸어가거나 그 길이 아닌, 더 어렵고 느린 길을 택하는데 그 이유가 분명한 사람. 누군가에게는 다소 우스꽝스럽거나 촌스럽다 여겨질지 몰라도 저는 그런 분들의 반짝거림이 좋았고, 작가님이 그중 한 분이라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차력하고 계신데, 그 차력 좋아하는 저 같은 사람도 있으니까 앞으로도 많은 차력 부탁드립니다.


트렌드를 쫓아가기 바쁜 세상에서 과학기술의 발달이 인간에게 주는 이점뿐만 아니라, 그 기술 개발을 통해 소외되는 이들의 목소리에 집중하시는 작가님의 가치관도 정말 대단하다 여겨졌어요. 아무도 가지 않는 길을 혼자 묵묵히 걷고 계신데, 그 길을 응원하는 저 같은 독자들도 분명 많을 겁니다. 마치 유니콘을 만난 것처럼요?


한참 쓰다 보니 이건 후기가 아니라 작가님께 쓰는 한 편의 편지가 되어가고 있네요. 어제의 모임은 작가님의 <소설가라는 이상한 직업>이라는 책을 주제로 모였지만, 전반적으로는 작가님이 생각하는 책의 방향성처럼 느껴지기도 해서요. <책 한번 써봅시다>라는 책에서 책이 중심이 되는 사회를 상상한다고 하셨던 말씀이 계속 떠올랐어요. 그 책에서 '책으로 소통하는 사회는 생각이 퍼지는 속도보다 생각의 깊이와 질을 따진다'라고 말씀해 주셨는데, 작가님의 삶이 정말 그런 것 같아요. 저 또한 책을 통해 천천히 사유하고, 존중하고, 소통하는 사회가 만들어졌으면 하는 바람을 늘 갖고 있고요.


작가님의 에세이를 읽다 보면 문득문득 '아 이분은 할 말이 정말 많으시구나' 싶을 때가 있는데(하하), 그게 싫다는 게 아니라 너무 좋아요. 책 말미에 남겨주신 말씀처럼 투명한 인세 정산과 독서생태계의 건설에 유독 격렬(?)해지곤 하시죠. 충분히 그럴만한 일이고, 저 또한 비슷한 느낌으로 격렬(?)해질 때가 많아 더 깊이 공감했던 것 같아요.


앞으로 계획하고 계신 책들의 방향성에 대한 말씀도 정말 좋았는데, 저는 한국 문학을 가장 좋아하지만 장강명 작가님은 한국 작가 중에서도 그 색채가 분명한 분 같습니다. 가끔은 너무 분명해서 보복(?) 당하지는 않으실까 우려와 걱정이 많았는데, 수익화를 충분히 잘 만들어두셨다는 말씀에 역시라는 생각이 들어 안도하기도 했어요. 오랫동안 좋아하는 작가를 만나는 자리는 굉장히 떨려요. 행여나 만났다가 제가 생각했던 것과 다른 분이면 어쩌나 하는 우려가 생기기도 하거든요. 근데 어제 그 모임을 하면서 그 우려가 지나친 기우였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한층 더 깊이 존경하고, 좋아하게 됐어요. 앞으로 출간하실 책들에 대한 기대도 큽니다.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는 말이 작가님에게만큼은 해당되는 일이 없기를, 지금의 모습이 변질되지 않기를 진심으로 바라고 응원하며 앞으로도 작가님의 글을 오래도록 사랑할 수 있는 독자로 이 자리를 지킬게요.


"계속 열심히 쓰겠습니다. 더 잘 써보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어차피 다른 분야에 별로 관심이 없습니다."라고 하셨던 말씀처럼, 앞으로도 지금처럼 계속 써 주세요. 저도 계속 열심히 읽겠습니다. 더 잘 읽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이 분야에 이렇게 관심 있는 분을 본 적이 없습니다.


긴 글, 긴 후기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반의 장광설이 찐이라고 하셨으니 저의 장광설도 너그러이 이해해 주세요.




그렇다. 나는 이제 가장 좋아하는 작가가 생긴 것 같다. 원픽이 드디어 생겨버린 것이다.

부디 이 마음이 오랫동안 잘 유지될 수 있도록 좋은 책을 많이 많이 써주셨으면 좋겠다. 나의 독서 세계가 한층 더 넓어진 느낌이다.

나에게 또 하나의 세계를 열어준 <세모람>이라는 플랫폼에도 더 깊이 관심을 가져야겠다.

독서 생태계의 확장은 언제나 환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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